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출근길 라디오에서 요즘 '밤양갱'이라는 노래가 차트를 휩쓸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너도나도 밤양갱을 찾는 통에 편의점이나 마트에서는 밤양갱 품절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했다. 밤양갱을 본래 좋아했던 라디오 디제이는 자신이 이 노래의 피해자라 주장했다. 밤양갱은 본래 양갱계(?)의 비주류로, 자기 같은 마니아들만 좋아했기 때문에 언제나 1+1에 살 수 있었는데 이 노래 때문에 1+1, 2+1 행사가 소리 없이 사라져 체감 물가 상승률 100% 라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노래길래?
"그럼 한번 들어볼까요?"라는 디제이의 말에 부푼 기대감으로 얼른 볼륨을 높였다.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잠깐이라도 널 안 바라보면
머리에 불이 나버린다니까'
나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로
너랑 나눈 날들 마무리했었지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떠나는 길에 니가 내게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내가 먹고 싶었던 건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이야
상다리가 부러지고
둘이서 먹다 하나가 쓰러져버려도
나라는 사람을 몰랐던 넌
떠나가다가 돌아서서 말했지
'너는 바라는 게 너무나 많아'
아냐 내가 늘 바란 건 하나야
한 개뿐이야 달디단 밤양갱
처음 들어 본 젊은 여자 가수의 목소리가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아니 달콤한 밤양갱처럼 부드럽게 귀를 간지럽혔다. 사랑스러운 소녀가 어깨에 큰 퍼프가 달린 파스텔톤 드레스를 입고 샬랄라 왈츠를 추는 것 같았다. 나는 이따 남편한테도 들어보라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길 다른 라디오 방송을 듣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밤양갱을 들어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집에 돌아와서는 여섯 살 딸아이와 저녁을 먹으며 밤양갱을 함께 들었다. 얼마나 많은 노래가 가사는커녕 제목, 아니 멜로디 한 마디도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지는가를 생각해 보면 놀라운 일이었다. 노래를 들은 바로 그날,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노래를 함께 듣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밤양갱의 매력에 이끌려 인터넷에 '밤양갱'을 검색하니 노래에 얽힌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졌다. 몇몇 기사의 제목은 '아이유 제친 어둠의 아이유’로 시작했다. 밤양갱을 부른 비비라는 20대 가수는 아이유처럼 고운 목소리와 뛰어난 가창력을 가졌지만 이 곡 이전에는 나쁜 X 같은 센 언니 스타일의 노래를 주로 불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람들은 그녀의 전혀 예상치 못한, 무엇보다 '성공적인' 변신에 박수를 보냈다. 게다가 그 노래의 작사/작곡가이자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한 가수가 장기하라는 사실도 사람들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였다. 신곡을 발표하면 언제나 1위를 놓치지 않는 아이유를 '꺾은' 가수가 오래전 아이유의 연인이었던 장기하가 만든 노래를 부른 가수라는 점을 들며 '장기하의 복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이 모든 것이 밤양갱의 대단한 인기를 증명했다. 그나저나 왜 여자는 내가 바란 건 단 하나, 밤양갱뿐이라고 했을까?
남자는 여자에게 이별을 고하며 너가 바라는 게 너무 많아서 나는 너를 떠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자는 나라는 여자를 너는 어떻게 이렇게 모르냐며 내가 바란 건 오직 '밤양갱' 뿐이라고... 혼잣말을 한다. 노래 가사가 더욱 슬픈 이유는 이것이 여자의 혼잣말이기 때문이다. 남자에게는 흐르려는 눈물을 참고 하려던 얘길 어렵게 누르고 '그래 미안해'라는 한 마디만 했을 뿐이다. 어차피 남자는 나라는 여자를 모르고, 앞으로도 알 수 없을 테니까.
전에 남편에게 "사랑은 야채 같은 거야. 그치?" 하며 이 시를 보내준 적이 있다. "뭔 소리야" 라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난 늘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아니 그가 먹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씨앗을 품고 공들여 보살피면
언젠가 싹이 돋는 사랑은 야채 같은 것
그래서 그녀는 그도 야채를 먹길 원했다
식탁 가득 야채를 차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오이만 먹었다
그래 사랑은 야채 중에서도 오이 같은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야채뿐인 식탁에 불만을 가졌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고기를 올렸다
그래 사랑은 오이 같기도 고기 같기도 한 것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녀의 식탁엔 점점 많은 종류의 음식이 올라왔고
그는 그 모든 걸 맛있게 먹었다
결국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 사랑은 그가 먹는 모든 것
- 성미정 「사랑은 야채 같은 것」
언젠가 유명한 요리연구가가 한 텔레비전 상담 프로그램에 출연해 오랜 결혼 생활 동안 남편에게 느낀 좌절감과 실망, 서운함을 토로했다. 결혼 후 매 끼니마다 따끈따끈한 갓 지은 밥과 뜨끈한 국, 맛깔스러운 반찬 몇 첩을 해서 정성스레 남편에게 상을 차려 주는데 남편은 언제나 채소만 먹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언뜻 들으면 뭐 저런 남편이 있나 싶다. 차려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건 세계 어디에서나 음식을 한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닌가. 하지만 세상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이 남편을 보라, 성미정 시인의 시에 나오는 남편과는 취향이 정 반대다!
내가 차려놓은 음식을 바로 먹지 않는 그를 보면 나는 자주 서운했고 때로는 화가 났다. 내가 요리에 쏟은 진심과 정성과 시간이 모두 무시당하는 느낌이었다. 음식이 많이 식어버린 후에야 숟가락, 젓가락을 가져다 대면 나는 그게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가장 맛있을 때 먹어야지. 그 맛을 놓치다니...' 돌이켜 생각하니 내가 화가 났던 이유가 정말 그를 위한 안타까움뿐이었을까 싶다. 그가 최고의 맛을 '느끼지' 못해서가 아니라 내가 내 요리 최고의 맛을 '보여주지' 못해서였던 것은 아닐까.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는 '뜨끈한' (그에게는 '뜨거운') 국을 잘 먹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다는 걸...심지어 커피도 어느 정도 식혀서 먹는다는 걸... 조금이라도 국이 식으면 다시 펄펄 끓여서 내왔던 나의 엄마처럼 나도 그렇게 대접하는 게 사랑인 줄만 알았다. 오이면 된다는데 식탁 가득 야채를 채우고 왜 안 먹냐며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