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저녁식사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오늘은 로마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티볼리에 간다. 미리 예약한 빌라 데스테 티볼리(villa d'este Tivoli)로 가는 길에 수도교가 있다. 빌라 데스테는 수백 개의 분수로 유명한 정원인데 티볼리는 그만큼 물이 풍부하여 고대부터 로마에 물을 대 왔다.


빌라 데스테는 갖가지 크고 작은 색다른 분수로 가득하고,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다. 풍요의 여신 젖가슴도 분수로 활용되고, 사자를 비롯한 갖가지 동물들로 백개의 분수를 만들고, 용의 분수도 있다. 가장 중심에는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오르간 분수가 있다. 이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고 떨어질 때 오르간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 모든 분수가 동력을 쓰지 않고, 중력과 낙차만으로 작동된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16세기에 지어진 빌라는 낡아서 볼품없지만 피고 지는 꽃과 나무들로 정원은 여전히 신비롭고 풍요롭다. 시원한 물방울을 맞으며 느긋하게 산책을 즐기다가 오르간 분수를 바라보며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티볼리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0분. 카라바조의 '순례자의 성모'가 있는 산타 고스티노(Sain't Agostino) 성당은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서둘러야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헛수고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도시락 가방과 숙소 열쇠를 일행에게 맡기고 산타 고스티노 성당을 향해 서둘러 걷기 시작한다. 엊그제 갔던 기억과 구글맵을 참고하여 지름길로 가로지른다.


나보나 광장에서 4분 거리니 엊그제 나보나 광장에 왔을 때 들렀어야 했다. 미리 조사를 했음에도 직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아서 놓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성당에는 5시 5분 전에 도착했고 다행히 성당 문은 열려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내가 보고자 하는 그림이 걸려 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사진부터 한 장 찍는다. 사진을 찍자마자 불이 꺼지고 그림 주변이 어두워진다. 순간 시라쿠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루치아의 매장' 역시 동전을 넣어 불을 밝혀야 그림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누군가 넣은 동전 덕분에 잠깐 카라바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거다. 나는 벽에 설치된 기계에 2유로 동전을 넣고 다시 그림을 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내가 넣은 2유로의 혜택을 본다. 그러나 길지 않다. 가이드를 하는 청년도 2유로에, 2유로를 더하여, 자신의 손님들에게 그림을 설명한다.


나는 이 시스템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게 된다. 무료로 성당을 개방하니 2유로 정도의 비용을 치르는 것도 그렇게 과한 건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 시라쿠사에서 느꼈던 거부감이 사라졌으니 그건 내가 조금 더 수용적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이들 문화에 적응한 것일 수도, 아니면 못 볼 수도 있던 그림에 대한 절박함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림을 감상하는 내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얼마나 부지런히 걸어왔던지.


'순례자의 성모'는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문 앞에 있는 두 명의 순례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순례자가 무릎을 꿇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그저 평범한 이웃집 여인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 중 하나가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았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 점이 선구자적 시도로 평가받지만, 당시에는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순례자의 성모'에서는 성모 마리아나 순례자 모두 맨발이라는 점과 순례자의 발에 시커멓게 때가 끼어있고, 그 더러운 발이 화면을 향해 있다는 게 시빗거리가 된다. 실제로 성모 마리아의 모델이 된 사람은 거리의 여인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그림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먼 길을 걸어와서 예수를 만나게 된 순례자들의 반가움과 안도감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들의 발바닥이 시커먼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테고. 바로 문 앞에서 순례자를 맞이하는 마리아의 모습은 친근감마저 든다. 피솟음이나 매장, 채찍, 단두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산타 고스티나 성당 기둥에는 라파엘로 그림이 네 점이나 있고, 화려한 제단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로마에서는 보물들을 그냥 지나치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당을 나서니 입구에서 동네 아이들이 공놀이를 하고 있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향하는 길에 엊그제 보았던 보물들을 다시 한번 찾아간다. 우선 산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들른다. 이곳에서 카라바조의 '마테의 소명', '마테와 천사', '마테의 순교' 세작품을 다시 한번 감상한다. 그리고 나보나 광장으로 나와 베르니니가 디자인한 사대양 분수와 바다의 분수를 바라본다. 6시 저녁 시간의 광장은 햇빛도 순해지고, 그림을 파는 화가들도 많이 나와있다. 판테온에는 그 시간까지도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광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빈다. 트레비 분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잠깐 눈길 줄 틈도 없이 빠르게 인파를 빠져나온다. 어깨에 맨 가방은 더욱 단단히 부여잡은 채.


어두워질 때까지 머무를 작정이었던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은 저녁예배를 위한 신자들로 가득했고, 여행자가 머무를 공간은 없었다. 출입문 양쪽에서 입장을 반기는 예수상의 손을 다시 한번 잡아보고, 출구로 돌아 나온다.


이렇게 하여 나는 엊그제 루트를 거꾸로 다시 한번 로마를 둘러본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하면 안심이 된다. 그곳에서 숙소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행들의 저녁식사는 끝나있고, 나는 로마의 향기를 음미하며 천천히 혼자만의 저녁식사를 즐긴다.


2025. 4.23. 티볼리를 다녀와서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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