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니와 보르미니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피렌체 베키오궁 앞에 주먹을 쥐고 서있는 다비드상은 완벽한 모습이지만 진품이 아니다. 미켈란젤로의 진짜 다비드 조각상은 아카데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손은 거대하고, 눈동자는 하트 모양이다. 돌멩이를 쥐고도 그의 자세나 표정은 고요하기만 하다. 저 돌멩이로 무엇을 할지는 베르니니가 보여준다.


로마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베르니니의 다비드 조각상은 돌멩이를 날리기 위해 활시위를 당기듯 온몸을 비틀어 힘을 모으고 있다. 이 작품을 두고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에게 베르니니가 도전장을 내민 것이며, 새로운 바로크시대를 여는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보르게세 미술관에 있는 베르니니의 또 다른 작품 '페르세포네의 납치'와 '아폴론과 다프네'는 공교롭게도 둘 다 달아나려는 여인을 놓지 못하고 부여잡는 남자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여인의 허벅지에 파고드는 남자의 손가락, 곧 흘러내릴 것 같은 눈물방울 하나, 손끝에서 피어나는 나뭇잎사귀, 이미 나무의 일부로 변해버린 여인의 다리, 흩날리는 머리카락 하나하나. 살아 움직일 건만 같은 생동감과 완벽한 아름다움에 작품 주위를 몇 바퀴를 맴돈다. 그 섬세함과 역동성에 눈을 뗄 수가 없다.


나보나 광장에 있는 분수 세 개 중 두 개가 베르니니의 작품이다. 그중에 4대 강 분수에 조각된 두 명의 신은 정면의 성당을 외면한 채 등을 돌리고 있다. 그 이유가 나보나 광장에 있는 성 아그네스 인 아고네 성당의 파사드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걸 보지 않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 성당을 설계한 사람은 베르니니와 라이벌 관계에 있었으며, 그와 함께 바로크 시대를 연 프란체스코 보르미니다.


애초에 나보나 광장의 성당과 분수는 보르미니가 의뢰받은 사업이었다. 베르니니는 4대 강을 모티브로 한 보르미니의 아이디어로 분수 모형을 만들어 사교적인 처세술로 교황의 환심을 사는 데 성공한다. 결국 나보나 광장의 분수는 베르니니가 맡게 되었고, 보르미니는 절망과 우울로 자살을 한다. 칼을 가슴에 꽂고 엎드린 채.


베르니니와 보르미니는 한 살 차이인데, 태생과 성격은 많이 달랐다. 보르미니는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석공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매우 내성적이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어려웠으며 우울증상이 있었다. 반면 베르니니는 명성이 자자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교황의 절대적인 지원을 받으며 승승장구하였다. 연극배우로 활동했을 만큼 사교적이었으며 '돌을 종이처럼 다루는 남자'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천재적이었다.


베르니니가 베드로 성당을 만들 때 보르미니가 조수로 함께 일한 적도 있다. 베르니니가 베드로 성당의 건축 책임자로 있는 동안 벽에 균열이 생기는 문제가 발생했고, 이때 보르미니가 조사관으로 참가하면서 둘의 관계는 어긋나기 시작한다.


주변머리는 없지만 보르미니의 실력을 인정하는 후원자들이 있어서 보르미니도 자신 만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얻는다.


테르미니역에서 로마 중심부로 부지런히 걸어가면서 몇 번은 보았던 네 개의 분수 거리를 기억한다. 사거리 네모퉁이에 네 개의 조각품이 건물의 일부처럼 있었으나, 신호등이 바뀌면 길을 건너기 바빴다. 이 중 하나가 보르미니가 디자인한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성당'이다. 네거리에 있는 '산 카를리노 성당'이라고 하면 되겠다. 사거리에는 오토바이와 차량의 왕래가 많아서 네 개의 분수와 성당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고, 무엇보다 물이 솟구쳐 나오지 않으니, 이걸 분수로 인지하기도 어려웠다. 더구나 모퉁이에 있는 성당은 아주 작았다.


보르미니는 흐르는 곡선과 타원을 이용하여 산 카를리노 성당을 새로운 양식의 바로코 건축으로 완성하였다.


미켈란젤로와 베르니니, 그리고 보르미니 세 사람을 성 베드로 성당에서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성 베드로 성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완성한 돔이 있고, 보르미니와 베르니니가 함께 만든 베드로의 발다키노(천개)가 있다.


우리가 로마에 있는 동안 선종하신 프란체스코 교황은 산타 마리아 마조레성당에 묻히길 원하셨다는데, 그곳에는 베르니니 아버지가 조각장식을 한 예배당이 있고, 베르니니 자신의 무덤도 있다. 아무런 장식 없이 새하얀 대리석 두 단이 겹쳐 놓여있을 뿐이다. 보르미니는 피렌체인들을 위한 세례자 요한 성당에 묻혀있다.


트레비분수광장에 비해 나보나 광장은 직사각형으로 길고 넓어서 여유롭다. 해가 질 무렵, 햇빛이 부드러워질 때면 화가들이 그림을 가지고 나오고, 여기저기 즉흥 공연이 있어서 여행자들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들은 세 개의 분수를 배경으로 그 시간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다.


보르미니가 설계한 성 아그네스 인 아고네 성당 앞에는 햇볕을 피하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앉아있다. 성당 내부는 기도할 사람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된다. 나는 피곤한 다리도 쉴 겸 기도하러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주여, 질투하는 자를 멀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다시 로마에 오게 하소서"


2025. 6. 3. 오늘은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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