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일인지는 잘 모르겠다. 전화를 받고, 물건을 사고, 문제를 해결하고, 새 상품을 고민한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면 팔 궁리를 하고, 판매되기 시작하면 더 잘 팔기 위한 레일을 깐다.
그렇게 돌아가고 돌아가는 삶은 내가 회사원일 때 느꼈던 쳇바퀴와 별반 다를 게 없다.
작년 겨울이었나. 유독 춥고 늦은 밤에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퇴사를 하고 싶기도 한데.
그만두자니 너무 멀리 왔고, 계속 가자니 길을 잃었다고. 무엇보다 출구가 없으니 그냥 행복할 때 까지 계속 가는 수밖에 없겠군.
아, 그 행복이라는 놈은 도대체 어디에 있나, 헤집어본다.
그러고보니 오늘도 몇몇이 찾아오긴 했다. 오늘 아침 주차를 하고 내리면서 불쑥 '미역국이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매일 배달오는 도시락에 뜨끈하게 담긴 미역을 보았을 때 그랬고. 큰 탈 없이 하루를 보내고 까르르 웃으며 돌아가는 그녀들에게 손을 흔들 때도 그랬고.
택배를 수거하러 오신 기사님 손에 들려있는 호두 파이를 보았을 때도, 그랬다.
물론 그 파이 맛이 좋아서기도 하지만, 나와 이 공간, 이 사람들을 생각해 주신 마음덕에 감동의 파도가 밀려 오 - 던 그 때.
왜 폭풍우는 잔잔한 바다 한 복판에서 일어나는 지.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리고, 얼마전 250개 정도 줄전구를 구매하신 고객님의 하소연이 시작된다.
거의 절반이 불량인데 유치원에 납품을 해야 하는데 - '아이고, 이를 어째'
상담을 할 때는 F의 공감과 T의 문제해결을 함께 해야하는데 기사님이 이미 사무실에 와서 물건을 가져가고 계실 때는 서두를 수 밖에 없다. 이 시간이 지나면, 내일 출고를 할 수 밖에 없으니까.
곡소리를 잠깐 멈추고 고객님께 원하시는 해결방법을 물으니 불량 수량에 더해 여유분만큼을 받는 것이 필요했다, 그것도 되도록 아주 빠르게, 그리고 이번에 받는 물건에는 불량 수량이 없도록 검수를 더해줄 것.
네, 알겠습니다를 끝으로 전화를 끊고 주변을 둘러본다. 여덟개의 손이 모두 분주해서 도무지 도움을 요청할 구멍이 없다. 나는 남아있는 줄전구 박스를 몽창 쏟아붓고 하나씩 불이 들어오는 지 체크하기 시작했다. 되는 놈, 안 되는 놈, 안되는 놈, 되는 놈, 분류를 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기사님은 가셔야 하는데, 가셔야 하는 그 기사님이 멀쩡한 줄전구 찾기에 합류하셨다.
'아이고! 괜찮은데'라고 말해야 하지만 전혀 괜찮지 않다. 어쨌든 150개의 멀쩡한 전구를 보내야 하는데 나 혼자서는 빠르게 해낼 수 없으니까. 그래서 나와 기사님은 엄지손가락 만한 전구의 스위치를 켜고 끄고를 반복한다. 죄송스러워서 웃음밖에 안나오는 상황이 민망하고, 감사하고, 아주 복합적인 마음이 든다.
미안함에 고개를 들지 못하는 우당탕탕 택배 마감이 끝나고, 검수가 끝난 줄전구 150개를 포함한 수북한 박스들과 함께 기사님이 떠나시고 나니 남은 사람들은 6개의 맞붙인 테이블 앞에서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를 주문처럼 외운다. 오늘의 수고, 오늘의 고생, 이런 저런 감상들을 나누고서 각자의 가정으로 흩어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다. 나는 오래 오래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과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