시 쓰는 도서관

by 은세유

어느 면으로 보나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나는 학교에서 처음으로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던 순간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 기억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갓 입학한 꼬맹이들인 우리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주어진 단어를 포함한 짧은 글을 지어 교과서에 옮겨 적었다. 그 단어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풍선'이라는 시제로 다른 아이들은 '풍선이 날아간다' '풍선을 불었다' '나는 빨간 풍선이 좋다' 등의 글을 썼다. 나는 '빨주노초파남보 풍선이 파란 하늘을 두둥실 날아간다.' 식으로 조금 길게 글을 만들어 봤다. 며칠 후, 선생님은 내게 시에서 주최하는 백일장에 나가라고 하셨다.


아마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된 것은. 감수성이 예민하고 걱정이 많았던 어린 시절의 나는 학년이 새로 시작할 때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가던 시기가 많이 힘들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직접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라 긴장되고 불안한 마음을 달래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 방이나 독서실에 박혀 아무도 없을 때 다이어리에 내 마음을 적어보는 일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다 보면 스스로도 알기 어려웠던 내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연필을 잡고 직접 써 내려가는 글은 느릴 수밖에 없어 막연한 불안과 걱정으로 콩닥콩닥 뛰던 마음의 속도를 자연스레 늦출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나를 위한 글쓰기를 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였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마음 달래기에는 그 이상 좋은 약이 없다. 주로 아무렇게나 쓰는 잡문을, 때로는 시를 썼다. 지금도 중학교 때 학교에서 느꼈던 갑갑함을 새장에 갇힌 새에 비유한 시가 내 다이어리 어딘가에 적혀 있을 것이다.


어제 산책을 하다 오랜만에 구립 도서관에 들렀는데, 시 쓰는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시 쓰기 강좌를 진행한다는 포스터가 눈에 띄었다. 최근 스스로에게 '뭐든 미리 짐작하지 말고 일단 시작해보자!'라고 이야기하며 나름의 '작은 다짐'을 하고 있던 터라 평소 같았으면 또 한참 생각하고 망설였을 텐데 이번에는 바로 직원에게 문의했다. 마침 시작이 오늘부터이고, 수강인원이 다 차지 않았으며, 지난 기수의 반응이 아주 좋았다고 하셨다. "잠깐만 생각해 볼게요." 하고 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 한 바퀴 걷고는 바로 내려와 "저... 아까 말씀하신 시 강의 신청할게요!"하고 나름의 큰 용기를 냈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영화는, 보고 난 뒤에 문득문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그러니까 갑자기, 왜인지 모르게, 문득문득 생각이 나는 영화이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도 내게 그런 영화이다. 영화를 보고 난 직후에도 가슴이 먹먹하고 이상해 한참을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영화를 본 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가끔 '미자'를 떠올린다. 미자의 허망한 표정을, 도대체 무얼 어찌할 수 없는 복합적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을, 안쓰러운 마음으로 떠올린다. 도저히 더 나쁠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미자를 위로해 주고, 그나마의 속죄라도 할 수 있도록 해 준 것은 가장 강해 보이는 '돈'이 아니라 가장 약하고 힘없어 보이는 '시'였다.


영화 <시>


영화 '패터슨'도 인상 깊게 보았다. 버스 운전사인 패터슨은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일상의 기록들을 비밀 노트에 시로 적어 기록한다. 그로써 패터슨의 일상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고 풍부해진다. 칙칙한 무채색에 여러 가지 색깔이 입혀지는 마법같은 순간이다. 내가 생각하는 시는 '숨은 그림 찾기' 같은 '발견'이다. 아무것도 아닌 줄 알았던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색을 입히고 나면 별 다를 것 없을 것 같던 일상이 나만의 인생, 나만 아는 특별한 삶이 된다.


영화 <패터슨>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듣던 팟캐스트 '이스라디오'에서 이슬아 작가는 심보선 시인의 말을 인용했다. 시란 두 번째로 슬픈 사람이 첫 번째로 슬픈 사람을 생각하며 쓰는 거란다. 아마 두 번째로 아픈 시인은 아주 좋은 시인일 게다. 열 번 째쯤이라도 슬플 수 있다면 꽤 괜찮은 시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감히 시인을 꿈꾸는 건 아니지만, 오랜만에 글쓰기 수업을 듣는다니 설렌다. 역시, 고민하지 말고 마음이 끌리면 일단 시작을 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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