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로하는 법
시인은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대신 울어주는 사람, ' '곡비(哭婢)'라 표현하는 시인들이 여럿 있었다.
삶을 살아갈수록 누군가의 감정에 '제대로' 공감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타인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으니 당연히 '제대로' 된 위로 또한 어렵다. 가끔은 좋은 의도로 하는 위로인데 핀트가 안 맞아 상대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하기도 한다. 마음이 닳을 데로 닳아 손 끝에 박힌 조그만 가시 조차 뺄 기운이 없어 주저앉아 울고 있는 사람에게, "남들 다 그렇게 살아. 그건 아무것도 아니야. 힘 내!" 한다면 그는 과연 힘을 낼 수 있을까? 그렇다면 상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그가 왜 우는지를 그 보다 먼저 알아차리고, 정확히 파악해, 제삼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보편적이고도 개인적인 언어로 표현하는 일이 가능할까? 아마도 그것이 시 쓰기가 어려운 이유이자 훌륭한 시인들이 존경받는 이유일 것이다.
전이수 <위로 2>
오늘은 구립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시 쓰는 도서관' 세 번째 수업 시간이었다. '각자 정한 소재와 주제를 5-10가지 정도로 묘사해보기'가 지난 시간 과제였다. 묘사가 뛰어난 글은 실제로 경험한 순간보다도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나는 지금도 내가 읽은 소설의 한 장면을 아주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다. 물론 그건 작가의 머릿속에 있었던 그림과는 다를 것이다. 내가 작가의 문장을 재구성해 내 머릿속에 매우 구체적이고 생생한 장면을 박아 놓았을 테지. 묘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독자로서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내가 '묘사'라는 걸 직접 해 본 적이 언제였더라. 초등학교 글쓰기 수업 때? 묘사라...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내가 정한 소재도 초보자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묵직했다. 그래도 그 소재에 마음이 끌렸다. 써야 할 것 같았다. 몇 년 전 오랫동안 기다렸다 가진 뱃속 아기를 잃었다. 불행 중 불행으로 유산의 과정도 단순하지 않았다. 희망고문이 계속되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끝이 났다. 그 일을 겪고 나서 한동안, 사실 꽤 오랫동안 나는 유. 산.이라는 말을 입에 담지 못했다. 요즘엔 완곡적인 표현이 남용되어 오히려 명확한 의미 전달에 해가 된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때 나는 왜 언어에 '완곡적'인 표현이 존재해야 하는지 정확히 깨달았다. 환자의 몸 상태뿐 아니라 마음 상태까지 헤아릴 줄 아셨던 보기 드물게 좋으신 의사 선생님이 내게 "어떡하죠, 아기가 잘못된 것 같네요."라고 말씀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나는 극소수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 때면 아기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직접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묘사하기란 너무 막연해 그냥 마음대로 무작정 시를 써보기로 했다. 신기하고 놀라운 것은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묘사에 적합한 한 구절조차 떠올릴 수 없었는데 일단 앉아서 써보기 시작하자 이미지가 하나씩 떠올랐다. 그래서 내가 존경하는 많은 작가들이(하루키도) 하루에 일정 시간을 정해놓고 회사원들처럼 무조건 책상에 앉아 글쓰기를 한다고 했구나.
- 희끄무레한 종이에 매직으로 눌러 찍은 것 같은 작고 까만 점
- 점토로 빚은 여섯 개의 동그라미, 얼굴, 몸통, 팔다리
- 너는 작지만 아늑한 네 방에서 둥실둥실 헤엄쳤다
- 등이 꼬부라진 병든 해마처럼 고개를 떨군 채 둥둥 떠 있다
- 작은 몸뚱이에 꾹꾹 눌러 담은 슬픔이 탯줄을 타고 올라왔다
- 확장된 눈구멍 밖으로 뜨끈하고 짭찔한 물이 한꺼번에 왈칵 쏟아져 나왔다
- 눈 앞의 모든 것이 어지러이 출렁였다
- 갓 태어난 동물처럼 축축한 네 몸을 바들바들 떨리는 내 손 위에 올려놓았다
-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엾은 잎사귀들
(오늘 수업 시간에 묘사가 아닌 진술에 대해 배웠는데 내가 쓴 문장 중 일부는 진술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직 잘 모르겠어서 좀 더 찾아보고 공부해보려고 한다)
그런데 한 가지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내가 아프다고 남까지 아프게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즐거운 시 수업을 기대한 다른 수강생들과 선생님께 너무 불편함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예전에 회사 다닐 때, 보는 사람마다 "나 어깨가 아파 죽겠어. 어제 한 숨도 못 잤어. 불면증이야. 병원에 갔는데 양성 종양이 있다네. 글쎄 몇 센티래, 수술해야 한대. 두통이 너무 심해서 머리가 깨질 것 같아." 등을 토로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누가 아프면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게 인지상정이나 별로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까지 대뜸 본인의 온갖 지병과 아픔을 털어놓으며 울상 짓는 그 사람을 사람들은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아오, 나도 같이 아파지는 것 같아. 기운이 쭉 빠지네" 하면서... 그러니 내가 무슨 권리로 생면부지나 다름없는 이들의 햇살 좋은 가을날에 불편한 감정을 전염시킨단 말인가.
그래서 소재를 한 가지 더 생각해냈다.
