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서, 여유가 느껴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이가 생기고는 더 행복해 보인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런 여유와 행복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생각해 보니,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쭉 함께해 온 든든한 '내 편' 덕분이 아닐지 싶다.
20대의 나는 풍요 속의 빈곤이었다. 항상 많은 사람과 어울리고 약속이 끊이지 않았지만, 이는 사실 혼자 있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과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잊으려는 노력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보통의 인간관계와는 좀 다른 '연애'라는 것이 참 어려웠다. 자주자주 서운한 일이 생겼고 항상 상대방의 "그래 내가 잘못했어."로 상황이 마무리됐다. '연애 전' 평소에 보인 나의 밝고 쾌활한 모습과는 다른 '연애 중' 나의 소심하고 예민한 모습에 상대방은 실망하곤 했다. 내가 서운했던 상황들을 돌이켜보면 여러 해석이 가능한 상황에서 굳이 서운한 부분을 찾아내곤 했던 것 같다. 예를 들면 퇴근하고 쉬고 싶어 하는 그와 연락하며 '일하고 오느라 피곤하겠어.'라는 생각보다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은 걸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배려도 하지 못했다. 그럼 내가 본래 이기적이고 배려심 없는 인간이었을까? 그랬다면 평소 주변에 여러 사람과 잘 지냈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왜 유독 연애할 때만 이런 모습이 나왔던 걸까. 그때 나의 대답은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는 내 마음속의 결핍이 채워지지 않아서였음을 알게 됐다. 그걸 알려준 '내 편'을 만난 이후에.
스물일곱이던 해, 친한 언니와 수다를 떨다가 "너는 연애 상대를 고를 때 진짜 딱 하나만 본다면 뭘 볼 거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나는 주저 없이 "키!"라고 이야기했다. 20대라 그랬는지 그땐 키가 참 중요했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언니에게 소개팅을 받게 되었다. 첫 만남에서 이미 '훤칠한 키'에 마음을 쏙 빼앗겼지만 화려한 언변이나 로맨틱과는 거리가 먼 우직하고 심심한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업무로 바쁜 그를 나는 항상 기다리는 쪽이었고, 어느새 그에게 서운한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생겨났다. 내가 그에게 서운하다 할 때마다 그는 내가 자기에 대한 믿음이 부족해서라고 했다. 자기는 나에 대한 믿음이 단단해서 내가 하는 행동에 서운한 일이 없다고 말이다. 이전 연애에서는 "그래 내가 잘못했어."로 끝나던 대화가 '믿음'이라는 고차원적인 주제로 넘어가니 처음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너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이상한 논리로 나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해를 거듭하고, 그를 알아갈수록 그는 멋없지만 진중하고 심심하지만 차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 함부로 이야기하는 법이 없고, 자기 삶의 가치관에 흔들림 없는 그와 함께하니 자연히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서운한 마음에 감정이 앞서던 나의 모습을 한 번 추스르게 되었고, 그가 나에게 줄곧 이야기했던 마음을 의심하지 않고 서로 '믿어주는 것' 이것 또한 실천해 보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 그의 행동에 아쉽거나 서운한 마음이 들더라도 그의 마음을 의심하는 대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 봤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그럴 땐 그냥 덮어놓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며 마음속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서운함을 꾹꾹 눌렀다. 그 순간을 넘기니 서운한 마음이 들기보다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던 그 상황이 걱정되고, 그의 행동을 지지해 주게 되었다. 그도 이런 나의 노력에 부응하듯 나를 더 이해해 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 주었다. 서로 자기 사정만을 이야기하던 대화는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내용으로 바뀌었다. 서로에 대한 단단한 믿음의 힘이었다.
5년 전, 그와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에게도 보통의 연애처럼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결국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사실 남편은 처음부터 한결같았는데, 내가 그와 함께하면서 마음의 결핍을 채워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항상 마음속에 내가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결혼 후 여보가 더 좋아졌어, 여보와 사는 삶이 행복해"라는 남편의 말이 정말 큰 선물처럼 느껴졌다. 아이를 낳고 육아로 힘들어할 때마다 "이렇게 대단한 일을 하는 당신은 정말 대단해, 존경해"라고 이야기해 주는 그의 응원 덕분에 다시 힘을 내고, 자존감도 높아졌다. 요즘은 "내가 이 힘든 일도 해냈는데 더는 못 할 게 없지, 행여 못하면 어때, 나를 응원해 주는 이들이 있는데"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지니고 산다.
든든한 평생의 내 편이 생김으로써 삶의 여유가 생겼고 내가 그에게 받았듯 나도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관계의 믿음에서 오는 이 든든한 힘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종종 인간관계에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어 코칭 교육도 들었다. 이제는 서른일곱이 된 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후배가 “선배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져.”라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참 감사했다. 나의 좋은 사람에게 그리고 나를 좋은 사람이라 해준 이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