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
20년 전, 딸들과 함께 이곳 시스티나 미술관의 담벼락을 따라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렸던 기억이 난다.
로마 일정 중, 성베드로성당과 보르게세 미술관, 그리고 콜로세움 경기장은 사전 예약을 하고도 현장에서 한참을 기다려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성베드로성당을 가는 날은 다음날 있을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례식 준비로 많은 인파가 몰렸고, 경비도 삼엄했다. 광장은 신자들을 위한 의자로 채워졌고, 전 세계에서 몰려든 취재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홀로 걷고 있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생전 모습이 삼성의 로고와 함께 화면에 떠있다. 그걸 사진으로 찍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한 시간 이상의 기다림 끝에 시스티나 미술관을 관람하고 나온 후 성베드로성당을 향해 10여 분을 이동한다. 다시 짐 검사를 마친 후 성베드로성당 광장의 외연을 따라 한 계단 한 계단 앞사람의 움직임에 맞춰서 조금씩 성당 안으로 진입한다. 총을 든 경찰들의 검문이 여기가 바티칸시국임을 인식시킨다.
성베드로성당에 발을 디디면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다. 그제사 의문이 풀린다. 시스티나 미술관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세 점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어서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미켈란젤로가 23살에 처음으로 만든 피에타는 성베드로성당에 있어야 하고, 72세에 만든 두 번째 피에타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오페라 미술관에, 그리고 89세에 죽기 직전까지 작업했던 론다니니 피에타는 밀라노 스포르체스카성에 있어야 했다. 이렇게 세 작품이 한자리에 있는 건 로마가 60년 만의 희년을 맞아 특별 전시를 하나 싶었지만 뭔가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여기 성베드로 성당 가장 첫 번째 자리에 미켈란젤로 피에타는 우아하게 놓여있다. 다만 유리관 속에 갇혀있다는 게 안타까웠다. 검색을 하니 시스티나 미술관의 피에타 세 점은 석고로 만든 가품으로 그것조차도 1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시스티나성당의 피에타 세 점이 복제품인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반다니니 피에타도 그렇지만 특히, 론다니니 피에타는 스포르체스카성 안 특별공간에 있을 때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 다른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를 만난다.
피렌체 아카데미 미술관에서다. 그의 조각 '노예' 또는 '감옥'으로 불리는 6점의 작품 옆에 놓여있는 팔레스트리나 피에타(The pieta from Palestrina)는 154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안내되어 있는데, 그 모습은 반다니니 피에타를 연상시킨다. 반다니니 피에타와 다른 점은 예수의 양옆이 아니라 오른쪽에 한 사람만 조각되어 있고, 미켈란젤로 자신의 모습으로 추정되는 예수 뒤편의 인물은 더 낮고 투박하게 묘사되어 있다. 미켈란젤로의 머리는 오른쪽이 아니라 왼쪽 뒤로 많이 젖혀져 있다. 65세에 이걸 만들고, 7년 후 반다니니 피에타를 만들었으나 미완성으로 버려두어 제자들이 완성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총 4개다.
성베드로성당의 피에타를 완성하여 세상에 선보였을 때 사람들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한다. 23살짜리가 만든 작품으로는 지나치리만큼 완벽했던 것이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몰래 마리아 가슴의 휘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고, 나중에 이 행위를 후회했다고 한다. 자신의 오만함을 부끄럽게 여긴 때문이기도 하고, 그 당시는 작품에 사인을 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카라바조는 그의 작품 '세례자 요한의 참수'에 유일하게 사인을 하였고,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작품에는 골리앗을 벤 칼날에 'H-AS OS'라고 써넣었다. 이것은 humilitas occidit superbiam의 약자로 '겸손은 자만을 이긴다'는 뜻이다.
혹자들은 미켈란젤로의 첫 번째 피에타에 대해 몇 가지 문제점을 제기한다. 우선 마리아가 아들 예수보다도 젊은 얼굴이라는 점. 마리아의 평온한 표정은 아들을 잃은 비탄의 얼굴이 아니라는 점. 건장한 더구나 죽은 청년을 무릎에 안았을 때 마리아는 결코 그 무게를 견딜 수 없다는 점 등이 그것이다.
숙소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검색을 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사진 하나가 있다. 23살의 피에타에 제기되는 의문점을 해결해 줄 만한 사진이다. 미켈란젤로는 피에타를 하느님의 시각, 그러니까 위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완벽한 모습으로 조각했다는 설명이다. 위에서 보면, 마리아는 오직 머리통만 보이고, 예수는 마치 쿠션 위에 놓인 듯 편안하고 자연스러우며 거대한 모습이다. 이 사진은 내게 충격적이다. 미켈란젤로가 천재라는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가 인간이 아니라 신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만들었다건 새롭게 접하는 해석이다.
일반적으로 성베드로성당의 피에타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고, 완성도도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23살에 만든 피에타가 자신의 실력을 과시한 거라면 70, 80대에 만든 피에타는 형상이 아니라 진리를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것이 미완성이라는 점이 그 여운을 더한다. 왠지 미켈란젤로의 마지막 피에타, 론다니니 피에타는 무척 현대적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가슴의 울림은 더욱 크다.
여행 중에 문화의 세례를 듬뿍 받는다.
2025. 4. 26 오전 10시
피렌체 두오모 성당 입장을 위해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서 적는다.
오늘 프란체스코 교황의 장례식이 10시에 로마 베드로 성당에서 거행되고, 그는 로마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에 묻힌다고 한다. 거기에는 베르니니의 무덤도 있다. 아주 소박한 두 단의 돌로 장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