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속죄와 사랑
1999년 4월, 미국 콜럼바인고등학교의 졸업반 학생 두 명이 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같은 학교 학생과 교사 13명을 죽이고 24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교내 총격 사건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사건은 이후 여러 차례 크고 작은 모방 범죄가 발생할 정도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의 배경도 이 사건이다. 영화는 가해자를 절대 악으로, 피해자를 절대 선으로 설정하는 억지 드라마를 만드는 대신,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분명히 알지 못한 채 되돌릴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버린 청소년기 아이들의 혼란을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린 잔혹한 범죄가 대단한 목적의식과 고민에서 벌인 일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허탈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한 어머니의 추측/추정' 정도로 번역될 수 있는 원서 'A Mother's Reckoning'은 훨씬 더 '센' 제목의『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로 한국에 출판되었다. 한글 번역본의 제목대로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사건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이다. 딜런 클리볼드가 태어나 사건을 벌이기까지 17년, 사건 이후 엄마 수 클리볼드가 과거의 모든 기억을 끄집어 내 퍼즐을 맞추고 나름의 결론을 내고 책을 출판하기까지 꼬박 1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녀가 맞춘 퍼즐은 멀리서 보면 무슨 그림인지 선명하게 알 수 있는 뿌듯한 완성형 퍼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여전히 군데군데 흉측하게 구멍이 뚫려있다. 구멍을 메울 피스를 찾을 가능성은 요원하다. 가장 중요한 피스를 쥐고 있을 아들 클리볼드가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의 사상자를 검색하면 사망 13명, 부상 24명이라고 나오지만 사실 이 사건 현장에서 사망한 사람은 15명이다. 사건의 가해자인 두 학생도 자살했기 때문이다.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잃고도 세상으로부터 동정이 아닌 비난을 받아야 했던 수 클리볼드는 사건이 일어난 그날, 자신이 터져서 수천 조각으로 쪼개진 파편이 성층권까지 흩어질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겨운 노력이 필요하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낸 후, 어느 정도 정신이 들자 하루도 빠짐없이 사건의 실마리가 될 피스를 찾으려는 필사적인 노력을 계속한다. 자신이 햇살(sunshine)이라고 불렀던 사랑스러운 아들이 어떻게 그런 악마 같은 짓을 저질렀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살을 깎아내는 고통의 퍼즐 맞추기를 시작한다.
콜럼바인 총기난사 사건을 들여다보니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자극성 기사들의 제목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악마 같던 아이가 부모의 학대나 무관심 속에 살인자로 성장한, 원인과 결과가 분명한 '자연스러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딜런은 크면서 별다른 말썽 한번 부린 적 없는 조용하고 유순한 아이였고, 딜런의 집은 돋보기로 들여다 보아도 특별한 문제점을 찾기 어려운 지극히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었다. 딜런의 부모는 총기 소지에 대해 강경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고, 유대인 집안 출신이었던 수는 집에서 어떠한 인종 차별 발언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여느 부모와 마찬가지로 사랑으로 두 아들을 키웠다. 그런데도 딜런은 수많은 사상자를 낸 학살 사건의 가해자가 되었고, 총격 과정에서 한 학생에게 인종 차별 발언까지 한 것이 나중에 밝혀져 저자에게 다시 한번 큰 충격을 안겼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지난 16년간 수 클리볼드가 끝없이 자문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왜? 어떻게?"
가해자는 두 명이었다. 에릭과 딜런. 에릭은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고, 딜런은 심각한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 에릭이 리더였고 딜런이 추종자였다. 책의 서문에 앤드루 솔로몬이 정확하게 표현했듯, 에릭은 실패한 히틀러였고, 딜런은 실패한 홀든 콜필드였다.
