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시차를 둔 볼로냐 여행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볼로냐에 도착하니 6년 전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 함께 여행한 동료는 워낙 학구적인 데다 강의 자료를 모으는데 공을 들이는 덕분에 귀중한 곳들을 잘 다녔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볼로냐에 머물면서 하루 시간을 내어 라벤나를 방문했었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수도였던 라벤나를 대표하는 산 비탈레성당과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을 찾았었다. 비잔틴 문화와 모자이크로 유명한 곳이다. 그 오랜 시간에도 성당의 천장 모자이크는 완벽하게 보전이 되어있었다. 묘당은 얇은 붉은색 대리석으로만 외부의 빛을 들이고, 묘당 내부는 온통 파란 하늘에 별이 가득하여, 죽은 자가 마치 하늘나라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라벤나는 단테가 숨을 거둔 곳으로, 해마다 피렌체에서 단테의 묘역을 밝힐 기름을 보낸다고 한다.


베로나에서는 아침 일찍 파도바에 갔었다. 기차에 탄 사람들이 뭔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들이 모두 파도바 대학생들이었다. 파도바는 인구 20만 명 중에 6만 5천 명 정도가 대학생과 교수라고 하니, 가히 대학의 도시라고 할 만하다. 특히 의과대학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6년 전 우리는 이곳 의과대학을 방문하여 해부학 극장을 구경했었다. 그리고 갈릴레이와 코페르니쿠스가 교수로 재직하면서 강의를 했던 강의실도 들어가 보았다. 미리 예약하고 갔으며 아주 특별한 경험이었다.


시내로 들어가 민트커피 맛도 본 기억이 있다. 길거리에서는 작은 의자 위에 올라서서 자기주장을 하는 시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선 강단은 딱 목욕탕 의자만 했다. 그들에게는 깃발도 메가폰도 없었다. 본인이 선 자리만큼만 차지하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파도바가 어떤 도시인지를 잘 말해주는 모습이었다.


파도바 역에서 가까운 곳에 파도바 아레나가 있고, 그 담장 안에 스크로베니 예배당 있다. 이곳은 엔리코 스크로베니가 은행업으로 부자가 된 자신의 아버지가 지옥에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아레나 땅을 매입하여 지은 예배당이다. 당시 가장 잘 나가던 조토에게 내부 장식을 의뢰하였고, 2년에 걸쳐 그려진 조토의 프레스코화는 르네상스의 서막을 알리는 그림이 되었다. 사전 예약으로 1회에 20명만 입장하여, 딱 15분만 감상할 수 있다.


내부는 기둥 없이 한쪽 면으로 길고, 좁은 창문 몇 개를 뺀 사방에 조토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삼단으로 나뉘어 맨 위는 성모 마리아의 생애를, 가운데는 예수의 탄생에서 부활까지를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가장 아래는 7가지 미덕과 7가지 악덕에 관한 알레고리가 그려져 있고, 출입문 쪽에 최후의 심판이 있어, 악덕한 자는 지옥으로 떨어진다는 내용이다.


스크로베니 예배당에 들어가면 좁은 공간에서 성가가 울려 퍼질 것 같은 성스러운 느낌이 든다. 천장과 벽면에 칠해진 청금색(라피스 라줄리), 또는 울트라 마린 때문일까? 더욱이 청금색 안에 별빛이 반짝이고, 그림 속에서 천사들이 날아다니니 잠시 여기가 천국인가 착각을 하게 된다.


이곳의 조토 그림은 인물들이 모두 개성이 있고, 슬픔과 애도, 화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음영을 넣어 입체감과 원근감을 표현하였다. 천사도 날갯짓으로 가까이 날고 있다는 생동감이 느껴진다. 실제 삶의 현장을 그림의 배경으로 삼았는데, 이런 것들이 이전에는 없었던, 조토의 새로운 시도로 르네상스시대를 여는 작품으로 해석되는 점이다.


한 가지 더욱 흥미로운 건 별을 꼬리를 단 혜성으로 표현했는데, 실제로 조토는 그즈음 혜성을 목격했고, 그림 속에 그대로 묘사했을 거라고 한다. 유럽 우주국 혜성 탐사선 이름이 조토라고 하니, 조토의 선구자적 입지를 인정하고 있는 거다.


볼로냐는 회랑의 도시다. 도시의 회랑을 모두 연결하면 40km나 된다고 하니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회랑이 이렇게 많은 이유는 대학과 관련이 있다. 볼로냐 대학은 1088년 유럽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명문가 자제들이 머물 숙소가 부족하여 기존 건물에 기둥을 세워 방을 만드니, 그 아래 공간이 회랑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하먼 세금을 안 냈을까? 공유지를 사유화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설도 있다. 대학과 도서관이 많다 보니, 귀한 책이 젖지 않게 하려고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건 아마도 부수적 효과였을 거다. 볼로냐 대학의 한 건물 벽에는 이곳에 자제를 보낸 가문의 문장들이 가득 걸려 있다. 물론 메디치 가문의 문장도 보인다.


피사의 종탑이 사탑으로 유명하듯, 여기 마조레 광장의 성 페트로니오 성당은 미완성 성당으로 유명하다. 당시 볼로냐 왕국이 로마의 베드로 성당보다도 큰 성당을 지으려 하자 교황이 허락하지 않았고, 대신 대학을 짓도록 허락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부를 과시하려는 귀족들이 앞다퉈 탑을 지어서 한때 볼로냐에 200개가 넘는 탑이 있었다고 한다. 지진과 2차 세계대전 때 많은 탑이 무너져서 현재는 24개만 남아있다. 도심 한복판에 있는 두 개의 탑은 볼로냐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다. 이미 절반은 소실된 탑은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게 가림막을 치고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 공사장 주변으로 맛있는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유혹하듯 선명한 색들로 장식되어 있는 크로와상과 에스프레소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피스타치오 크림과 당근과 신선한 살구잼이 들어간 크로와상은 먹고 또 먹게 만든다. 볼로네제의 발상지에 왔으니 오늘은 외식이다. 국물 있는 토르텔리니와 라구소스 볼로네제, 요끼, 라자냐를 골고루 시켜서 음식기행을 즐긴다.


걷다 보니 6년 전 들렀던 식당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사람들로 북적인다. 천정 가득 돼지 뒷다리에 소금을 입힌 하몽을 매달아 놓은 식당이다. 도마 위에 각종 치즈와 하몽, 살라미, 빵과 잼을 올려주고 와인도 한잔 곁들여 준다. 이 집은 건조 중인 하몽덩어리 아래에 작은 종지를 달아놓은 것이 특이하다. 염장이 되는 동안 빠져나오는 수분을 담기 위한 장치로 보인다.


볼로냐의 또 하나 특징이 서점과 식품점이 한 공간에 있다는 거다. 우리는 서점에 들러 한국에 있는 지인들을 생각하며 이것저것 물건들을 집었다 놨다 고민한다. 짐을 최소화하면서 상대가 좋아할 선물 고르기는 쉽지 않다.


도심 골목길에 있는 신선한 야채가게에서 저녁거리를 산다. 아기 엉덩이만 한 가지 하나와 손바닥만 한 송이버섯 세 개가 4인이 먹을 양으로 충분할 만큼 야채들은 크고 싱싱하다. 볼로냐는 맛있는 걸 먹고 즐기는 도시 같다. 그리고 학문에 열중하는.


저녁을 해 먹고 슬슬 마조레 광장으로 마실을 나간다. 바람은 선선하고 버스킹의 노랫소리는 여행자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2025. 5. 8 밀라노 알펜샤 공항에서

수요일 연재
이전 09화베르니니와 보르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