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
5일 동안의 로마 일정 중 오늘은 로마에서 기차로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티볼리에 간다. 미리 예약하고 빌라 데스테 티볼리(villa d'este Tivoli)로 가는 길에 수도교를 본다. 빌라데스테는 수백 개의 분수가 있는 정원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물이 많기 때문이니, 티볼리는 로마가 번성하던 고대부터 로마에 물을 대던 도시였다. 빌라데스테는 갖가지 크고 작은 색다른 분수로 가득하고, 정원은 잘 정돈되어 있다. 풍요의 여신 젖가슴도 분수로 활용되고, 사자를 비롯한 갖가지 동물의 얼굴로 삼단에 걸쳐 백개의 분수도 만들어져 있고, 용의 분수도 있다. 가장 중심에는 피아노 분수가 있는데 이걸 베르니니가 디자인했다고 한다. 이 분수에서 물이 솟구치고 떨어질 때 피아노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시원한 물방울을 맞으며 느긋한 산책을 즐기다가 피아노 분수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먹는다. 티볼리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마 테르미니역에 도착한 시간은 4시 20분. 카라바조의 '순례자의 성모'가 있는 산타 고스티노(San't Agostino) 성당은 5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니, 서둘러야만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쩌면 헛수고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테르미니 역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내 도시락 가방과 숙소 열쇠를 일행에게 맡기고 산타 고스티노 성당을 향해 서둘러 걷기 시작한다. 걷는다기 보다는 뛰는 수준으로 빠르게 성당을 찾아가는데, 엊그제 갔던 기억과 구글맵을 참고로 지름길로 가로지른다. 나보나 광장에서 4분 거리, 사실은 엊그제 나보나 광장에 왔을 때 미리 알았더라면 이렇게 두 번 걸음 하지 않아도, 서두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미리 조사를 했음에도 직전에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아서 놓치게 되는 경우가 꽤 많다. 성당에는 5시 5분 전에 도착했고 다행히 성당 문은 활짝 열려있다.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왼쪽에 내가 보고자 하는 그림이 걸려 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사진부터 한 장 찍는다. 사진 한 장을 찍자마자 불이 꺼지고 그림 주변이 어두워지는 게 아닌가. 아이쿠, 이런. 나는 절망감에 싸이는 데, 순간 시라쿠사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루치아의 매장' 역시 동전을 넣어 불이 켜져야 그림을 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누군가 넣은 동전 덕분에 잠깐 카라바조 그림을 볼 수 있었던 거다. 나는 좌측 벽에 동전을 넣을 수 있는 기계와 2유로를 넣으라는 메시지를 확인하고, 2유로 동전으로 다시 그림을 본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내가 넣은 2유로의 혜택을 본다. 그러나 길지 않다. 가이드를 하는 청년도 2유로에, 2유로를 더하여, 자신의 손님들에게 그림을 설명한다. 나는 이 시스템에 어느 정도 수긍을 하게 된다. 무료로 성당을 개방하니 2유로 정도의 비용을 치르는 것도 그렇게 과한 건 아니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처음 시라쿠사에서 느꼈던 거부감이 사라졌으니 그건 내가 조금 더 수용적이 된 것일 수도 있고, 이들 문화에 적응한 것일 수도, 아니면 여차 못 볼 수도 있던 그림에 대한 절박함 때문일 수도 있다. 아무튼 그림을 감상하는 내 이마에서는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얼마나 부지런히 걸어왔던지.
'순례자의 성모'는 예수를 안은 성모 마리아가 문 앞에 있는 두 명의 순례자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는 그림이다. 순례자가 무릎을 꿇지 않았다면 마리아는 그저 아이를 안고 있는 이웃집 여인으로 보일 정도로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모습이다. 카라바조 그림의 특징 중 하나가 성서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든 제단화든 상관없이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모델로 삼는다는 점이다. 지금에 와서는 그 점이 선구자적 시도로 높게 평가받지만, 당시만 해도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순례자의 성모'에서는 성모 마리아의 가슴이 너무 많이 노출되었고, 그녀가 맨발이다, 순례자의 발에 시커멓게 때가 끼어있고, 그 더러운 발이 화면을 향해 있다는 등의 시빗거리가 있다. 실제로 거리의 여인을 성모 마리아의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나는 이 그림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먼 길을 열심히 걸어와서 예수를 만나게 된 순례자들의 반가움과 안도감이 내게도 전해지는 듯하다. 그들의 발바닥이 시커먼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일테고. 바로 문 앞에서 순례자를 맞는 마리아의 모습에는 거리감은 전혀 없고, 친근감마저 든다. 피솟음이나 매장, 채찍, 참수가 아니라서 더욱 그렇기도 하다. 산타고스티노 성당 기둥에는 라파엘로 그림 네 점이 있고, 이곳의 화려한 제단은 베르니니가 설계하였으며,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봉헌된 성당이라 중요한 의미를 갖지만, 그에 비해 찾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을 향한다.
테르미니역에 도착하면 안심이 된다. 그곳에서 숙소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일행들의 식사는 끝나있고, 나는 혼자서 천천히 흐뭇한 마음으로 저녁식사를 한다.
2025. 4.23. 테르미니역을 보면 반가워지는 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