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
혼자 여행을 할 때는 자세가 조금 달라진다. 허리는 더 꼿꼿하게 펴고, 웬만하면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시야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더욱 씩씩하고 당당하게 걷는다. 겁날 것 없다는 주문을 스스로에게 넣으면서.
어제저녁, 오늘 일정을 확인하는 자리에서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카세르타 궁전에 가는 대신 나는 혼자서 카포디몬테 미술관을 찾아가겠다고 말이다. 카세르타 궁전은 이탈리아의 베르사유 궁전이라고 할 만큼 규모도 크고 화려하여 나폴리를 방문하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찾는 곳이다. 그러나 나는 카라바조의 그림이 있는 미술관을 선택한다. 언니들은 흔쾌히 허락하며 안전을 당부했다.
나폴리를 두고 외곽의 볼거리를 찾아 나서는 게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고, 복잡한 나폴리 중앙역으로 또 나가야 한다는 게 영 내키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카세르타 궁전 나들이로 하루를 보내버리면, 나폴리에 있는 카라바조의 그림은 볼 시간이 없다. 카라바조 그림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들에게 10유로, 12유로씩 입장료를 내면서 다른 일정을 포기하고 함께 하자고 할 수는 없었기에 혼자만의 일정을 잡은 것이다.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하고 7시 50분에 집을 나선다. 나는 카라바조 그림을 찾아 혼자 만의 여행을 시작한다. 홀가분하다. 여럿이 여행하는 것과는 다른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진다. 구글맵을 믿고 나폴리 내륙으로 접어드는데, 나폴리의 속살을 보는 듯했다. 걸어서 40분 소요되는 길은 계속 언덕으로 이어지고, 높은 지형으로 올라갈수록 계단으로 연결된 집들 상태는 좋지 않다. 좁은 골목길에 빨래가 널려있는 낡은 집들은 스산한 느낌마저 든다. 구글맵이 안내를 마치는 지점에는 옛 궁전으로 쓰였을 법한 넓은 정원과 단순하지만 견고해 보이는 붉은색 3층 건물이 버티고 있다. 입구의 큰 키의 늠름한 소나무와 넓은 정원은 언덕을 오르는 동안 보았던 집들과는 완연한 차이를 보인다. 높은 하늘과 초록의 정원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하고 잘 왔다는 안도감도 들게 한다.
8시 30분, 거의 오픈하는 시간에 맞춰 박물관에 입장하는데, 1층은 공사 중으로 오픈을 하지 않고, 2층과 3층만 개관을 하였고, 그것도 부분적으로 수리 중이었다. 다소 어수선하지만 나폴리 시내 어딜 가나 보는 풍경이라 그러려니 한다. 다만 한 점밖에 없는 카라바조 그림이 여기 있을지가 염려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이곳에 전시되었던 카라바조의 그림 한 점은 외유 중이다. 내가 보기를 기대했던 작품은 '채찍질당하는 예수'이다.
이탈리아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에는 수많은 명작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미켈란젤로의 거대한 스케치 작품 세 점과, 여러 점의 라파엘로 작품을 비롯하여 루벤스, 티치아노, 엘 그레코, 젠텔니스키까지 직접 보기 힘든 명작들을 감상하느라 어느새 카라바조는 잊는다. 이른 시간이라 미술관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작품들을 보고또보며 느긋하게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내가 '네덜란드의 속담'이라는 작품을 가지고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벨기에 화가 브뤼겔의 작품도 두 점 있다. 여전히 그의 작품은 유머와 풍자, 풍습을 그리고 있다. 눈먼 자들이 눈먼 자를 따라가다 함께 엎어지는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여기 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는지 카메라를 들이댄다.
두 시간 반 만에 미술관 밖으로 나오니, 햇살은 더욱 눈부시다. 조깅하는 사람, 벤치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 말을 타고 순찰하는 경찰, 모두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정원의 한쪽 하얀 파라솔 아래, 사람들이 보인다. 나도 한가로운 풍경의 일부가 되고 싶은 마음에 그곳으로 발길을 옮긴다. 카푸치노와 크로와상을 주문하고, 햇살을 즐기며 나른한 한낮의 시간을 보낸다.
나폴리에 있는 또 한 점의 카라바조 그림을 찾아 나선다. 그 그림은 공교롭게도 우리가 머무는 숙소와 담벼락을 같이하고 있는, 피오몬테 델라 미세리코르디아라는 곳에 있었다. 미술관이 있는 스파카나폴리 골목을 몇 번씩 들락거리면서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고, 그걸 놓치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10유로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니, 이곳은 작은 예배당이었다. 미술관으로 사용하면서 작은 음악회나 모임도 갖는 아담한 공간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다른 그림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 작품은 구성원이 400명이나 되는 나폴리의 어느 조합으로부터 의뢰를 받아 작업한 것이라고 한다. 장식 없는 작은 예배당에서 조용하게 조명을 받고 있어서 그런지,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조에도 불구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작품은 위와 아래 두 부분으로 나뉘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윗부분은 성모 마리아가 두 천사를 감싼 채,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인간들의 행위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단에 그려진 인간들의 행위는 나그네 대접하기, 목마른 자에게 물 주기, 집 없는 자에게 거처 마련해 주기, 감옥을 찾아 굶주린 자에게 먹이기, 죽은 자 매장하기, 헐벗은 자에게 옷 입히기, 병든 자 위로하고 치료하기 등 일곱 가지다. 이 작품이 '자비의 일곱 가지 행위'다. 이 모든 내용들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선명하게 표현되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딱 한 점의 작품을 충분히 음미한다.
사흘동안 이 그림을 바로 옆집에 두고 지냈다는 게 마치 무슨 소명같이 느껴진다. 작은 예배당 같은 미술관은 관람객을 받으면서 동시에 바닥 보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젊은 여자 두 분이 바닥에 주저앉아 바케스를 옮기면서 손바닥 만한 크기의 돌멩이들을 순서대로 배열하고 있었다. 모자이크 조각에는 하나하나 번호가 매겨져 있다. 그 작업도 행위 예술인 듯 진중하고 신선했다.
나폴리는 도시 전체가 온통 수리 중이다.
나폴리, 활기차고 매력적이다.
2025.4.18 나폴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