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르마타 Jan 11. 2022

청년의 '최저선' 옮기기

서울시청년허브 청년의제발굴포럼 토론문

청년기본법은 ‘청년’을 19세 이상 34세 이하인 사람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하게 잡아도 천만 명에 육박하는 청년들은 그 자체로 다양하므로,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재료나 어떤 서사든 청년담론이 되고 청년의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청년의제는 개인(individual) 청년의 기본적인 생존이나 기초적인 욕구(needs)를 충족시키는 ‘최저선’의 문제로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 최저임금, 실업자를 취업자로 만들기, 지하·옥탑방·고시원 등은 대표적인 청년의제로 기능해왔으며, 여전히 평균적인 사회 인식은 여기에 머물러있는지도 모른다. 청년의제가 청년이 청년 자신의 삶을 제도적으로 진흥시키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문제로 좁혀지는 일, 이는 오늘날의 참여와 거버넌스, 각종 사회 제도들이 부추기고 있는 치안(police)의 방식이며, 동시에 공론장에서 말하는 청년에게 자세대 이기주의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우는 통치성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청년’이라는 기표, 그리고 여기에 이해관심을 갖는 청년 행위자들의 실천은 언제나 그러한 최저선을 초과해왔다. 나는 언제나 청년 장을 관찰하면서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성평등, 장애, 기후위기, 위계주의/엘리트주의 타파 등의 미래의제 혹은 ‘문화적’ 의제들이 등장하는 것을 흥미롭게 여겨왔다. 사회의 주류가 ‘청년’이라는 기호에 붙여 놓지 않은 이질적인 단어들이 접합될 때, 청년은 청년 자신을 넘어, 동료 청년들, 나아가 동료 시민들이 살아갈 오늘과 내일의 사회를 위해 행동하는 시민으로 재탄생해왔다. 기성의 틀을 답습하기보다는 새로운 상상력으로 그 틀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열어낸 서울시청년허브나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와 같은 조직들은 그러한 창발성을 촉진하는 역할을 해 왔다.     


이러한 과정에서 ‘청년’과 떨어뜨려놓을 수 없게 된 청년의제가 바로 불평등이라고 하겠다. 불평등은 오늘날 다른 세대를 포함한 어느 사회집단에서나 존재하지만, 그 의제 자체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매개 없이 직면하기 어려운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청년을 이야기할 때 이 세대가 전/후 세대와 비교해 놓여 있는 구조적인 어려움보다는 세대 내의 불평등이나 격차를 논의의 기본 전제로 두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헬조선-흙수저-금수저-‘ㅈ소기업’과 같은 계열체의 단어들은 청년 개인들이 세계를 볼 때 불평등의 프레임을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는 ‘청년’이 불평등의 완곡어법, 혹은 (청년 사회학 연구자인 조민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불평등의 환유(metonymy)로 기능하고 있음을 뜻한다. 청년과 불평등이 밀접하게 연결되는 과정에는 분명히 담론정치가 끼어 있는데, 그러한 면에서 최근 대중적인 청년의제로 여겨지는 능력주의와 공정의 문제 역시 담론적이고 비-본질적인 정치 과정의 맥락 위에서의 해석을 필요로 한다.     


서울시청년허브가 올해 청년의제 발굴 사업을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앞서 설명한 맥락에서 아직까지 청년과 아주 가깝게 붙어있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중요하게 청년의제로서 논의해야 할 미래의 무엇을 예비하는, 또 자꾸만 ‘청년은 청년 얘기나 하라는’ 경계와 분할 만들기를 넘어서는 하나의 발판이 생겨나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들었다. 물론 최종 결과물에서 보이듯 이번 청년의제발굴 이슈브리프의 주요 내용은 일반적으로 청년의 삶과 밀접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어떤 범위를 굳이 넘어서지는 않는다. 불평등이나 공정과 같은 추상적 개념의 수준에서, 혹은 아주 구체적인 의제 항목의 수준에서 결론이 도출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어쩌면 오히려 일정하게 논의의 폭을 제한하는 과정에서 지금 시점에 정말 필요한, 갇혀 있는 논의의 틀을 깨뜨리는 데 실용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청년의제를 이 이슈브리프가 제안할 수 있게 되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앞서 나는 청년의제가 청년이 굶어죽지 않도록 하는 ‘최저선’으로 여겨져 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는 청년을 사지가 멀쩡하고 자유로운 상태에 있는 평균인간으로 상상하는, 먹고 사는 생존의 문제가 다른 모든 것에 우선하며 전자만이 세금을 지출할 수 있는 항목으로 보는 일정한 ‘구태’에 의존하고 있다. 이번에 서울시청년허브가 발간한 청년의제 발굴 이슈브리프는 이러한 ‘최저선’이라는 개념을 재정립하고 그 실질적인 포괄 범위를 저 앞까지 밀어올리는 정치적 개입을 명확하게 수행하였다.      


최저선의 재구성은 다각도에서 이루어진다. 그간 청년들이 “청년정책은 일자리를 넘어 청년의 삶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해 온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청년의제의 최저선으로 일, 주거(혹은 교육, 복지, 건강)뿐만 아니라 관계, 참여라는 항까지가 당연한 듯이 포함되어있다. 적어도 청년의제라면 최소한의 보장만을 이야기할뿐만 아니라 충분한 보장을 이야기해야 하며, 안전하며, 다양하고, 평등해야 한다는 추가적인 조건까지 ‘최저선’으로서 만족시켜야 한다는 질적인 도약 또한 이야기하고 있다. 최저선을 판단하는 새로운 뉴-노멀의 기준으로 단기근속은 이제 일상이 되었으며, 청년 문제는 병리적 현상이 아니며, 청년은 소위 ‘전문가’들과 평등한 참여를 할 수 있는 시민임을 제시하고 있다.     


이같이 재구성된 최저선은 사실 거버넌스 및 청년참여, 활동 영역 등에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들 사이에서 이미 어느 정도 공유되어 있으며, 다양한 말과 글을 통해 편재된 지식으로 조금씩 사회의 구성 분자로 채워지고 있는 내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실 이러한 감각이 종합적으로 언어화된 자료 형태로 발간된 적은 많지 않았기에, 각자의 생활 공간에서 관점의 부딪힘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조금 더 어렵게 해 왔던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청년의제 발굴 이슈브리프가 다양하게 인용되는 모험을 지속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서울시청년허브에서 2021년 12월 16일 진행된 '청년 의제발굴 포럼 <서울 청년의 안녕을 위한 모두의 과제>' 토론을 위해 "2021년 청년의제 발굴의 의의"라는 제목으로 쓰였습니다.


** 이 글에서 지시하고 있는 <청년의제 이슈브리프>의 PDF파일은 이 링크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당사자 개념의 난감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