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일정을 베로나에서

이탈리아여행

by 배심온

90일간의 여행 마지막 일정으로 베로나에 왔다. 6년 전 동료를 따라다니던 도시를 이번에는 내가 길안내를 맡는다.


아침 일찍 도착하여 아직 청소 중인 숙소에 짐만 맡겨놓고, 점심 식사를 먼저 하고 거리로 나선다. 6년 전 머물던 숙소와는 거리가 있지만, 다니다 보니 어디쯤인지 알 것 같다.

먼저 이탈리아 통일의 주역인 빅토리아 임마누엘 2세의 동상이 있는 브라 광장으로 향한다. 가리발디 장군의 동상도 조금 떨어진 곳에 세워져 있다. 베로나는 유독 인도가 넓고, 박석이 아닌 통돌이 깔려있는데 그 크기가 성당에서 보던 묘의 크기만 하다.


브라광장은 원형극장과 함께 있어서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친다. 나는 6년 전에 베로나 원형극장 내부를 둘러보았고, 일행들도 콜로세움을 보고 온터라 들어갈 생각은 안 한다. 2만 명을 수용할 정도로 규모도 크고 보전상태도 좋은 편이다. 베로나 원형극장에서 매월 6월 말부터 8월 말까지 열리는 오페라 공연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때는 베로나 숙소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고 그것도 동이 난다고 한다. 일정이 맞지 않아 아레나에서의 오페라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룬다. 한여름 밤에 원형극장에서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진다.


광장에서 이어지는 길은 명품거리인 듯, 익숙한 상표들이 눈에 들어온다. 겨울에는 50% 세일을 하니 기웃거리기라도 했는데, 5월 중 세일은 없나 보다. 내가 오월에 이렇게 여행을 다닌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명품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줄리엣의 집이 있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있어서 금방 알아챈다. 줄리엣 동상이 있는 마당까지는 무료라서 우리도 줄을 섰다가 들어가는데, 휙 돌아 나오는데 채 오분도 안 걸린다. 줄리엣의 가슴은 사람들의 손을 타서 하얗게 반들거리는데, 불편한 마음이 든다. 그녀의 가슴에 손을 얹고 사진을 찍으면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속설 때문인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다들 그렇게 한다. 6년 전 나도 그녀의 가슴에 손을 올리고 사진을 찍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연상시키며 베로나 여기저기에서 엽서나 포스터로 만나게 되는 작품 '키스'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에 있는 프란체스코 아이에즈의 작품이다. 푸르고 흰 드레스의 여인과 붉은 타이즈와 망토의 청년이 키스하는 이 그림은 이탈리아 통일전쟁에 출전하는 연인과의 이별을 그린 것이다.


도시는 크지 않아서 광장과 광장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과거 약초시장이었다가 지금은 집회장소로 활용되기도 한다는 에르베 광장은 기념품을 파는 가판대가 점령하고 있다. 중세 건물인 람베르티 탑도 보인다. 마돈나 분수의 마돈나는 손에 수갑을 들고 있고, 시뇨라 광장으로 나가는 작은 아치에는 코끼리의 상아가 걸려있다. 죄 없는 자가 지나가면 아치에 걸려있던 상아가 내려온다고 하는데, 여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니 모두들 약간의 죄는 짓고 사나 보다. 이곳에 이런 조형물들이 있는 이유는 여기가 과거에 죄지은 자들을 처형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람베르티 탑 앞에는 작은 광장에 단테의 동상이 있다. 단테가 피렌체에서 쫓겨나 잠시 이곳에 머물렀던 인연을 기억하고, 그의 탄생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상이다. 이 작은 공간을 시뇨라 광장이라고 한다. 베키오 다리도 그렇고 시뇨라 광장도 그렇고 피렌체와 동일한 이름을 붙이는 걸 보면, 베로나에게 피렌체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베로나의 강, 아디제 강으로 나와서 피에트라 다리를 건너 푸니쿨라를 타고 피에트라성 위로 오른다. 푸니쿨라는 왕복은 3유로, 편도는 2유로인데, 내려오는 길이 예쁘다고 하여 올라가는 것만 이용한다. 오전에 내린 비로 아디제 강은 불어있고, 유속이 빨라 학생들이 카약을 즐길 정도다. 성 위에서는 베로나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경치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버스킹을 하는 분도 계시고, 우리는 성벽 위에 올라앉아 햇살을 맞으며 베로나 도시를 즐긴다.


버스킹 하는 아저씨의 모자에 동전 하나를 더하고, 성을 내려오면서 맛있는 젤라토 집을 찾아 들어간다. 이탈리아에서는 1일 1 젤라토!


슬슬 걸어서 보르사리 문으로 간다. 1세기에 세금을 걷기 위해 만들어진 문이라고 하는데, 크지는 않지만 2천 년을 견뎌낸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새하얀 아치모양의 보르사리문은 양쪽에 현대식 건물을 이어 도로로 진입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좋은 예이다.


베로나에서의 이튿날, 베키오 다리를 걷고, 카페 보르사리에 들른다. 1969년에 문을 연 카페 보르사리는 작은 테이블 세 개가 전부인 좁은 공간에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예쁜 커피잔들이 진열되어 있어서 정감 있다. 커피도 크로와상도 더할 나위 없이 맛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어제와는 달리 도시가 텅 빈 느낌이다. 우산을 쓰고, 천천히 베로나 대성당과 성 아나스타샤 성당을 둘러보고 점심 식사를 하러 간다.


폭풍검색으로 낙점된 피자집은 넓은 정원이 있어서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화덕에서 막 구워낸 피자는 짜지 않고 우리 입맛에 잘 맞는다. 맥주 한 잔씩 곁들여 네 명이서 피자 세 판을 맛있게 먹어치운다. 오늘 식사는 내가 쏜다. 여행 준비로 애쓴 대장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이고, 나의 생일을 자축하는 의미다.


베로나 여행은 생각보다 여유 있고 즐거웠다.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과 마지막 일정이라는 아쉬움이 겹친다. 깨끗하고 운치 있는 숙소가 우리를 더욱 편안하게 만든다. 우리는 서울에 돌아가서 만날 날자를 정하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내일은 인천행 비행기를 타러 밀라노로 가야 한다.


이제 집에 갈 일만 남았다.


2025. 5. 9.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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