임상심리학자이며 콜럼바인 수사 때 FBI 수사반 자문이었던 드웨인 퓨질리어 박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에릭은 사람을 죽이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자기가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반면, 딜런은 죽으러 학교에 갔고 그러다 다른 사람도 같이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사건 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총격 사건의 가해자 두 명은 학교에서 운동부 학생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고, 학교의 위상을 높여주는 운동부 학생들에 대한 학교 측의 편애로 인해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저자도 에릭 때문에 딜런이 세뇌를 당해 (처음에는 그렇게 믿고 싶었지만...) 학살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 다만, 둘의 조합이 문제였다. 둘은 분리되었어야 했고, 아이들의 심리 상황에 대해 학교든 부모든 (청소년기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놀라울 만큼 잘 숨기기는 하지만) 누군가는 빨리 알아차렸어야 했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말은 비유가 아니라 묘사였다고 한 저자만큼은 아닐지라도 '그 사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권하고 싶다. 그들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한번쯤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자살과 우울증, 교우 관계, 학교와 상담의 역할 등에 대해서 가볍지 않게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의 내용 이상으로 나를 사로잡은 것은 이 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였다. 그녀가 죽은 아들에게, 그다음은 하느님께, 그리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졌던 바로 그 질문을 나도 그녀에게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이런 용기를 낼 수 있었나요? 사람들의 시선과 비난이 두렵지 않았나요?
2007년 수 클리볼드는 피해자 아버지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그는 클리볼드 씨 가족과 해리스 씨 가족이 콜럼바인에서 얻은 교훈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비극 가운데 하나라고 지적하며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해야 한다고 전한다.
어떻게 자기 자식이 그 정도로 증오에 불타고 혼란을 겪는데 그걸 모를 수가 있습니까?....... 이번 사건으로 얻은 교훈을 공개적으로 발언한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군요. 물론 아주 힘든 일이겠지요. 고통스러울 겁니다. 사람들이 형편없고 자격 없는 부모라고 할까요? 그럴 겁니다....... 터놓고 말해서 겪게 될 고통이 아들을 이렇게 비극적으로 잃은 것에 대한 고통이나 아무런 참회의 행동을 하지 않는 데에서 오는 죄책감보다 더 괴롭지는 않으리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본의 아니게 누군가의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거나 큰 피해를 입혔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과해야죠!"라고 가볍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에게 "이제까지 아주 큰 실수를 한 적은 없으시군요."라고 말할 것이다. 미안하다는 말로는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너무나 수치스러워 그냥 차라리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 버리거나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그때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용기다.
수 클리볼드는 용기를 냈다. 아주 큰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남편을 비롯한 주변 사람 대부분이 그녀를 말렸을 테니까. 가해자의 부모가 하는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다는 반응도, 결국엔 자기 아들을 두둔하는 글쓰기가 될 것을 우려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녀는 용기를 냈다. 피해자 가족들에게 일일이 편지를 썼고, 현재는 자살예방협회에서 일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고 있다.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날의 사건이 누군가에게 교훈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기꺼이 그날의 일과 본인의 과오를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TED에서도 볼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BXlnrFpCu0c&rco=1) 더 나은 세상에서는 잠재적 피해자뿐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가 될 뻔한 아이들도 미리 보호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이 책은 용서나 동정을 바라고 쓴 글이 아니다. '속죄한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atone을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나온다.
atone: to do something good as a way to show that you are sorry about doing something bad 속죄: 잘못한 일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기 위해 무언가 좋은 일을 하는 것
나는 학살 가해자의 엄마라는 업보를 짊어진 수 클리볼드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속죄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사건이 일어난 후 누군가가 수 클리볼드에게 아들을 용서할 수 있냐고 물었다. 수는 기가 막혀 말했다. "딜런을 용서한다고요? 내가 할 일은 (아들을 도와주지 못한) 나를 용서하는 거예요."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 장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을 했던 저자는 장애인의 고충을 알고 있었다. 언젠가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누구든 장애를 가장 먼저 봐요. 그 사람들이 보기에 나는 사람이기 이전에 장애인인 거예요." 그 사건 이후 수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앞으로 사람들은 그녀가 이제까지 지켜온 모든 가치와 신념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살인자의 엄마'로 먼저 인식할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아들에 대한 사랑만큼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의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큰 상처를 입은 엄마들이 자신처럼 유방암에 걸린 경우를 많이 보았다는 수 클리볼드는 지금도 딜런과 에릭이 죽인 사람들의 마지막 순간을 생각한다. 콜럼바인 희생자의 삶과 맞닿은 모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죽은 아이들이 자라서 꾸몄을 가족과 이들이 만들었을 노래 같은 것도 생각한다. 자신의 죽음으로 희생자들 중 한 명의 목숨이라고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사람들의 삶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도움을 주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