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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란 Jan 31. 2019

(사랑경영)만두 반죽을 빚던 손으로 책장을 넘기다

2019, 출간예정! 출간전 미리보기



용희는 점심을 먹은 뒤 무의식적으로 생수대의 버튼을 눌렀다. 컵안으로 맑은 물이 차르르 쏟아졌다. 물을 한 모금 꼴깍 삼키는 순간 지난주 독서 모임 때 읽었던 책에 나온 내용이 생각났다. 멀리 있는 다른 나라에서는 맑은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 더러운 물을 마시고 병에 걸려 고통을 겪는다는 내용이었다.



용희는 나머지 물을 마시면서 그 아이들이 먹을 물도 없고, 씻을 물도 없는 것이 가엽게 느껴졌다. 한국에 온 뒤로 지나치게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던 참이었다.



한국의 도시 서울이 누리는 호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가진 사람들,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뼈아픈 박탈감을 안겨주었고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비교하며 자신의 불행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다. 용희는 서울에 와서 사는 동안 ‘이 정도면 족하지.’ 하고 생각 해본적이 없었다. 북한에서의 삶은 생존의 기본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처절한 삶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하루 세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싶지 않았지만 도무지 그들을 따라잡을 방법은 보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같은 얼굴, 피부색, 같은 언어를 쓰는데도 그들은 자신을 외국인보다 차갑게 대했고 친구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용희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가엽게 여긴 것은 처음이었다.



생수컵을 든 채 한참을 그 자리에 돌 비석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낯선 기분이긴 했지만 행복했다. 돕고 싶었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희, 여기서 뭐해?”




어깨를 두드리며 얼굴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순화였다. 순화는 회사에서도 다른 사람의 마음과 상태에 관심이 많았다.




“순화 부장님. 저 사장님과의 인재미팅 또 언제 하는 거에요?”



“오오. 용희가 사장님과의 인재미팅이 좋았구나! 때마침 그 얘기도 하려고 했는데. 오늘 오후 네시 어때? 사장님이 때마침 미팅이 취소되셔서 말이야.”



“네! 그러면 제가 오후 네시에 사장님 사무실로 찾아갈게요.”



용희는 생산실로 들어가기 전 위생실에서 손을 씻고 작업복의 먼지를 닦아냈다. 신발을 갈아 신으며 자기도 모르게 콧노래가 나왔다.



“용희가 오늘 좋은 일이 있나보네. 노래를 다 부르고 말이야.”



“그러게. 용희가 이렇게 기분 좋아보이는 건 처음이네.”



아주머니들은 저마다 한 두마디씩 했다. 용희는 그런 관심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혼자가 아니었어. 이렇게 가족처럼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걸….’



용희는 일을 하면서도 주변을 살폈다. 도울 일이 있는지 살펴보며 가서 거들며 사람들의 농담에 웃기도 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오후 네시가 가까워졌다. 기다렸다는 듯이 한달음에 루디아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똑똑.

용희는 루디아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향긋한 라벤더 향이 포근하게 다가왔다. 루디아는 미소를 지으며 용희에게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용희는 두 손을 모으고 루디아에게 허리를 굽혔다.



“사장님, 독서 모임을 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루디아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 용희가 인재미팅을 기다렸다더니 그 말이 하고 싶어서 그런거에요? 이리 와서 앉아요. 책을 읽으니까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죠?”



루디아는 코끝이 시원해지는 페퍼민트 차를 용희에게 건내 주었다. 용희는 차를 호호 불며 손으로 컵을 감쌌다.



“저는 한국에 와서 여태까지 제 발끝만 보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갖지못한 것, 할 수 없는 일들,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휩싸여서 그 이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어요.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제 생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걸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보물이에요. 그제서야 배울 마음이 생겼으니까요. 오늘 낮에는 처음으로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생각이 뜨겁게 솟구쳤어요. 나는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누굴 도울수도 있고, 또 돕고 싶어지다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사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지난번에 사랑은 ‘이유’를 찾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라고 하셨죠? 저에게도 이유가 생겼어요. 저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을 거에요. 사장님이 그러신것처럼요.”



