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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에서도 미중 전쟁

시퀀싱 시장을 두고 경쟁하는 illumina와 BGI

by 생각하는뇌

※바쁜 사람들을 위한 3줄 요약※

1. 시퀀싱 기술은 DNA/RNA 분석을 통해 질병 진단과 치료제 개발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코로나 백신 개발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 초기 생어 시퀀싱에서 출발한 이 기술은 차세대 시퀀싱(NGS)으로 발전했고, 현재는 미국의 Illumina와 중국의 BGI가 시장 점유율과 특허 분쟁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3. 두 기업의 법적 다툼은 국가 간 정치·경쟁으로 확대되며, 미국과 중국의 규제 조치로 인해 생명과학 분야도 국제적 갈등에 휘말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퀀싱, 도대체 뭐길래?


시퀀싱(sequencing) 기술은 굉장히 중요한 기술이다. 이 기술은 세포에서 가장 중요한 물질인 DNA 혹은 RNA의 서열을 밝혀내는 기술로, 이 기술이 없었다면 암이나 치매와 같은 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하기는 커녕 무슨 병인지 제대로 진단하지 못 한다. 실제로 코로나도 이 시퀀싱 기술로 RNA 서열을 단 며칠만에 밝혀냈기에 바로 백신을 개발 시작할 수 있었다.


2013112113562850508_1.jpg 프레드릭 생어의 사진

시퀀싱 기술은 1977년 프레더릭 생어(Frederick Sanger)에 의해 개발된 생어 시퀀싱(Sanger sequencing)에서 시작되었다. 초기에는 DNA를 떼내서 하나하나 nucleotide를 붙이며 하느라 시간도 돈도 많이 들었지만, 이후 차세대 시퀀싱(Next-Generation Sequencing, NGS) 기술이 등장하면서 대량의 DNA 서열을 빠르고 저렴하지는 않게(?) 분석할 수 있게 되었다. 스마트폰처럼 이 기술도 시간이 지나도 가격은 변하지 않지만 성능이 많이 좋아졌다.


※참고로 프레드릭 생어는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위대한 과학자다.


NGS 중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시퀀싱 중 하나는 short read 시퀀싱이다. short라는 말처럼 300 염기(NT, nucleotide) 이하의 서열을 읽을 때 주로 사용되며 error rate가 낮아서 많이 활용되어 왔지만, 300은 너무 적은 숫자다. 왜냐하면 사람의 염기 개수는 약 32억 개에 달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300개 이상의 염기가 하나의 단백질을 만드는 경우도 꽤 많다.


그래서 요즘 대세는 long read 시퀀싱이다. 이 방법은 기존 short read 시퀀싱보다 길게 읽을 수 있는 대신에 가격도 비싸고 error rate도 높았지만, 최근에는 기술이 발전해 오히려 long read 시퀀싱의 가격이 더 낮은 경우가 많이 나왔다. 이런 시퀀싱 시장에서 가장 점유율이 높고 선두주자를 달리는 회사가 미국의 illumina다. 1998년 미국에서 설립된 illumina는 지금 글로벌 DNA 시퀀싱에서 대표 제품인 NovaSeq, NextSeq, MiSeq을 필두로 약 70% 이상의 점유율을 보유할 정도로 굉장히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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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umina와 대표 제품 MiSeq

그러나 이 점유율은 사실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원래 illumina의 점유율은 거의 85%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런 시장에 도전장을 던진 한 기업이 있다. 바로 BGI다. BGI는 그 이름부터 Beijing Genomics Institue, 즉 베이징(beijing)에서 시작한 중국의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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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I와 그들의 제품


처음에 BGI는 원래 중국 유전체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 기관이었다. 그러나 2010년 illumina의 시퀀싱 기술 일부를 인수하더니, 이후 점점 규모를 키워가며 현재는 DNA 시퀀싱 기술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 중국 최대 유전체분석장비 제조 및 서비스 기업이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BGI는 대표 제품인 MGISEQ 시리즈(BGI의 자회사 MGI에서 개발)를 필두로, illumina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다양한 연구 및 임상 분야에서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둘의 경쟁을 보면 사실상 단순한 두 기업의 경쟁이 아니다. 두 회사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 둘의 경쟁이 국가 간의 정치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 회사는 10년 넘게 계속해서 법정 싸움을 이어나가고 있다. 과거 2013년부터 시작한 소송 공방은 처음에는 illumina의 승리였다. 202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DNA 관련 특허 소송에서 illumina가 승리해 BGI에게 8백만 달러(한화 약 117억)와 6개월 간의 영업정지권을 받아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해, 델라웨어 주에서 진행된 소송에서 BGI가 승리했다. BGI가 인수했던 Complete Genomics Inc가 illumina가 자신들의 기술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고, 그것을 법원이 인정하면서 illumina는 BGI에게 3.33억 달러(한화 약 4890억)를 지급해야 했다.




이렇게 금액만 보면 BGI가 법정 싸움에서 승리한 듯 보인다. 그러나 이 문제는 두 기업 간의 싸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2025년 1월 7일, 미국 국방부는 중국의 134개 기업을 '중국군사기업(Chinese military companies)’으로 지정하고 규제 대상으로 삼았다. 이 중에 중국의 BGI 본사를 포함해 아래 계열사인 BGI Genomics, Forensic Genomics International, MGI Tech 등 6개의 기업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듯 중국 상무부는 2025년 2월 4일 00시부터 미국에 대한 보복성 관세를 적용함과 동시에 illumina를 '신뢰할 수 없는 기업'으로 정해 중국 내 거래를 막았다.


dp-us-vs-china.png 나날이 심해지는 국제 정치와 무역 전쟁

생명과학 기업은 생명과학을 다루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전 인류를 위해, 혹은 인류의 지식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 위에 있는 국가 간의 싸움과 이권 다툼에 그저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비단 이런 문제는 과학에서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국제 정치와 무역 전쟁이 갈수록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우리는 과연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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