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기가 한바탕 지나갔다. 고양이 한 마리가 물기가 남은 바닥 위에 걸어와 천천히 눕고 있다. 앞발을 쭈욱 펴고 뒷발은 뻗어서 배를 바닥에 밀착시킨 고양이는 꽤 만족스러운 표정이다. 고양이 이름은 루비. 이 골목에 많은 고양이가 있지만 이런 포즈를 할 수 있는 것은 루비뿐이다.
고양이를 무서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으로 보이면 자연스럽게 피하고, 자기에게 호감을 보이는 사람에게는 거침없이 걸어가서 인사를 한다. 어떤 사람과는 처음 만났음에도 만지라고 엉덩이 쪽을 들이밀고 슬쩍 눈을 마주친다. 그런 고양이를 보고 놀라며 웃던 사람은 어느새 엉덩이를 두드리고 쓰다듬고 있다. 어서 가자는 일행의 재촉에도 쉽사리 자리에 뜨지 못하고 한참을 두드림 봉사 후에야 헤어질 수 있다.
루비는 그런 아이다. 본능적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마성의 매력을 가진 고양이. 자기가 누울 자리를 너무도 잘 아는 아이. 지금은 만날 수 없다. 아 그렇다고 슬픈 상상이나 짐작을 하지 않아도 된다.
루비는 집고양이가 되었다. 집고양이가 되어서도 잘 지내고 있을 것이다. 루비의 지금 이름은 모르지만 더 좋은 이름으로 바뀌어 있을 것이다. 내가 만난 상위 1%의 성격을 가진 고양이 루비.
소나기 오는 날이면 생각나고 보고 싶다.
#누구나보고싶은고양이는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