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일 상

신들의 세계, 까미노 프랑스길.

by 이작


지잉… 지잉…



새벽 6시, 평소처럼 일어났지만 그 이후는 별 기억이 없다. 서둘러 세수를 하고, 출근하고, 전화를 받고, 업무를 처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느덧 새벽 1시. 어제와 똑같이 소파 위에서 한 손에는 리모컨, 다른 한 손에는 과자 한 봉지를 들고 앉아 초침처럼 채널을 돌리고 있다.


벌써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하루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휘발 돼 버린 메모리처럼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침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고 이메일을 읽으면 몇 시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주 정확하게 일정표가 만들어진다. 어제부터 계획된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급하게 요청하는 것들이다. 새 둥지의 아기 새들이 떠오른다. 나 먼저 달라고 입을 벌리고 어미에게 소리 지르는 그 새들이, 현실의 모습에서는 시커먼 눈과 커다란 입을 들이대며 어디부터 내 몸을 갉아먹을지 빈 틈만 노리는 괴물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두려웠다. 사회에서 완벽한 톱니가 되어 돌아가는 이 생활이 당연시되고 있지만, 그냥 가족들과 앉아 재미있게 떠들며 하는 한 끼 식사가 소원이 돼 버린 지 오래다.


내 아이는 더 이상 아빠에게 오지 않는다. 다가와 살갑게 굴긴커녕, 아빠라는 이름을 가진 모르는 어른을 대하듯 한다. 이 지경이다 보니 집안도 편안할 리가 없다. 주말이면 모든 식구들의 불만이 화살이 되어 날아왔다.


어릴 적부터 난 조금 이상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보통은 그 내용으로 요점을 파악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과 손과 발, 목소리의 느낌 등 사소한 것을 살피는 습관이다. 막내로서 살아남기 위해 후천적으로 얻어진 습관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행동들이 입보다 더욱 진실을 말해주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소소한 관찰을 즐기며 그런 것을 통해 얻어진 정보를 바탕으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좀 더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습관들이 거꾸로 나를 공격했다. 집 대문을 열 때부터 느껴지는 싸늘한 공기는 어쩌다 쉬는 날이 돼도 내 가늘어진 숨통을 조인다.


스트레스 때문인지 언제부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왼쪽 손이 커다랗게 부어있다. 주먹을 쥐려고 해도 쉽게 쥐어지지 않았고 왼쪽 가슴은 종종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련이 일어난다. 오른손으로 한 시간가량 왼손을 주무르고 진정시킨 후에 띵한 머리를 손봐 줄 차례다. 약국에서 구입한 두통약을 회사 서랍에 넣어 두고 상습 복용 한다. 허리는 이미 디스크 두 개가 터져 있다. 가족에게는 걱정할까 봐, 무엇보다도 그 차가운 집안 공기에 더 이상 찬물을 뿌릴 수 없어서 아예 입을 닫아버리고 말았다.


다시 새벽 1시. 오늘도 역시 잠들지 못한다. 눈을 감으면 다시 내일의 현실 속으로 자연스레 이어지고 정신을 차리면 이 시간이 돼 버리는 삶이 무섭다. 뫼비우스의 띠 같은 이 현실이 너무나 지겹고도 아쉽다. 내게 이미 정해져 있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소멸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과자와 TV 같은 이 의미 없는 행동을 멈출 수 없다. 이게 잘 사는 건지, 정말 잘 살고 있는 건지 자문해 봤지만 답은 어디에도 없었고 아버지가 남긴 ‘후회’라는 말은 머릿속을 빙빙 돌다가 내 삶의 깊은 곳으로 늪처럼 빠져 들어간다.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좋지 않을 때면 가끔씩 머리를 감다가 마치 뒤에서 무서운 존재가 쳐다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 소름이 돋을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어린아이 같은 생각에 혼자 피식 웃곤 한다. 오늘 다시 그런 느낌을 받았을 때, 예전과 다르게 눈을 감아 버리며 중얼거렸다.



뭐해.. 나 좀 데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