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신비한 동화나라의 초가집, 오세브레이오

VILLAFRANCA ~ O’CEBREIRO, 28th Day

by 이작


이곳에서의 밤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새벽까지 안팎에서 시끄러운 노래 소리가 들려왔고, 들떠있는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게다가 아침에 눈을 떠보니, 양쪽 팔을 타고 오른 베드벅의 흔적이 남아 있다. 어깨까지 올라오며 물린 자국들이 벌겋게 퉁퉁 부어 오르며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온몸을 벅벅 긁어댔다.

눈을 뜨자마자 좁은 침대에 놓아둔 안경부터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새벽 5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아직 깜깜하고 조용하다. 몇몇 순례자들은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지만 개인 공간이 너무 좁다보니 주섬주섬 짐을 챙겨 들고 마당으로 나가 마당 한가운데의 탁자에서 배낭을 싸고 있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팻 일행도 비를 맞으며 짐을 싸고 있는 것이 보인다. 나 역시 짐을 들고 나와 정리하며 비옷을 꺼내고 가방엔 레인커버를 씌웠다. 이 수많은 사람들이 지내는 시설에 화장실 대변기가 단 하나밖에 없는 것도 놀라웠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고 사용하고 있는 것이 더 놀랍다. 길을 걷다 보면 마음도 함께 넓어지는 모양이다.

짐을 모두 챙기고 나니 양쪽 팔에 베드벅에게 물린 자리가 점점 더 벌겋게 부어 오르며 가려움이 심해진다. 마치 새로 근육이라도 생긴 것처럼 얼핏 보기에도 엄청난 크기로 부어 오르고 있다. 가려움을 참으며 짐을 싸는동안 침대에 두고 온 짐들을 가지러 몇 차례 방을 왕복했다. 작은 랜턴 불빛으로 남은 짐을 챙기다보니 사람 눈높이쯤 되는 2층 난간에 잃어버렸던 안경이 올려져 있었다. 내가 쓰고다니던 안경은 이미 두세번 발에 밟혔고, 한쪽 안경알의 나사가 빠져버려서 하얀 실로 묶어둔 터라 쉽게 구별 할 수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깨어있는 사람이 없어서 마음으로 나마 감사함을 전하고 나머지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오늘 올라가야 하는 오세브레이오는 높이가 1300미터나 된다. 처음 까미노를 시작할 때 느낀 것이었지만, 산의 높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 높이가 얼만큼의 거리에 걸쳐져 있는지가 더 중요했다. 오늘은 처음에 산 하나를 넘은 후 완만한 코스로 진행되다가 나중에는 7킬로미터의 거리 동안 해발 600미터를 올라가야 한다. 1킬로미터의 거리마다 100미터씩 올라가야 해서 절망을 맛봤던 첫날 오리손 알베르게에 오르는 길과 비슷한 높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침부터 비가오기 시작한다. 이 길을 걷기 시작한 이후로 걸으면서 처음 만나는 비다. 새벽부터 비가 내려 길도 캄캄했지만 다행히도 시작은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걷는 길이다. 편안한 아스팔트 길을 걷고 있자니 같은 옷을 입은 학생들이 무리를 지어서 걷고 있는 것이 보인다. 선생님으로 보이는 사람들 두 세 명이 앞뒤로 그 무리를 감싸고 있었다.

어제 밤에 다른 사람들도 깊이 잠들지 못했는지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얼굴들이 꽤 많이 눈에 띈다. 인사를 하고, 안부를 물으면서 편하게 걷다 보니 어느새 노란 화살표가 두 갈래 길로 나뉜 곳에 다다랐다. 아스팔트 길로 그냥 걸어가거나 약 30도 정도 경사진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이곳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운 경관으로 유명한 등산 코스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비까지 내리고 있다. 게다가 오늘의 마지막은 1,300미터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우리 일행은 이번 등산코스는 피해서 가기로 하고 아스팔트를 택해 걸었다.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새벽에 그 산을 넘는것은 무리였고, 또한 오늘 오후 오세브레이오를 올라야 하는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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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길과 평평한 시골 길로 이어지는 마을 세네곳을 지나 오세브레이오 바로 아래 마을에 도착했다. 산티아고까지 190킬로미터밖에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만만치 않은 거리지만 그간 걸은 거리를 생각하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은 거리다.

산 아래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모두가 지친 상태였다. 높은 산 꼭대기까지 올라야 하지만 다행인 것은 첫날 들렀던 오리손 알베르게와는 다르게 중간 중간 쉴 수 있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오세브레이오는 해발 약 13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 빠요사(Palloza)라고 불리는 초가집 모양의 전통가옥이 유명한 곳이며, 성체와 성배의 기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장소라고 한다. 하지만 고도가 너무 높고 오르는 길이 좁아 오늘같이 비가 내리는 날은 오르기가 무척 위험하다.

