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아침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5일간 머문 로마숙소를 새벽같이 나와 대형버스에 짐을 싣는다. 로마를 출발하여 토스카나 소도시를 관광하면서 최종 종착지 피렌체까지 이동하는 한국 패키지 상품을 이용한다. 젊은 커플들과 한국인 관광객들로 버스는 만원이고, 가이드하는 청년은 메모까지 해와서 열심히 안내한다.


서서히 아침을 맞이하는 로마를 벗어나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치비타 디 반네로죠라는 마을이다. 현재 1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는 이 마을은 곧 사라질 도시라고 한다. 애초에 흑사병 같은 전염병을 피해 고립된 장소로 스며든 사람들이 만든 도시였고, 풍화작용으로 도시는 점차 위태로운 상태가 되어 사람들이 살지 않는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천공의 성 나프타'의 모티브가 될 만큼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사람은 살지 않지만 특별한 풍광 때문에 관광객들이 몰리고, 병을 치료할 목적으로 약초를 이용해 만든 비누와 향수 등이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


아직 차가운 아침 기운이 가시지 않은 치비타를 떠나 발도르차평원을 달린다. 녹색의 향연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곳은 신이 특별히 축복을 내린 땅이라는 누군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평원을 따라 간간히 길이 보이고, 사이프러스나무가 하늘을 향해 곧게 솟아있다.


토스카나 사람들은 사이프러스나무가 죽은 사람의 영혼을 하늘로 올려준다고 믿었다고 한다.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막시무스 집으로 알려진 가옥 진입로에도 사이프러스나무가 도열을 하고 있다. 관광버스의 일행들은 줄줄이 서서 기념촬영을 하고, 와이너리로 이동하여 낯선 일행들과 어울려 몇 가지 와인을 맛본다.


몬테폴치아노까지 이동하는 동안, 가이드는 이 중세의 도시에서 피치파스타와 페코리노 치즈를 꼭 먹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시청 광장에서 촬영된 영화 '더문'의 장면을 소개하며 영상까지 공유해 준다. 뱀파이어들이 붉은 옷을 입고 축제를 하는 장면이라니 영 흥미가 당기지 않는다. 발도르차 평원을 바라보며 자유시간을 즐기다 다시 버스에 오른다.


피렌체 산타마리아 노벨라역 부근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다섯 시가 다되어서였다. 다행히 피렌체 숙소까지는 걸어서 10여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피렌체에 8일 머무는 동안, 아레초, 시에나, 산 지미나노 등 세 개의 주변 도시를 둘러보는 일졍이 잡혀있다. 나는 그중 시에나만 동행하고, 나머지 날들은 피렌체에 머물기로 한다. 피렌체를 오롯이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일행들이 아레초 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두 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 들어갈 수 있었고, 이곳 cafe verone에서 두어 시간 머물다가 귀가하는 중에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에서 원근법의 시초라고 하는 조토의 그림을 보았다.


일행이 산지미나노로 떠난 날, 나는 홀로 피렌체의 아침을 즐긴다.


분홍빛이 도는 조토의 종탑과 옥색빛의 두오모 성당과 붉은 돔, 그리고 세례당의 아침 풍경은 인파로 묻혀있던 공간이 드러나면서 그 존재감을 더한다. 피렌체의 아침 햇살은 두오모성당의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시뇨리아 광장의 넵툰분수에서 내뿜는 물보라는 그 햇살로 무지개를 만든다.

아침 8시도 되기 전에 숙소를 나와 카페 gili에서 에스프레소를 한잔 한다. 그리고 열 시에 문을 여는 verone 카페에 자리한다. 이곳은 이번 여행에서 세 번째 방문하는데,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카페는 부르넬레스키가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짓기 전에 시험 삼아지었다는 오스페달레 델리 인노센티(ospedale degli Innocenti) 건물에 붙어있다. 이곳은 세계 최초의 고아원으로 건물 회랑을 따라 아치가 만들어져 있고 거기에 아가들 모습이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 건물이 만드는 사각형의 광장은 점심을 먹기에 안성맞춤이다. 계단에 앉아 모두들 간단한 먹거리로 점심 식사를 해결한다. 종종 광장에는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따뜻한 햇살을 즐기며 시간 보내기에 딱 좋다.


무엇보다 5층에 있는 이 카페에서는 피렌체 두오모의 돔을 가장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다. 커피와 크로와상도 꽤 맛있다. 쾌적한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데다가 비번 없이 인터넷 사용도 가능해서 여행객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휴식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두 편의 글을 정리한다.


피렌체는 세 번째 방문이다. 약 20년 전 아이들과 단체여행으로 거쳐갔고, 6년 전 동료와 방문했었다. 그때 동료는 피렌체를 세 번째 방문하는 터라,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사실인 것 같다.


나는 이번 피렌체 여행에서 두 번째 여행에서 빠트린 몇 가지를 확인하고 즐기고 있다. 아카데미 미술관과 오페라 미술관, 그리고 로렌초 성당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그곳이다. 그곳에서 다비드상의 진품과 미켈란젤로의 노예 조각상 시리즈, 그리고 천국의 문 진품, 막달라 마리아상과 반다니니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도서관 계단을 만난다.


나는 또다시 피렌체를 방문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한다. 베키오 다리와 이어지는 길을 접어들면 가죽시장이 있고, 거기 멧돼지 상이 있는데, 오늘 아침 그놈의 코를 확실히 만졌으니 말이다.


나는 피렌체가 좋다.


2025. 4. 28. 11: 25

caffe del verone Frorence에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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