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돌아왔다. 옆에 꾀죄죄한 남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키도 나보다 작고 빼빼 마른 게, 안 그래도 까만 피부가 더 꼬질꼬질해 보였다. 한국말이라곤 ‘안녕하세요’도 제대로 못하는 그애 앞에서 나와 동생들은 벙쪘지만, 그애가 엄마를 쏙 빼닮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열네살 내 인생에 폭풍우가 몰아치겠구나, 나는 예감했다.
엄마가 필리핀으로 돌아간 지 4개월 만의 일이었다. 이젠 진짜 끝이라고, 더는 못 살겠다고 우스꽝스런 한국어로 시발시발 욕을 섞어가며 짐을 쌌더랬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 우는 동생들 달래며 나는 엄마가 저러다 말겠거니 했다. 담날에도, 그 담날에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았다. 충주 사는 안젤라 이모네 잠깐 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진짜 떠나버린 걸까? 비행기표 살 돈이 아까워 8년동안 친정 한 번 안 다녀온 엄마가 정말?
그러니까 저 남자애는 엄마가 결혼 전에 필리핀에서 낳은 아들이었다. 그 말인즉슨 내게 배다른 ‘큰오빠’가 생겼다는 뜻이다. 160이 될까말까한 저애가 나보다 세 살이나 많단다. 얼음이 된 나와 달리 아빠와 할머니는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엄마가 돌아오는 대신 아빠와 모종의 거래를 한 게 분명하다. 떼놓고 온 아들을 데리고 오는 게 조건이었을까? 경주김씨 상촌공파 37대가 곧 자신의 정체성인 아빠가 말도 안 통하는 외국인 남자애를 장손으로 받아들이다니. 못사는 나라에서 돈주고 사왔더니만 말도 더럽게 안 듣는다며 만날천날 엄마를 못살게굴었으면서. 엄마는 왜 맞고도 이혼을 안 하며, 아빠는 왜 눈만 뜨면 간난애처럼 엄마부터 찾는 걸까? 풀리지 않는 의문 투성이로 머릿속이 가득찬 내겐, 사춘기도 왔다가 되레 겁먹고 달아날 거다.
돌아온 엄마는 달라졌다. 밭일이 끝나면 저녁밥을 차리는 대신 대문 앞에 선 하얀색 모닝차 뒷좌석에 올라 어딘가로 사라졌다. “여편네가 춤바람이나 나갖고는…” 아빠는 혀를 끌끌 찰 뿐 예전처럼 엄마를 맘대로 다루진 않았다. 역시 여자의 한방이란 이렇게 효과가 있구나, 생각하며 라면이라도 끓여드릴 요량으로 부엌에 갔더니 웬걸, 하루아침에 큰오빠가 된 쪼만한 남자애가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엄마따라 한국 오면 매일 고기반찬 먹는 줄 알았겠지? 학교도 못 가고 알코올중독자 새아버지에 치매 걸린 새할머니 밥상 차리는 인생이라니. 술 안가져올 거면 필리핀으로 가버리라는 말이나 듣는 큰오빠 너도 참 기구한 인생이다.
춤바람 난 지 한 달 쯤 흘렀을까, 엄마가 나를 꼬드겼다. ‘매니저’라는 그럴듯한 명목으로. "참내, 엄마가 무슨 연예인인 줄 알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궁금했다. 엄마 따라 탄 자동차는 레베카 아줌마네 삼밭에 도착했다. 창고용 비닐하우스 안에는 알전구가 얼기설기 걸려 있었고, 오래된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필리핀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가을에 열리는 다문화 페스티벌에 나간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안은 내가 상상했던 춤바람 광경과는 달랐다. 조이 아줌마 딸은 울어제끼고 레베카 아줌마는 한살짜리 애기를 포대기에 싸 업고 연습을 이어나갔다.필리핀에서 주문한 의상에 직접 만든 모자, 음악에 스피커까지, 매니저는 반드시 필요해 보였다. 나는 그날부터 못이기는척 엄마를 따라다녔다.
“충북 단양 팀, 버터플라이!” 레베카 아줌마의 당당한 외침과는 달리 엄마들은 스태프 손에 떠밀리듯 얼결에 무대에 올랐다. 연습한 춤의 반도 못 보여주며, 스텝을 밟는 대신 눈알이 이리저리 굴렀다.
버터플라이라니, 애써 바다건너 볼것도 없는 산골로 들어와, 도망치지 못해 사는 사람들에게 잘도 어울리는 팀명이다. 그렇게 연습해놓고 무대에선 왜저렇게 쫄아 있는지 하여튼 엉망 투성이다.
형편없는 춤사위에 뒤숭숭해진 객석에서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낯선 나라의 노래를 따라부르는 사람은 큰오빠였다. 목이 터져라 노래를 부르는 오빠를 시작으로 객석의 박수가 박자 맞기 시작했다. 흥이 오른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관광버스춤을 추기도 했다. 무대에 올라서야 고향이 떳떳해지는 엄마, 그런 엄마를 보며 고향의 노래를 부르는 큰오빠, 정말 못났다. 아빠는 맨날 경주김씨 상촌공파 37대손을 자랑으로 삼고 사는데, 엄마는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 필리핀을 지워야 한다. 몸빼바지에 고무장화 신고, 된장 끓여 밭에 나가야 한다. 아빠도 밉고 엄마도 답답했다. 큰오빠 뭐가 예쁘다고 내가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지, 쪽팔려서 울기 싫은데, 자꾸만 눈물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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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가 쓴 「오빠가 돌아왔다」 첫 문장을 패러디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