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을 돌아본 시간
[고도 비만이 아닌, 평생 마르게 살아온 40대 여성의 체중 유지를 위한 고군분투기]
20대에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 중 하나는 어떻게 그렇게 먹는데도 살이 안 찌냐였다. 실제로 20대의 나는 한 번도 칼로리를 계산하며 음식을 먹거나 다이어트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생애 주기 내내 단 한 번도 살이 찐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체중이 50kg이 넘은 시기가 드물고, 넘더라도 크게 증가하지는 않았으니 평생 날씬하게 살아온 셈이다. 심지어 나의 마른 체형은 별다른 노력 없이도 쉽게 유지되었다.
30대가 되자 몸이 달라졌다. 이제는 먹으면 살이 쪘다. 너무 당연한 말 아닌가? 맞다. 오히려 20대의 내 몸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20대에 그렇게 먹어도 살이 찌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영양분이 제대로 흡수되지 않고 배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어릴 때부터 장이 안 좋아서 조금만 기름지거나 매운 것을 먹어도 화장실로 달려가는 경우가 많았고, 과민성 대장 증후군도 있어 긴장을 하거나 멀미를 하면 어김없이 화장실로 직행했다. 30대에 들어서면서 속이 많이 편해졌고, 이제야 '일반인들처럼' 몸에 영양분이 제대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건강해진 것은 좋았지만 이제 나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왜 다이어트를 하는 지를. 이제는 내가 원하는 날씬한 체형을 유지하려면 식단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다. 난감하고 당혹스러웠지만 곧 적응했다. 적당하 소식하는 습관을 들이자 위가 줄어서인지 크게 식탐을 부리지 않게 되었고, 과식한 다음 날 위장을 좀 쉬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소식하면 금방 제자리로 돌아왔다.
문제는 40대부터였다. 40대가 되니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는 몸의 변화가 여기저기에서 느껴졌다. 무엇보다 PMS 가 심해졌다. 아기를 준비할 때 그렇게 궁금했던 배란일은 이제 알고 싶지 않아도 알 수밖에 없었다. 배가 빵빵해지고, 소화가 안 되고, 변비가 심해졌다. 배가 찌릿찌릿하게 아프기도 했다. 물론 체중도 증가했다. 그렇게 겨우 배란기를 넘기면 곧 생리일이 다가왔다. 이 또한 예측 가능했다. 감정 변화가 크지 않았던 과거와 달리 생리 직전에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처럼 급격히 어두워졌고, 회사 사람이 알아볼 정도로 심하게 얼굴이 부었다.
배란 전, 생리 전에 겪는 체중 증가야 어릴 때도 겪었던 일인데 문제는 작년 여름부터 그 시기에 증가한 체중이 빠지지 않았다. 이번 달에 야금야금 증가한 몸무게가 그대로 유지되다가 다음 달 생리주기에 또 그만큼 증가... 그리고 또....
급기야 아이폰 건강 앱에서 알람이 왔다. 지난 6주간 평균 체중이 증가했습니다.
언제나 체중이 조금 증가하면 관리를 해서 제자리로 돌려놓곤 했기 때문에 아이폰으로부터 알람까지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장기적으로' 체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는 경고였다.
평소에 입던 옷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예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뱃살이 보기 싫게 나와 허리 지퍼를 채울 때 숨을 후 하고 들이마셔야 하는 상황이 싫었다. 그런 상황이 한두 번, 여러 번 반복될 때마다 짜증이 나고, 우울해지고, 자존감이 떨어졌다. 거울 속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였지만, 내 몸 하나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자기 통제력 상실에 대한 무력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나이가 드니 이놈의 몸도 늘어난 고무줄처럼 탄력성이 줄어들었는지 쭉 늘어났다가도 순식간에 휘리릭 제자리로 돌아갔던 예전과 달리, 훨씬 많은 노력을 해야 서서히, 아주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이제까지는 어쨌거나 계속 제자리로 돌아가기는 했는데, 이번에는 영 돌아가지조차 않는다. 훅 올라간 체중이 무슨 짓을 해도 그대로 유지된다. 체중계에 올라갈 때마다, 무언가 먹을 때마다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다.
