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과 ‘ㅁ’의 차이
“날씨 참 좋다~~~ ”
“겨울 맞아? ”
“겨울인데 왜 이렇게 따뜻해?”
11월인데도 제주는 겨울 채비가 안된 듯 따뜻했다.
하늘은 파란 유리구슬처럼 구름 한 점 없었다.
날씨가 좋으면 자연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날씨 좋다!”라는 말을 뱉는 순간, 진짜로 기분이 좋아진다. ‘좋다’, ‘기쁘다’, ‘행복하다’ 이런 긍정적 감정의 단어를 말하는 순간 뇌는 반응하도록 되어있다.
10년 동안 기상캐스터로 일했다. 오프닝 멘트에 많은 공을 들였다. 그런데 오프닝 멘트를 쓰기 난감할 때가 있다. 맑은 날이 며칠째 이어질 때다. 날씨 변화가 없는 날.
“오늘은 어디에서나 맑고 파란 하늘을 보실 수 있겠습니다. 낮기온도 25도 안팎으로 따뜻해서 활동하기에도 좋겠습니다.”
다음날은
“오늘도 어제와 비슷한 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또 다음날은…
뭐라고 써야 할까 무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날씨를 생생하게 표현하기에 좋은 어휘를 찾다 한계에 부딪힌다. 방송국마다 기상정보는 보통 1분 내외. 내가 근무한 곳은 지역 케이블방송국이어서 뉴스시간이 30분, 기상정보는 3분 내외로 길었다. 동네별 상세한 날씨를 전달하는 독보적인 뉴스였다. 그런데 모든 동네가 맑다면? 표현의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그것도 며칠이나 이어진다면 멘트가 단조롭고 지루해진다. 때문에 머리를 싸매며 멘트를 썼었다.
나에게 날씨가 좋을 때의 감흥은 오래가지 않았다.
두 번째 아침엽서를 쓰는 날, 예보를 보니
당분간 맑고 따뜻.
날씨, 기분이 좋아진다.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게 또 뭐가 있을까?
말! 그렇다. 말이다!
말 잘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어진 라임이다. 날씨와 말씨.
날씨와 말씨는 ㄴ 과 ㅁ, 자음 하나 차이다.
공통점은 둘 다 사람들의 기분을 좌지우지한다는 것.
차이점은 지속성이다.
말씨가 좋은 사람을 만나면 잔상이 오래 남는다.
초등학교 동창인 친구는 안 본 지 1년이 넘어가지만
종종 떠올라 미소 짓게 한다.
2년 전쯤, 동창들과 저녁 모임을 했다. 두 친구가 한 차로 오는 중이었고 나는 10분 일찍 도착했다. 약속시간이 넘도록 오지 않아 전화를 걸었다.
“미안해~ 기다리고 있지? 장소를 착각해서 다시 가는 길이야.”
“아~ 그래. 괜찮아. 천천히 와. “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그 말을 듣고 바로 답하지 못했다. 예상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미안해. 금방 갈 게. “라고 말한다. 몇 초 후 친구에게 말했다.
“넌 어쩜 그렇게 말을 이쁘게 하니? 네가 그렇게 얘기하니까 내가 되게 좋은 사람이 된 거 같아 내가 더 고맙다야. “
그렇다. 평소에도 ‘고맙다.’ ‘미안하다.’ ‘감사하다.’는 표현을 잘하는 친구다. 그 친구를 생각하면 나는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말씨는 그 사람의 고유한 향기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휘발되지 않는다.
말씨가 예쁜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의 말이 글로 남겨졌다.
행복과 설렘의 향기를 남겼다.
당신은 어떤 향기를 갖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