이번에도 일단 아무렇게나 시를 써 보기 시작했는데 가제는 ‘얼룩말과 악어’였다.
어느 날 봤던 TV 다큐멘터리에서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얼룩말 떼가 대거 이동하며 수십 마리 악어들이 득실대는 강을 건넌다. 그런데 새끼 얼룩말을 데리고 달리던 어미 얼룩말이 정신없이 강을 건넌 뒤 주위를 두리번거리고는 새끼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나는 설마, 설마 했는데 어미 얼룩말은 악어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지옥불로 스스로 뛰어 들어갔다. 저게 바로 모성애구나, 충격을 받았다.
- 시커먼 강물 위로 수 십 개의 톱니가 아가리를 벌리고 만찬을 기다린다
- 저승의 강을 무사히 건넌 어미의 눈빛이 불안하게 떨린다
- 어미는 초조하게 가느다란 앞발을 내밀었다 물러섰다 내밀었다 물러섰다
- 서슬 푸른 톱니들이 반사하는 빛줄기가 어지러이 엉킨 햇살 좋은 날
오후 2시가 되어 화상채팅 앱을 켰다. 선생님은 과제로 제출한 묘사를 각자 낭독해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하셨다. 다른 수강생들의 묘사는 재미있고, 발랄하고, 기발하고, 귀여웠다. 정말이지 모두 나름의 시인들 같았다. 나는 사실 수업 전에 다른 이들의 묘사를 여러 번 보고, 주눅이 들어 내 것을 한번 봤다가, 다시 그들의 것을 봤다가 했다. 내 것만 너무 무겁고, 어둡고,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하다가 다시 보니 내가 낳은 새끼라 그런지 또 괜찮은 것 같기도 하고, 그랬다.
내 차례가 가장 마지막이라서 점점 초조해졌다. 한참 깔깔깔 재미있게 웃고 즐기던 중이었는데 생뚱맞게 내 차례가 오면... 마치 노래방에서 다들 술 한 잔 걸치고 댄스곡을 부르며 흥에 겨워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마이크를 잡더니 눈을 지그시 감고 이별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 될 것 같았다. 심지어 노래도 잘 못하는... 그런 서로 민망한 상황.
어쨌든 피해 갈 수는 없어 내 차례가 됐다. 나는 내가 가진 우려에 대해 미리 말씀드리고 양해를 구했다. 그래서 다른 소재 하나도 정해 보았다고 덧붙였다. 처음 이런 수업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우리 엄마 연배의 할머니들이 대부분일 줄 알았는데 내 또래의 여성들, 그러니까 나와 성별이 같고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내가 쓴 묘사들을 한 줄씩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분명히 이젠 지난 일이라 아주 슬픈 감정으로 쓴 건 아니었는데
두어 줄 읽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울컥해 목소리가 떨릴 뻔했다.
'엥? 뭐야 자기가 쓴 걸 읽고(심지어 잘 쓰지도 않은 걸 읽고) 울컥 이라니 너무 꼴사납다'는 생각으로
얼른 마음을 다잡고 건조하게 문장들을 다 읽어 내려갔다.
선생님의 표정이 조금 심각하고 조금 슬퍼 보였는데, 굳이 이런 소재를 선택해 나름의 숙제를 해 온 나에 대한 예의인 듯 했다. 선하신 분 같았다.
선생님이 수강생 한 분께 의견을 물었다. 가장 좋은 문장 하나씩을 꼽기로 되어 있었다.
처음 지목된 분이, 지금은 시를 읽은 직후라 마음이 좀 그렇고 조금 이따 말하겠다고 하셨다.
다른 분이, 본인도 많이 겪었던 일이라.... 하며 눈물을 훔치셨다. 위로가 됐다고 하셨다.
또 다른 분은, 어려운 소재를 이렇게 공유해 주어서 고맙고 위로받았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른 분은, 소재 둘 중 하나를 고를 거면 앞의 것을 고르면 좋겠다고 하셨다.
내 마음을 위로하고자 써 본 글이었다. 다소 이기적이었다. 남들이 불편해지고 남들의 기분을 망칠 수 있다는 위험을 알면서도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난 적도 없는 동년배 여성들이 나를 위해 울어 주었다. 위로가 되었다고 말해주고 계속해보라고 격려해주었다.
내가 그 일을 겪고 힘들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결국 당사자는 나뿐이며 나 외에는 남편조차 내 마음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그런데 시의 일부를 읽고 그에 대해 대화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는 뜻밖의 낯선 사람들과 온전히 내 감정을 공유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남자로서 평생 경험하지 못할 상황인데도 마음이 뭉클해진다고 말씀하신 선생님까지, 우리 모두 그 순간, 한 공간에 있었다. 실은 어딘지도 모를 각자의 집에서 뚜렷하지 않는 화질과 자주 지지직거리는 음성을 참아가며 화상 채팅으로 만나고 있는데 이상하게 정말 한 공간에 있는 듯했다.
시인이 남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라면 나 같은 사람의 시를 읽고도 울어줄 수 있는 저분들은 이미 뛰어난 시인의 자질을 가진 것 같았다. 적어도 오늘 나에겐 평생 잊지 못할 따뜻한 시인들이었다. 나를 위로하기 위해 쓴 글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었고, 위로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나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로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