작년 여름부터 이런저런 노력을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니 잘못된 접근 방식이 많았다.
체중 증량의 원인을 식단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다. (자기 합리화)
-> 갑상선 저하증과 같은 대사 증후군이나 특별한 질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체중 증가는 식단에서 비롯된다. 살이 찐 사람 대부분이 (살쪘을 때의 나 포함) '나 그렇게 많이 안 먹는데...'라고 생각(착각)한다. 혹시 어디가 아픈 게 아닐까, 호르몬에 이상이 생겼나? 아니면 근력 운동을 많이 해서 근육이 늘었나? 하는 착각... 이럴 때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하루동안 먹는 것을 기록해 보는 것이 좋다. 물론, 평소와 다른 증상이 있다면 병원에 가봐야 한다.
강박적으로 칼로리를 기록한다.
-> 내가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 식단을 기록하는 것은 물론 도움이 된다. 하지만 강박적으로 칼로리를 기록하다 보니 '아직 이만큼은 남았네?' 하는 마음에 그만큼을 더 채워서 먹게 되는 부작용이 생겼다. 식단 기록은 참고용으로 사용하고, 실제로는 천천히 식사를 하며 포만감이 언제 오는지를 느껴보는 것이 좋다.
저녁 식사 후 자기 전에 간식을 한 번 더 먹는다.
-> 야식은 금물이다. 너무 출출해서 잠이 안 오는데 이 정도야, 게다가 몸에 나쁜 음식도 아니고 견과류 한 줌인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견과류 한 줌의 칼로리는 엄청나다. 돌이켜 보면 한 줌이 아니라 몇 줌 먹고 잔 적도 많았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어, 고강고 근력 운동 고고씽!
-> 고강고 근력 운동을 하면 식탐이 별로 없던 사람도 금세 허기가 진다. 게다가 운동 가기 전에 뭔가 챙겨 먹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평소보다 더 먹게 된다.
그렇다면, 공복 유산소 운동! 오늘부터 나도 러너!
-> 공복 유산소 운동이 체중 감량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또한 운동에 대한 보상 심리로 무언가를 더 먹는다면 말짱 도루묵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운동을 하는데도 그만큼 보상이 돌아오지 않는 것 같아 오히려 지치게 된다.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안 되다니... 하며 다 놓고 싶어진다.
아예 처음부터 체중 감량=식단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다. 운동은 우리 몸을 건강하게 해 주고, 근육을 생성하여 더 아름다운 몸을 만들어 주지만, 전체적인 볼륨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결국 먹는 것을 줄이지 않으면 체중 감량의 계단을 다시 내려갈 수가 없다.
무언가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렇게 심하게 외면당했던 적이 있었던가, 허탈해하며 지난 몇 개월을 돌아보았다. 그래, 지난여름에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웃음기가 사라지고 짜증이 늘었다. 목소리톤이 낮아지고 어두워졌다. 다른 사람들과의 대화가 즐겁지 않고, 별 거 아닌 일에 화가 났다. 내 처지가 한심하고 삶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지난 6개월여간 다이어트와 몸, 건강에 대한 수많은 유튜브 영상과 자료를 찾아보았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데 변하는 게 없어 답답했다. 유튜브 영상에서 한 유명한 다이어트 전문 의사가 다이어트를 수십 년간 연구한 결과를 공유하며 몇 가지 팁을 알려주었다. 말미에 그는, 현재 본인이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상황이라면 다이어트를 일단 뒤로 미루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돌이켜보니 내가 가장 새겨들어야 했던 말이었다.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고 모든 것이 불만족스러운 상태에서 통제력을 갖기란 쉽지 않다.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 무언가를 계속 먹는 사람들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언젠가부터 내가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 그런 나를 인지하는 상황에서조차 음식을 손으로 집고, 손에 집은 음식을 입으로 가지고 가서, 삼켰다. 자기 통제력을 잃은 것이다.
