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들의 세계, 까미노 프랑스길.
길이…… 없다.
새벽 한 시가 넘은 시간, 난 양손에 리모컨과 과자 하나를 쥐고 퀭한 눈으로 TV앞에 앉아 있다. 몇 달 전까지 확신에 차고 넘쳤던 그 자신감은 온 데 간 데 없다. 틀어놓은 TV는 마치 채널을 돌리는 자동 기계가 붙어있는 것처럼 시계바늘에 맞추어 똑딱똑딱 반복적으로 화면이 바뀌고 있다.
이전엔 모든 것이 확실했다. 남들처럼 사회에서 뛰어나게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딱 그만큼의 자리에서 사회의 단물을 빨고 있었다. 성공을 말할 수 있는 삶은 아니지만 흔히들 말하는 평범한 유리지갑 회사원으로써 한 가정을 꾸리고 있고 작은 집과 작은 차, 그리고 강아지같이 뛰어노는 두 딸과 부모님, 아내 이 모든 것이 나의 한없이 평범함을 증명하고 있었다. 난 요즘 많은 사람들이 직업으로 갖고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을 한다. 어릴 적부터 그런 일을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아주 어린 시절, 만화영화에 나오는 거대한 로봇을 보며 감동을 받고 급기야 그것을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부터, 그 따위 집채만 한 로봇은 돈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부터, 사회에 대한 실망으로 의지를 잃고 평범한 삶을 택했다. 누가 내게 ‘왜 만들려던 로봇은 안 만들고 그런 일을 하나?’라고 물으면 대답은 항상 같았다.
너 그 아파트만 한 로봇 고철 값만 따져도 얼만 줄 알아?
그나마 한 가지 희망은 있었다. 예전에 어른들이 흔히 말하지 않았던가? 한 우물을 파라고. 사회에 나와서 어느 분야든 한 우물을 파면 나중에는 그에 대한 보답이 있을 거라고. 순진하게도 난 지금 하고 있는 일조차도 그 끝에는 무엇인가가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삼십 대 중반을 넘어가는 고개에서 시작된 ‘평범한 삶’에 대한 의문은, 몇 년 동안 계속 머릿속 부드러운 부분만을 골라 살짝살짝 건드리며 염증을 만들고, 누렇게 그 면적을 늘려가고 있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건지, 도대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행복’이라는 건 언제쯤이나 볼 수 있는 건지, 그것이 있기나 한 건지, 지금 ‘잘’ 살고는 있는 건지. 아이가 아빠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내 삶을 통째로 바쳐 끌어가는 - 애써 거부하고 있는 생각은, 내 삶이 거꾸로 끌려간다는 것이었지만 사회에서는 개인이 끌고 간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계속 주입시키고 있다. - 이런 삶의 끝에는 과연 그만큼의 가치 있는 ‘행복’이라 불리는 무엇인가를 볼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일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마치 실체가 없는 환영을 위해 목숨을 바치라는 것과 뭐가 다른 것인가?
평범하게 사는 사람들이 한 번씩 겪듯, 지난해 가을 병원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주검을 보았다. 내게 아버지는 단지 생물학적인 의미의 ‘아버지’만은 아니었다.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비슷한 ‘유리지갑 엔지니어 회사원’이라는 직업을 가진, 가장 가까이서 비슷한 길을 먼저 걸어가고 있는 등대였으며 누구보다도 현실적으로 바로 앞에서 걷고 있는 선구자였다. 젊었을 때는 꽤 유명했고 큰 회사에서 한자리하시던 분이다. 때가 되면 들어오는 갈비세트, 선물세트 등이 어린 나에게는 당연하게 비춰졌었다.
아버지는 그 자신감에서였는지 고등학교 시절 나를 불러 요즘 유행하는 무전여행이나 한번 다녀오라고 하셨다. 혹시 돈이 필요하면 주변 아무 대리점이나 들어가 아버지 이름을 대고 돈을 빌려서 다녀도 된다고. 우상이나 다름없었던 그 아버지를 보고 자라며, 그러한 길로, 그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됐었다.
