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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Feb 03. 2024

성인이 된 제자를 만난 날

너무나 예쁘고 바르게 자라줘서 정말 고마워!

 10년 전 담임을 맡았던 제자가 작년에 수능 시험을 봤다. 그동안 꾸준히 연락을 해주던 예쁜 제자라 작년 여름, 제자를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에 공부하면서 당 떨어질 때 먹으라고 카카오톡 선물하기로 간식 상자를 선물로 보냈었다. 그런데 고3 학생인 제자가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나에게 선생님도 귀여운 아들과 함께 더울 때 시원하게 드시라며 빙수 쿠폰을 보내주는 게 아닌가? 아니, 어떻게 고등학생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 아이는 정말 따뜻하고 어른스럽구나, 하고 생각했다.


 수능을 마친 후,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성인이 된 기념으로 작은 화장품 선물을 보낸 나에게 제자는 정말 감사하다며 인증샷을 찍어 보내주었다. 그리고 두 달이 지난 1월 말, 제자의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10년의 세월 동안 서로 신뢰가 쌓여 절친해진 어머님을 나는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언니는 나와 15살 차이가 나서 내가 언니라고 불러도 될지 먼저 여쭈었는데 그렇게 불러주시면 너무 고맙다며, 좋아해 주셔서 언니라고 부르게 되었다.



 언니는 딸의 수능이 끝나고 대학 입시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이번에 딸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을 했다며, 그래서 이제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


 "와~! 언니, 축하드려요! 너무 잘 되었네요! 역시 우리 00이가 열심히 한 보람이 있군요. 정말 고생 많았을 텐데 대견하네요."


"아유, 10년 전에 우리 아이 가능성을 봐주시고 듬뿍 칭찬해 주신 선생님 덕분이죠. 선생님, 주말에 한 번 서울 오실 생각 없으세요? 얼굴 뵌 지가 너무 오래되어서 뵙고 싶어요! 제가 압구정이나 청담동에서 맛있는 밥 사드릴게요."


 "아이고, 제가 사드려야 하는데. 그럼 커피는 제가 살게요! 우리 00이도 보고 싶은데 같이 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 00이는 요즘 알바하고, 글 쓰고 하느라 바빠요! 이번에는 저희 둘이 만나서 실컷 수다 떨어요. 저, 할 얘기가 아주 많아요."


 언니의 말씀에 나는 알겠다며, 바로 서울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했다. 10년의 세월 동안 내가 이혼 과정을 거치며 아이와 둘이 원룸으로 이사를 가고, 돈을 모아 아파트를 구해서 이사를 할 때마다 집에 찾아오셔서 예쁜 화분을 사주시고, 아이들이 쓰던 좋은  장난감들을 아낌없이 물려주시고, 나를 격려해 주셨던 언니가 보고 싶다는데 얼른 올라가서 뵙고 싶었다. 얼마 전 베트남 여행을 다녀오면서 사 온 선물을 챙기고, 제자에게 전할 편지를 써서 서울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오전 11시 20분쯤, 강남 센트럴시티 버스 정류장에 하차를 했더니 언니는 미리 도착하셔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며 함께 손을 꼭 붙잡고 압구정으로 이동을 했는데 그곳에, 제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 오늘 00이 못 온다고 하지 않았어요?"

 내가 놀라서 언니한테 여쭙자 언니가 말씀하셨다.

 "그러게요. 오늘 우리 둘이 오붓하게 보려고 했는데 00이가 꼭 선생님 뵈러 자기가 가야 한다고, 이렇게 시간을 내서 오겠다고 하더라구요."

 세상에.. 생각지 못한 만남에 감동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어느새 키가 나와 똑같아진, 이제 막 성인이 된 제자와 팔짱을 꼭 끼고, 왼쪽에는 제자의 엄마인 언니의 손을 꼭 잡고 신나는 발걸음으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맛있는 샐러드, 파스타, 라이스볼을 주문해서 밀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사진을 찍고, 웃음을 터뜨리고 하면서 행복과 감사를 느꼈다.


언니가 사주신 신선한 샐러드.


 식사를 마치고, 이번에는 내가 디저트와 커피를 사겠다며 청담동 스타벅스로 자리를 옮기기로 했는데 제자가 잠시 집에 들렀다 온다고 했다. 5시에 알바를 가야 해서 알바 갈 준비를 하고 온다며. 그래서 우리 먼저 가 있을 테니 천천히 다녀오라고 이야기하고 언니와 둘이 스타벅스에 가서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카페로 돌아온 제자의 얼굴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하게 맺혀있었고 손에는 노란색 커다란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선생님, 이거.. 도넛인데 선생님 아들이랑 같이 드세요."


 세상에.. 알바해서 번 돈으로 선생님 선물을 사주려고 뛰어서 백화점까지 갔다 온 거구나. 너무 고맙고, 뭉클하고, 감동이었다.


 "어머 00아.. 이거 사 오느라 이렇게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온 거야? 세상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너무 고맙고 감동이다.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제가 원래 땀이 많아서 그런 거예요."


 땀을 닦으라고 냅킨을 건네는 나에게, 선생님이 걱정할까 봐 자기가 원래 땀이 많아서 그렇다며 뛰어온 거 아니라고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제자가 너무 예쁘고, 대견하고, 사랑스러웠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저녁 5시 40분이 되어 다시 터미널로 향하는 나에게, 끝까지 배웅해드려야 한다며 집 앞에서 터미널까지 데려다주시는 언니를 보면서 생각했다.


 '그래.. 이렇게 좋은 엄마가 키웠는데 아이가 그렇게 잘 큰 게 당연하지. 사람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배려하고, 마음 쓰는 이런 사람들이 잘 될 수밖에 없지. 정말 감사한 인연이구나.'


 오늘도 나는 언니와 제자를 통해 또 하나 배운다. 앞으로도 성장을 거듭하며, 번데기를 벗고 나온 나비처럼 화사하게 비상할 제자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음에 참 설레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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