용희는 쉬지 않고 이야기했다.


폭포수처럼 말을 쏟아내며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루디아의 눈에도 이슬이 맺혔다.



“용희가 그렇게 생각해줘서 기뻐요. 정말 기뻐요. 처음 독서 모임을 시작할때가 떠오르는군요. 오늘 용희에게 해줄 사랑에 관한 두번째 이야기와도 관계가 있을 테니 함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죠. 제가 두번째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성장’이에요. 사랑은 함께 성장하는 것이랍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남과 나를 비교하려는 유혹을 이겨내야 한다는 점이에요. 우리는 본능적으로 남과의 비교를 통한 우월감, 혹은 열등감에 빠지기 쉬워요. 그렇지만 사랑은 남과의 비교가 아닌 내가 지금 달리는 레일위에서 최선을 다해서 뛰고 서로를 격려해줄 때 빛이 나는 거랍니다.”



용희는 분홍색 노트에 루디아의 이야기를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써내려갔다.



“처음 회사에서 독서모임을 할때만 해도 지금처럼 멋진 생산실이 따로 있는게 아니었어요. 원룸같이 작은 공간에 식탁 3개를 붙여서 만두 피를 밀고 만두를 싸고 찌고 식혔죠. 그야말로 손에 밀가루 반죽 묻어있는 직원들에게 책을 손에 들려주고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읽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했나 싶어요.”




루디아는 생각에 잠긴 듯 잠시 말을 멈췄다. 용희는 궁금한게 있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독서대회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누가 1등을 한거에요?”





독서대회 최우수상을 발표하는 날이었다. 열명 남짓의 직원들은 저마다 한달 월급만큼의 상금이 걸린 독서대회에 열정이 뜨거웠다. 심사를 위해 독서 후기를 살펴보던 루디아는 ‘최분례’ 사원의 과제를 받아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두 과제를 하나만 냈는데 ‘최분례’ 사원의 과제는 두개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또 하나의 과제에는 지렁이가 기어가는 것 같은 구불구불한 글씨로 띄어쓰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채 신약성경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루디아는 그녀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직원들은 독서대회 시상식을 하기 위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여러분, 독서대회를 위해서 열심히 책을 읽고 멋진 독서 후기를 제출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전문 작가가 쓴 글처럼 멋진 글도 많이 있더군요. 여러분의 실력을 다시 봤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가장 특별한 독후감을 내주신 분께 최우수상을 드리려고 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 동료들 중에는 글자를 쓰고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딸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부탁해서 책을 모두 귀로 읽은 후에 다시 독후감을 딸에게 불러주어서 독후감을 써온 분이 계세요. 그분이 하나 더 과제를 내서 이유를 물었더니, 모두 자신이 직접 읽고 직접 썼는데 글자를 모른다는 이유로 딸에게 부탁해서 작성을 한 것이 하도 미안해서 성경을 펴놓고 스스로 옮겨 적었다고 하시더군요. 대학교를 나와서 책을 읽고 멋진 글을 쓰는 것보다 열배는 더 노력해주신 최분례 사원에게 최우수상을 드리고 싶습니다.”



루디아는 최분례의 손을 덥썩 잡았다. 마디가 굵고 굳은살로 빼곡한 거친 그녀의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이고. 제가 이 상을 받아도 되나요? 저는 그저 뭐든지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실천하고 싶었을 뿐인데요…. 1등을 할만큼 잘한건 아닌데. 미안해서 어쩌나.”



최분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직원들은 눈시울이 저마다 붉어져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왜 받을 자격이 없어요! 최분례! 최분례!”

직원들은 그녀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를 했다. 루디아는 준비한 상금과 상장을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태어나서 상이라는 것을 처음 받아봅니다….”



최분례는 말을 잇지 못했다.


루디아는 용희에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 문화라서 그런지 한만두에는 지금껏 책 읽는 문화가 건강하게 뿌리내려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장님, 이제부터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글자를 모르는 분도 글을 읽었으니까요.”



루디아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대신 용희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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