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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06.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30. 건강한 노후

 저는 청소년기에 어이없게도 ‘아프면 좋겠다’는 생각을 몇 번 해봤습니다. 아마 지금 50+이신 분들도 저처럼 청소년기에 한 번쯤은 그런 생각을 해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령 운동장에서 뙤약볕을 받으며 조회를 설 때, 특히 교장선생님 훈화가 ‘에, 끝으로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하면서 자꾸 길어지면 ‘아, 나도 몸이 좀 약해서 조회 안 서고 교실에 있으면 좋겠다’, 또는 심지어 ‘아, 픽 쓰러져서 양호실에 가서 누워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해보지 않으셨을까요? 또 ‘에릭 시걸’의 ‘러브 스토리’라는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남자 주인공 ‘올리버’와 여자 주인공 ‘제니’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에 푹 빠져서 혹시 ‘아, 나도 불치병에 걸리면 어떨까’, 철없게도 이런 생각들을 하지 않으셨나요?      


 또는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여성분들 중에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 느낌이 들만큼 연약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 든 적이 있는 분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영화를 보면 클라크 케이블이 비비안리를 번쩍 안고 저택의 많은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장면이 있지요. 아마 많은 여성 분들이 그 장면에서 나도 연인이 나를 번쩍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연약해 보이고 날씬하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아, 나는 남자가 안기는커녕 잘 업지도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좌절한 분들도 계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런 한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지나온 시절을 돌쇠처럼 튼튼하게 버텨준 내 몸이 참 고맙고, 대견하고, 앞으로도 그러하길 부탁하게 됩니다. 사실 살면서 큰 병 없이 사는 것만큼 큰 축복이 어디 있나요? 나이 들수록 중요한 건, 그 무엇도 아닌 건강이라는 걸 깨닫고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노후를 위해 젊어서부터 연금을 준비하듯이, 건강도 청년, 중년일 때부터 관리가 필요하다고 하는 건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실제 몸이 안 좋아도 꾹꾹 참고 살면서 미루고 미루다 병원에 가서, 암을 비롯한 어떤 특정 질환의 병명을 들은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그런 분들은 대부분 크게 놀라면서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하지요. “아니, 어떻게 나한테 이런 일이?” 따지고 보면 그토록 자신의 몸 상태에 무관심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병은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닙니다. 내 면역세포가 이겨내려고 애쓰고 애쓰다가, 또 내 몸이 견디고 견디다 못해 결국 걸리게 되는 게 그런 질환이거든요. 그러니 그 오랜 기간 내 몸을 아끼거나 사랑하지 않고, 방치한 나의 무관심부터 탓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나이 들면 으레 여기저기 조금씩 아프게 마련입니다. '노화'는 질환으로 구분되는 이른바 '노쇠'와는 다른 자연스러운 현상인데, 이런 노화 현상을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리하다가 화를 자초하기 쉽거든요


 중년 이후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말이 '보왕삼매론(寶王三昧論)'에 나옵니다. 보왕삼매론은 중국 원나라 말기부터 명나라 초기까지 살다 간 묘협 스님이, 우리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주신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중 첫 번째 가르침이 바로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마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병고로써 양약을 삼으라」하셨느니라.’입니다. 사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과도한 욕심으로 돈과 명예 등에 집착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병고를 좋은 수행의 방편으로 삼으라는 거지요. 결국 욕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입니다.     


 나이 들면 욕심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나이 들면 외모, 학력, 재물 등 모든 게 평준화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잖아요. 나이 들어 가장 중요한 건, 그야말로 죽기 전까지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고, 내 발로 화장실에 걸어가서 대소변을 볼 수 있는 건강과 능력입니다. 아마 젊은 사람들은 나이 들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부모나 조부모를 간병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그건 나이 들었을 때 바라는 최소한의 기대치가 아니라,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본질이라는 것을요. 나이 들어 최소한의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보루가 바로 그런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머, 난 벌써 몸이 여기저기 삐걱거려’, 아니면 ‘난 벌써 만성질환 약 먹는 게 몇 개 돼’ 하시는 분들도 앞으로 더 나이 들 미래를 위해, 한 살이라도 젊은 지금부터라도 건강한 노후를 위한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전문의들은 특히 청력, 시력, 치아, 무릎관절 등을 평소에 잘 아끼고 관리해야 한다고 하고, 근육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나이 들어 툭하면 하는 ‘입맛이 없어서 식사를 못하겠다’ 또는 ‘밥맛이 없어서 식사를 못한다’는 말은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입맛이 없으면 입맛이 나도록 운동을 하고, 밥맛이 없으면 밥맛이 나도록 요리 방법에도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건강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잘 움직이고’ 이 네 가지는 서로 연관성을 가지고 이어지는 것들이거든요. 


 그리고 그 네 가지만큼 중요한 것으로, 걱정과 욕심 같은 불편한 마음은 이제 제발 부디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한 번에 내려놓아지지 않으면 매일 조금씩이라도 내려놓는 연습을 해서 마음을 편히 갖는 노력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우리 모두 큰 병 없이 나이 들어가면서,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화장실에 걸어가서 배변할 수 있는 멋있는 '슈퍼 시니어'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어쩌면 '에계, 그런 걸 한다고 무슨 슈퍼 시니어야? 슈퍼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이네'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슈퍼 시니어'라는 말을 함부로 갖다 쓴 게 아닙니다. '슈퍼 시니어'는 백세시대를 맞아 새롭게 등장한 용어로,  80세를 넘겼지만 당뇨, 치매, 암 등 주요 노인성 질환에 걸리지 않고, 활기차게 자립적인 생활을 하는 건강한 노인을 일컫는 말이거든요. 그러니까 '슈퍼 시니어'의 본질은 자립적인 생활이 가능하냐는 거지요. 그런 의미에서 큰 병 없이 나이 들어가면서 죽는 날까지 내 손으로 밥 먹고, 내 발로 화장실에 걸어가서 배변할 수만 있어도 '슈퍼 시니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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