아이와 물놀이하기 딱 좋은 잔잔한 앞바다 같던 내 마음이 서핑하기 딱 좋은 험한 파도가 치는 바다로 변한 상태에서 무언가를 해보기란 쉽지 않았다. 파도의 진폭부터 줄인 다음에 시작해야 했다.
심호흡을 하고 내 상황을 차분하게 바라보았다. 나를 어둠 속으로 끌어내린 원인이 순식간에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내 생활에 나쁜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가 유치원에서 받아온 숙제처럼 나도 내 삶 속의 작은 '감사한 일 찾기'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읽고 있는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책에 '세상의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 볼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그래,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때로는 어떤 문제의 원인이 A라고 확신하고 A만 계속해서 팠는데, 의외로 원인이 그 옆에 있는 B였거나, 혹은 A를 유발하는 더 근본적인 C라는 원인이 있을 때가 있다.
평소보다 많이 먹고 있었던 것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렇듯) 내 체중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A)이었겠지만 A를 유발한 근본적인 원인인 마음(C)을 다스리지 않고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음의 문제로 심리적 허기, 가짜 식욕이 생겨났던 것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왜 체중이 줄지 않느냐고 스스로에게 화를 내며 강박적으로 운동을 하고, 식단을 기록하고, 식사를 할 때마다 부담과 압박감을 느꼈던 나는 꼭 쥐고 있던 주먹에 힘을 빼고 천천히 손을 펴보기로 했다. 운동을 배울 때 늘 '힘 빼세요'가 어려웠는데, 나이가 들수록 운동뿐만 아니라 삶에서도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잠시 고강도 운동을 멈추고 오랜만에 요가를 했다. 마음에 드는 유튜브 요가 영상을 하나 골라 자기 전에 편안한 음악을 들으며 스트레칭을 하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자연스럽게 야식에 대한 욕구가 멈추었다. 예전처럼 물 한 잔 마시고 공복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도 훨씬 개운했다.
식사는 급히 차려 대충 집어먹는 대신, 건강한 식단으로 나를 위한 간단한 식사를 만들어 먹었다. 언제나 가족들이 좋아하는 것만 요리하고 챙기느라 내가 원하는 음식을 요리할 시간은 부족했는데 이제는 나를 위한 식사, 적당히 반숙으로 익힌 달걀 2개, 그릭 요거트 등을 예쁘게 차려놓고 먹어보려고 한다.
밤늦게까지 다이어트 팁을 알려준다는 유튜브를 시청하는 대신 12시 전에 잠에 들어 숙면을 취하기로 했다. 잠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를 강력 추천한다.
마음이 편안해지니 자기 통제력이 증가했다. 물론 사람인지라 매번 건강식을 지키고, 과식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이건 안 돼.' '이건 좋지 않아'라는 뇌의 명령이나 요청을 들어는 볼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이제 파도가 조금 잔잔해졌으니 우리 모두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다이어트 규칙을 하나씩 실천하면 된다. 야식을 먹지 않고, 되도록 건강식/클린식을 먹는다. 포만감을 느끼면, 혹은 그 조금 전에 식사를 멈춘다. 물론, 40대의 다이어트는 30대의 다이어트보다, 그리고 20대의 다이어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힘들다.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여성 호르몬에도 변화가 있기 때문이란다. 의학적인 기전을 내 눈으로 확인할 길은 없지만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몸의 변화가 충분히 말해주고 있다. 더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유지는 어렵다는 것을.
구체적인 노력도 노력이지만 몸을 돌보려면 언제나 마음도 함께 들여다 봐야한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닫는다. 역시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구나, 마음이 힘들다고 징징대는데 몸만 억지로 끌고 갈 수는 없구나, 그랬다간 둘 다 큰 탈이 나고야 마는구나... 출구가 없어 보이는 힘겨운 중년의 다이어트를 통해 이렇게 또 한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