본격적인 등산을 시작하기 전에 산 아래에서 일행들과 바에서 장비를 정리하며 점심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올라갈 거리를 계산해 보면 족히 4시간은 넘게 소요될 것 같았다. 이탈리안 레스토랑 같은 느낌의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간 바에서는 이미 열 명 가량의 순례자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니 환호를 보낸다. 어느 곳이나 순례자들이 모여있는 곳에서는 처음 만나도 친구가 되고, 서로를 격려해주는 모습이 편안하다. 비와 땀으로 이미 범벅이 된 비옷과 점퍼, 옷가지들을 벗어 의자에 걸어두고 음식을 주문했다. 대기하는 시간에는 신발끈도 다시 매고 배낭도 단단히 고정시켰다. 식사도 하고 충분히 쉬었다고 느낄 때쯤 우리 넷은 비옷을 뒤집어 쓰고 다시 환호를 받으며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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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입구에서 바로 시작된 오르막은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옆으로 하얀 구름밖에 보이지 않는 가파른 벼랑이다. 위험한 길이었지만 이전에 비해 몸이 많이 가벼워지고 건강해진 것을 느끼며 가볍게 걷는다. 첫날 오리손알베르게를 오르며 양쪽 다리의 경련으로 인해 한 두 걸음 걷고 주저앉아 버렸던 다리가, 이젠 가방을 메고 뛸 수도 있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좋아졌다고 해도 첫날처럼 햇빛이 쨍쨍 내리쬐었다면, 정말로 오르기 힘들었을 것이다.

스페인 북쪽 지역인 이 곳은 건기인 여름이 뜨거운 햇빛으로 유명한 지역이지만, 다행히도 높은 산을 올라야 할 오늘 처음으로 걷는 중에 비를 만날 수 있었다. 굵고 소란스럽지 않은, 시원하고 작은 빗방울이었다. 이런 비는 나처럼 좋지 않은 체력으로 높은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우연이라고 말하기에는 또다시 너무 큰 선물처럼 느껴진다.

처음에는 많이 쏟아지던 비가, 우리가 산을 오르기 시작한 이후로 조금씩 잦아들었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비옷속으로 흐르는 땀에 결국 모두 비옷를 벗어 버렸다. 차라리 시원했다. 마음도 개운하고, 육체적으로도 힘이 넘쳤다. 처음에는 따라가지도 못했던 사람들을 이제는 직접 챙겨가면서 올라가도 몸에 무리가 없었다.

새라와 클레어가 힘들어하자 팻은 내려오는 사람에게 물어봤다며 앞에 있는 언덕만 넘으면 다 온 것이라고 몇번 언덕을 넘을동안 반복했다. 실은 나도 그 사람들을 만났는데, 자꾸 거짓말을 하길래 총으로 쏴버렸다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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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몇 번의 봉우리를 넘고, 가려져있던 비탈길을 걸었다. 왼쪽 아래로는 구름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였지만 보이지 않으니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듯 걸을 수 있었다. 산이 워낙 높다 보니 구름속의 길을 걷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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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둘러 쌓인 동굴 모양의 아치길을 지나니 오른쪽에 커다란 돌들을 성처럼 쌓아놓은 담장이 보인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듯 초록 이끼와 습기가 뒤엉켜 검게 변해버린 담장이다. 이 곳을 따라 돌아 올라가니 구름 속에 희미하게 동화 같은 초가집 모양의 건물이 나타났다. 오세브레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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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의 마을에 올라보니 골목골목까지 구름으로 가득했고 세찬 바람과 함께 비가 내리고 있었다. 추운 날씨탓에 벗어두었던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다시 챙겨 입었지만 그래도 추위는 가시지 않는다. 일단 마을에 들어왔으니 숙소를 정해야 하는데 이미 비어있는 알베르게가 없었다. 우리보다 먼저 오세브레이오에 도착했던 많은 순례자들은 짐도 풀지 못한 채 주변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그 중 일부는 9킬로미터를 더 걸어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로 가겠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 높은 산을 다시 내려와 다음 마을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잠시 고민하다가 조금 비싸지만 펜션을 잡기로 하고, 2인실 45유로짜리 펜션을 잡았다. 1인 10유로 정도의 알베르게 가격에 비하면 두 배가 넘지만 화장실과 샤워실도 따로 있고 전망도 좋은 곳이었다.

처음으로 들어와 본 펜션은 2인용 침대가 쭉 늘어서 있는 알베르게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난 샤워 후 땀과 비에 젖은 옷을 모두 빨아놓고 남은 옷들 중 가장 두꺼운 옷을 꺼내 겹겹으로 껴입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에 긴장이 풀어져 몸의 이곳저곳이 쑤셨고 신발을 신는 느낌조차 다르게 느껴 졌다.






식사를 마치고 각자 마을을 둘러 봤다. 비구름이 마을 전체를 안고 있어서 어디도 깨끗히 보이는 곳은 없었지만 이런 분위기가 더욱 신비스런 느낌을 갖게 한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크기의 마을에 초가집 모양의 빠요사가 몇 채씩 모여 있었다. 고도가 높고 바람이 많은 이곳의 환경에 맞춰 지은 듯 했다.

마을 전체가 구름에 덮여 버렸고 오밀조밀하게 건물들이 모여있는 곳에 지붕이 낮은 성당이 있었다. 성체와 성배의 기적이 일어났다는 이 성당은 다른 성당들보다 지붕이 낮았지만 공간은 넓었으며, 사제복을 입은 신부가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하며 세요를 찍어주었다. 그가 세요를 찍으며 내게 묻는다.



“사제입니까?”


여태까지 봐 왔던 스페인 건축과는 완전히 다른, 어떻게 보면 주변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발생한 동화마을에 와 있는 것 같다. 이런 건물들과 안개가 합쳐지니 마치 동화의 한 장면 안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집채만한 물고기가 입을 뻐끔뻐끔하면서 눈앞에 나타나 건물 사이를 헤엄치고 다녀도 하나도 이상할 것 없는 느낌이다.

다들 숙소와 마을이 마음에 들어 내일 아침 하루만은 한껏 게을러 보기로 한다. 아침 8시에 길을 나서도록 모든 일정을 늦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꿈을 꾸게 되어도 꿈속의 공간은 바로 이곳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