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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Feb 14. 2024

변화의 시대를 산다는 건 참.

피곤한 일이다.



한 달 전이었나. 대학 동창의 결혼식이 끝나고 동기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I am  신뢰해요'를 못 알아듣고

디지털 원숭이가 된 적이 있다. 그래서, 가끔이라도 뉴스는 좀 챙겨봐야지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아침, 눈 비비고 네이버 뉴스를 보다가 부자 리포트를 훑어 보았다. 가물가물한 글자들 틈으로

10억, 금융, 부동산, 사업, 자산과 같은 단어들이 걸어다닌다. 10억. 몇 채의 건물, 서울의 집.

핸드폰을 내려놓고 하루를 향해 걸어나가게 만드는 개념들.


15분 남짓 운전을 하면서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입에 풀칠하는 삶을 바란 끝에 만난 오늘의 현실에 대해. 어떤 책에서 읽은 문장을 곱씹게 되는 것이다.

세상은, 내가 바란 꼭 그만큼을 돌려준다.

더 큰 것을 바랐다면, 분명 오늘의 모양새는 달랐으리라.


매서운 겨울 바람을 뚫고 아주 많은 주문을 처리한다. 쇄도하는 문의와, 오늘도 끊이질 않는 문제와, 긴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끝마쳐야 하는 퀘스트들 속을 헤엄친다. 하루가, 도대체 어떻게 흘렀나 싶게 저녁이 오고, 택배가 마감되고, 기사님과 선생님들이 모두 돌아간 사무실에, 다시, 홀로 앉아서.


생각한다. 트렌드 코리아 2024와 벌써 업그레이드 버전을 내놓은 달리와 많은 것을 위협하며 동시에 많은 것을 약속하는 알 수 없는 내일에 대해.

주어도 목적어도 없이 우물거린다.

내일은, 내일에, 내일에는.

부지런함으로는 모자라다.


읽기 설정을 해 둔 밀리의 서재는 퇴근길 차 안에서 또박 또박, 한 숨도 쉬지 않고 철자를 읽는다. 기본 소득이라는 달콤한 주장을 한 꺼풀 벗겨내면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엄청난 소득 격차, 에도 불구하고 소비력을 유지시키기 위한 욕심이 존재한다고, 그인지 그녀인지 모를 1.5배속의 목소리는 말한다.


세상은 고조선때부터 오늘까지 수십 수백차례 바뀌었고

그 변화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들은 늘 황금마차를 탔다.

세상이 변할 때 인생에도 바람이 불 수 밖에 없는 것은

누군가 부지런히 박자에 맞춰 오셀로 판을 뒤집기 때문이다.

가만히 있다가는 누군가의 장기 말 하나가 될 뿐인,

사실적 공포.


역사 속에서 대부분의 삶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봉화를 올리든 깃발을 들든 피를 흘리지 않고서는 뒤집을 수 없었지만 이 미친 속도의 세상은 10년, 다시 5년,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판을 흔든다.


애플 주식은 놓쳤지만, 비트 코인은 놓쳤지만, 지난번 하락장은 놓쳤지만,

그 트렌드는 놓쳤지만, 그렇지만, 이렇지만, 저렇지만.

이번에는 기필코 밀려오는 파도 위에 올라서고 말겠다는 다짐.


이 총성없는 전투 속에서 '내가 조금만 부지런했더라면'

뒤집힌 채 우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늦은 후회를 이번에는 말아야지, 이를 가는 밤을.


슬프게,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한다.


특별할 것 하나 없는 나 역시 그 게임에,

원하고 자시고 상관없이 올라와 있을테니,

이왕이면 기꺼이 달려드는 편이 좋다.

더 최선을 다해 머리를 짜내는 편이 낫다.

펜을 총처럼 들고 시간과 손발을 대포처럼 굴리며

무어라도 해야 옳다, 라고 쓰는 생각이 왜이리,


슬픈지, 안타까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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