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성씨 Dec 29. 2023

상상도 버거운 엄청난 일 앞에서.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걸까.



마냥 걷기만해도 기분 좋은 찬란하고 상쾌한 온도 사이를 거닌다. 

어릴 때. 벌써 어린 시절, 이 되어버린 20대 중반 어느 날에. 

함께 첫 번째 회사를 다녔던 친구가 결혼을 했다. 

꼭 닮은 신랑과 인사하는 순간, 우리의 20대 역시 손을 흔드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꿈이 있다. 있었다. 
막연히 부자가 되는. 아주 비싼 차를 타고 아주 높은 집에 사는. 

홀로 고고히 빛나는 삶에 대한 꿈이. 스물, 스물 하나, 원단을 자르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나에게 있었다.

그 때부터 10년, 하고도 두세 살을 더 먹은 여자는 같은 거리를 느긋한 눈매로 걷는다. 
꿈이 있다. 아직도 비슷한 것을 꿈꾼다. 

다만 이 그림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높은 산을 오를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아쉽게도. 또 고맙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더라. 

코엑스 맞은편. 우뚝 솟은 갈색의 멋진 건물을 보면서 생각한다. 같은 꿈을 꾼 여러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운 곳에서 일상을 공유하면 참 좋겠다. 


치열한 세상이다, 그렇지 않나. 

밤 10시까지 의대반을 준비하는 초등학생이 있는 도시. 영어 유치원 시험에 떨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엄마가 사는 도시. 내 이야기가 되면 나 역시 분주해질 경쟁의 세상. 

그래도 예쁜 내 친구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맞절을 한다. 빌딩숲 지하에서 사람들은 임산부와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동짓날 밤이 길어도 끝끝내 산 너머 찾아오는 아침처럼. 고개 숙인 사람에게 손 내미는 따뜻함이 있다.


엄마아빠를 준비하는 입사동기 셋이 옹기종기 앉았다. 결혼을 축하하면서 각자의 오늘을 고민한다. 두 돌을 넘긴 아들아빠는 육아의 고단함과, 지출의 크기와, 시간의 절박함을 논하다가, 그래도 둘째 생각을 한다. 

아홉 번의 괴로움을 한 번의 웃음으로 잊는다고 했다.


 ‘부모가 되는 건 너무 엄청난 일이라 나는 못 할 것 같아.’


웃으며 말한다. 절반의 진심, 약간의 자조를 담아. 


신랑 신부가 하객들 테이블을 돌며 인사한다. 푸른 드레스를 입은 친구가 해사하게 웃었다. 

사람 좋은 미소를 띈 신랑과 부모님께 인사하면서 문득 나의 결혼식을 생각한다. 

이 뜨거운 축복을 동일하게 주었을 감사한 사람들. 

수많은 축하 속에 세상이 무너져도 함께라 괜찮은 남자와 백년가약을 맺은 것은, 기적이 아니었나.

어쩌면 지금 나의 일상도 어느 과거에 비추어 보면 엄두가 나지 않는 성공이다. 

그러니까 다시 한번 엄청난 일을 꿈꾸어도 괜찮지 않겠느냐고, 박수 치는 심장이 속살거렸다.


결혼식장을 나와 꽃들로 둘러싸인 카페에서 라떼와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아웃한 우리는 각자의 토요일을 향해 걸어가며 마지막 담소를 나눈다. 예비 엄마 아빠에게 육아 선배의 말은 황금 같다. 그 값비싼 육아를 어떻게 견디느냐고,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건 뭔 지 물으니 바닥 매트, 유모차, 카시트. 

다양한 육아템 리스트가 돌아온다. 


‘그런데 말이야, 이것저것 생각하면 못하겠더라고.’


그래, 그 말이 맞다.


어떤 일들은 마음먹기와 상관없이 벌어지고, 무너지고, 제 멋대로 길을 만들며 자라난다. 

그 무자비한 불확실성이 매일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오는 반가운 소식, 내심 바랬지만 내 손에 결정권이 없는 무수한 일들을 헤엄치면서 감정의 파도는 얼마나 농밀해지는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크고 작은 기적들을 앞에 두고 셈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한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웃거나, 울거나, 힘 내어 걷다 보면, 그마저 일상이 될 테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