그 당시부터 로보트의 고철 값을 걱정하는 나이가 될 때까지 생각조차 못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 사람에게 너무나 중요해서 당연히 갖고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지나갔던 부분, 그 사람의 가슴 한가운데에 심지처럼 틀어 박혀 있어야 할 그것, 바로 그 부분이 비어있었다. ‘삶’이라 부르는 부분이었다.
돌아가시기 몇 달 전, 회사를 마치고 병실 보호자석에 앉아 아버지의 잔심부름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는 나직이 말씀하셨다.
난 정말, 내 인생이 후회 돼. 그냥 지금 어디 가서 큰소리로 엉엉 울고 싶을 뿐이야.
건조하게 천정을 향해 뜬 초점 없는 눈을 들여다보며 난 사실보다 더 사실처럼 아버지의 눈물이 느껴졌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가장과 아버지의 역할을 택해 살아온 것을 절실하게 후회하고 있지만, 이 순간조차 더 이상의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는 것이다. 아버지니까. 난 그 눈을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할 수 없었다기보다는 목에 혀가 쑥 들어가 막고 있는 듯이 숨을 쉴 수도 없었고 아무 소리도 낼 수 없었다.
며칠 후 아버지는 더 이상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목에 관이 삽입됐고, 또 얼마 후 그 건조한 왼쪽 눈에서 단 한 방울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셨다. 그 주검의 순간이 내 모습과 겹쳐지며 하늘로 둥둥 떠 올라, 눈을 반쯤 뜨고 식어버린 내 자신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다.
서울에서 시설이 꽤나 훌륭하다는 S종합병원으로 구급차에 실려 갔을 때 문 앞에 버티고 서서 ‘이런 사람 데리고 와서 나에게 뭘 바라냐’며 나가라고 쫓아내던 의사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몇 달 전 같은 종합 병원 담당의사의 권유로, 과정이 간단해서 바로 출근도 가능하다는 폐 검사과정 중 발생한 기흉으로 인해 급히 응급실로 옮겨진 것이 이 사태의 시작이었지만,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쫓겨나 강제로 옮겨진 주변의 K종합병원도 마찬가지였다. TV에서 보던 응급환자에 대한 의사들의 헌신적인 태도와 예의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심폐 소생을 받으며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태연하게 컵라면을 먹으며 쳐다보는 응급실의 의사들,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들을 아예 들어오지도 못하게 막고 있는 의사들. 아마도 죽은 다음에 들어간다고 했으면 오히려 좋아했을지도 모르겠다. 받아봐야 돈도 안되고 병원 통계에 불리하다는 계산이 얼굴에 쓰여 있었다.
주검 앞에 둥둥 떠 있다가 다시 내 몸으로 돌아왔을 때 언제나 확실했던 삶에 대한 자신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저분한 2차 의료원의 중환자실에서 힘없이 풀어진 아비의 손이, 나의 정확한, 어쩌면 훨씬 나은 미래였다.
주변을 둘러봤다. 죽음 직전의 사람들이 목에 관을 삽입하고 일렬로 누워 있는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우리 일행을 쫓아내며 S종합병원에서 소개해 준 이곳은, 그곳에서 튕겨져 나온 사람들이 저승으로 들어가기 전 쉬어가는 간이역 같은 곳이었고, 그곳의 명성에 하자가 될만한 사람들을 받아 돈을 챙기는 듯 보였다.
카메라의 초점이 흐려지듯 순식간에 삶이 희미해졌다. 여러 가지 색의 경계가 무너져 섞이듯 회색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내 시야도, 삶도, 길도 서서히 풍선의 바람이 빠지듯 흐려지며 마치 몸속의 뼈가 산화되어 한없이 증발하고 있는 것처럼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난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었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으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도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다.
난 완벽하게…… 길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