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그림이 완성되면 싸인을 한다. 모든 시대에 그랬던 건 아니다.
미켈란젤로도 보티첼리도 카라바조도 자신의 그림에 싸인을 하지 않았다.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는 경우는 종종 있다. 르네상스 시대나 바로크 시대에 자신의 그림에 싸인을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성서를 주제로 한 그림이라면 거기 화가의 싸인이 들어갈 자리는 없어 보인다. 또는 의뢰받은 그림이라면 그 그림의 주인은 화가가 될 수 없으니 남의 그림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23살에 완성한 피에타 조각상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너무나 완벽해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 아닐 거라 의심하는 대중들에게 본인의 작품이 맞다고 선언한 것이다. 성모마리아의 오른쪽 어깨에서 반대쪽 옆구리로 가슴을 가로지르는 리본에다가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은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후회했다고 한다.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
바티칸 미술관의 시스티나 예배당 제단화 <최후의 심판>에 미켈란젤로의 얼굴이 있다. 예수님 발치에 산채로 살가죽이 벗겨져 순교한 성인 바르톨로메오가 앉아있다. 그의 손에 들려있는 살껍질에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초상을 그려놓았다.
무엇을 말하려는 걸까?
천국과 지옥 중 어디로 갈 건지 우리에게 묻는 경고인지, 자신의 삶에 대한 참회인지. 작업에 대한 간섭과 완성된 이후 닥칠 비난이나 훼손에 대한 시위인가?
카라바조는 여러 작품 속에 자신의 얼굴을 그려 넣었다. 초기 작품 속에 그려진 미소년의 모습부터 나이 든 모습까지 그림 속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싸인보다 더 확실한 서명인 셈이다.
직접 싸인을 한 작품이 있긴 하다. 몰타의 성요한대성당에 걸려있는 <세례자 요한의 참수>가 그것이다. 세례자 요한이 흘리는 피 위에다 미켈란젤로라는 본명을 약자로 써놓았다. 그의 본명은 '미켈란젤로 메디시 다 카라바조'이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미켈란젤로에 이어 바로크 시대를 열었던 카라바조의 본명 역시 미켈란젤로다. 미켈란젤로가 워낙 유명해서 그랬는지, 그가 몰타기사단이 될 때 서명한 카라바조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카라바조의 유일한 싸인이 피 위에 새겨진 것은 참으로 그답다. 그것도 미켈란젤로라는 이름으로. 그는 끊임없는 폭력과 살인을 저질러 도망자 신세로 살다가 39세에 생을 마감하였다.
카라바조의 작품 <다윗과 골리앗>은 이중자화상이다. 한 화면에 본인의 얼굴 두 개를 함께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다윗과 골리앗을 주제로 한 세 개의 작품 중 후기의 두 작품은 다윗이 목이 잘린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장면이다. 목 잘린 골리앗의 얼굴이 카라바조 자신이다. 다윗 역시 젊은 날 카라바조의 모습일 거라고 한다.
골리앗의 잘린 목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지고 이마에는 다윗이 던진 돌멩이에 맞은 상처가 선연하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곧 감길듯 한 눈동자는 마지막 광채를 띤다. 입도 벌어져있다.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있는 장수라면 좀 더 당당해도 될 터인데, 젊은 다윗의 얼굴에는 기쁨의 기색은 보이지 않고 오히려 슬픔과 연민이 가득하다. 다윗도 골리앗도 지신의 모습이니, 늙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젊은 카라바조의 심정이 어떠할까 짐작해 볼 일이다.
<다윗과 골리앗>에는 싸인 대신 경구가 새겨져 있다.
"H-AS OS"
"HumilitAS Occidit Superbiam"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다윗이 들고 있는 칼날에 새겨져 있다.
"겸손은 오만을 이긴다"
2026.3.25. 인천행 열차에서.
센티멘탈밸류 영화 보러 인천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