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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씨 Sep 27. 2024

사랑의 모양이 다른거라고 생각하자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유도 방식도 제각각이다.

사랑이 함께하는 것이라 믿는 사람들에게 롱디 커플의 연애는 딱하게 보일 것이고

사랑이 곧 스킨십이라 생각하는 사람에게 혼전순결을 지키는 커플의 연애는 밍밍해 보일 것이다.

맞고 틀린 것은 없다. 그저 사람이, 생각이 다를 뿐이다.


남편이 나를 사랑하는 방식과

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른 것을 이해하는 데에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그래서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사랑하는 게 맞나, 잠 못 이루었던 무수한 밤들처럼.

나는 남편이 딸을 사랑하는 방식이 나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한다.


산후조리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는 산모가 나 하나는 아닐 것이다. 내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조리원에 있는 기간을 마지막 방학으로 여기고 육아 전쟁이 시작되기 앞서 오랜 인연들과 모임을 갖는 남편 역시 그가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아쉬울 것도 섭섭할 것도 없다. 이게 내 이성이 하는 말이다.


한꺼풀 벗겨내어 속 마음을 들여다보면, 당연히 서운함이 가득 서려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에 온 지 5일 된 아이를 한 번도 안아보지 않은, 못한,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웅얼거린다.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며 더 큰 우울을 주물거린다.


지금 당장은 그렇다지만 앞으로는.

앞으로도 나와 딸 아이 둘만 남겨두고

술 취해서 집에 들어오는 날이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이제 막 태어난 아이를 두고 3일 연속 술약속을 잡는 사람인데. 출장을 가겠다는데. 회식을 하겠다는데.

설마, 가 역시, 가 되는 날,

나는 어떤 기분으로 무너져내리게 될까.


일어나지 않은 일. 누구도 예고하지 않은 불행을 스스로 중얼거리면서. 나는 조리원에서 맞는 첫 날을 불편해한다.

침대는 병실에 있을 때와 비교도 할 수 없을만큼 푹신하고, 넓고. 사각거리는 이불도 침구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남편에게 나는, 딸은 몇 순위일까, 따위의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지푸라기 위에 누운 것 같다. 생각이 바스락거린다.


프로포즈를 받기 한 달 전에도 그랬다. 비슷했다.

남편의 생일이라 호텔과 저녁을 예약했는데

식사를 마치고서 친구들과 술 한잔 하러 가겠다고 했다.

참았다. 일단 밥을 먹자고 했다.

테이블에 앉아 준비한 선물을 꺼냈을 때 이미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제품의 최신 모델이었지만, 설명할 기분도, 입맛도 사라져서 화장실에 들어가 꾹꾹 울었다.


정성이 짓밟히는 기분. 야속함을 마스카라와 함께 눌러 닦고 다시 파스타 앞으로 돌아와 앉았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밥은 잘 먹고, 스파도 잘 해야겠다. 그 생각만 했다. 남편은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나 역시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나 남자친구의 생일날 벌어진 황당한 에피소드를 늘어놓으며 소주 2병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그 날 밤 다시 호텔방에서 만난 생일주인공에게 새벽 2시까지 술주정을 빙자한 하소연을, 늘어놓고 늘어놓고, 늘어놓았다.


안 친한 사람들이 선물을 주고 받아도 고맙다는 말을 먼저 한다고, 여자친구보다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중요하냐, 와 비슷한 말을 단어만 바꾸어서 반복했던 것 같다. 지겨워서 더이상 못할 때까지.


그 엉망진창 생일파티가 있고나서 한 달 후에 남자친구는 프로포즈를 했다. 도대체 왜?  어쨌든 그 무정한 사람은 반지를 들고 무릎을 꿇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지금인지, 왜 나 인지,  어느 것 하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결혼은 그렇게 왔다.


한 번에 이해되는 사람이 있고

아주 오랜 후에 알게되는 사람이 있고

평생을 가도 결코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나는 남편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우리가 아주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100년을 단둘이 살아도 100만분의 1도 같아질 수 없으리라. 그래도, 아니 어쩌면 그래서, 우리는 오래 사랑한다. 애초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이해하지 말고 그냥 수용해야하기 때문에.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낸다.

우리가 사랑하는 방식이 같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엄청난 차이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나는 내 사랑을 돌아보았고 그도 어쩌면, 자신의 애정을 매만졌으리라.

나는 내가 주고싶은 사랑을 주고

그는 그가 주고싶은 사랑을 준다.

서로가 원하는 어렴풋한 형태의 사랑을

더듬거리며 맞추어 건넨다. 그렇게 해도,

아마 우리가 서로에게 꼭 맞는 사랑을 전하는 날은

오지 않을 지 모른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완전히 다른 사랑을 주고받는 것의 유익은.

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의 모습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그러니까 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

우리 딸에게는 가장 이상적일지도 모른다.

아주 뜨거운 곳에서 온 선물과 아주 차가운 나라에서 온 선물을 두고 어느 것이 더 좋다며 저울질 할 사람은 없다.

둘 다 좋고, 아주 다를 뿐이다.

마음을 놓고 심호흡을 한다. 양극단에서 달려오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사랑을 보며 기뻐하는 아이만 생각한다.


조금씩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밀려가는 듯 하다.

그래, 뭘 바라겠나. 생일날과 결혼기념일만 지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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