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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찰카기 Jul 02. 2024

고양이는 꼭 이런다

고인 물을 포기하지 않는다

꼭 이런다. 우여곡절 하고 천신만고 끝에 마련한 밥자리에 깨끗한 물이 있음에도. 보란 듯이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을 마시고 있는 길고양이. 그것도 아주 정성스럽게. 비가 내린 후에 만나는 길고양이들 중에서 열에 다섯. 아니 여섯 정도는 바닥에 있는 물에 코를 박고 있다.


그러다 아는 길고양이라도 만나면 < 깨끗한 물이 옆에 있는데. 왜 바닥에 있는 물을 먹냐. 여기 물먹어>. 몇 번이나 알아듣지도 못하는 타박을 해봐야 소용없다. 결코 고여 있는 빗물을 포기하지 않는다.


태어나서 비가 내린 후에만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걸 경험상 체득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먹을 수 있을 때 꼭 먹어야 되다는 것도. 어쩌면 그것이 길 위에서 살아남는 방법 중 하나일 거다.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가다 보니. 우리가 모두를 챙겨 줄 수 있다는 다짐은 버려야 할 것 같다. 하루에 고작 5-10분 만나서 밥과 물을 챙겨 주는 일도 중요하지만 내가 아니더라도 동네 사람 누구라도 고양이들에게 물 정도는 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을 위한 활동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런 활동이 길고양이 인식 개선 활동. 사람들이 가진 길고양이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일. 시작은 있어도 끝은 없는 활동. 그럼 포기하면 안 되는 이유는 사람을 바꿔놓지 않으면 길고양이의 삶은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야 골목마다 작은 그릇에 물이 채워져 있거나. 공원에 있는 음수대의 가장 낮은 자리에 동물의 물 마실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서 물을 마시는 고양이 아니면 개가 있어도 당연하다는 듯이 그 옆을 무심히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는 날이 오겠지. 길고양이가 빗물을 포기하는 그런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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