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이라기에는 빈약한 무언가
필자는 과학을 전공했다. 그럼에도 창의성이라는 것은 과학만으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추구하고 환상을 가지는 덕목 중 하나이다.
그런 도중에 유튜브 <지식인사이드>를 통해 김정운 박사를 알게 되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영상을 통해 '창의성'의 시작과 그것을 이루는 방법을 연구했다는 말에 혹해 그가 쓴 책을 찾아보았다.
<창조적 시선 : 인류 최초의 창조 학교 바우하우스 이야기>라는 책. 처음 그 책을 검색해 보았을 때 나는 놀라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 안에 있는 내용이 문제가 아니었다.
'더럽게 비싸.'
10만 원이 넘는 정가. 아무리 10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고 해도 책 하나에 쓰기에는 너무나도 거금이었다. 책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러했다.
다행히 근처 대학교 도서관에 재고가 하나 있었고, 잠시나마 빌려서 그 내용을 훑어보았다.
그래, 훑어보았다. 솔직히 다 읽기에는 무리였다.
재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가 직접 찍은 독일 현지의 사진들과 함께 기행록 같은 느낌도 드는 1부는 술술 읽혔다. 그렇지만 본래 과학을 공부한 입장이니 저자의 배경인 심리학, 그리고 거기에 섞인 문화철학의 성격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는 입장이 아니라면 다 읽었겠지만, 그렇지 못했기에 나중에라도 읽고자 지금까지 읽은 부분의 간단한 정리를 이곳에 남기려고 한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뉠 수 있는데, 창의성과 가장 관련이 깊은 부분을 따지면 3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설명을 위한 배경지식이 1부와 2부에서 서술된다. 1부는 독일 바우하우스 학교에 관한 역사를 저자가 직접 독일을 돌아다닌 경험과 함께 알려주고, 2부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곁들인다. 필자가 중점적으로 훑어봤던 것은 1부와 3부였다.
몇 가지 기억나는 내용을 간단히 문장 몇 개로 풀어본다면...
- 우리가 점 3개와 서로를 향한 끊어진 선만 보아도 삼각형을 연상하는데, 이것은 게슈탈트 심리학의 '완결성의 원리'에 따른 것이다. 미완결 상태를 완결 상태로 만들기 위한 이 심리기전을 활용한 것은 그림에서는 인상주의가 있는데, 이러한 원리의 기반에는 우리가 아는 것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다.
- 이러한 해체와 재조합에는 유형화와 표준화가 필수적이다. 피아노는 사실 하나의 건반과 다른 건반 사이의 음을 표현할 수 없는, 연속적인 음이 해체된 표준화의 산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피아노 소리를 아름답다 여기는데, 이는 표준화된 건반이 함께 재조합되어 화음을 만들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유형화/표준화를 통해 해체/재조합을 할 수 있다. 더 직관적으로 말하면, 편집 가능하게 만들어야만 우리가 다시 조립하면서 창의성을 만들 여지가 생긴다.
- 결국 창조는 편집이며, 이를 위해 편집의 단위(유형화/표준화)를 정하기 위한 분석,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메타인지가 어떤 차원인지를 아는 것 이 2가지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나무를 여러 직육면체로 쪼개 표준화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재조합할 때 평면의 차원에서 진행하면 얇게는 종이, 두껍게는 강당 바닥이 될 것이고 입체의 차원에서 재조합하면 의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 무언가를 "만들어졌다"라고 생각해야 "나도 창조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 가능하다.
- 그렇기에 메타인지, 즉 어떻게 분류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왜냐하면 존재는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이해도 불가능하지만 분류를 통해 권력을 얻기 때문이다.
굉장히 어렵게 요약되었지만, 실제 책에서는 훨씬 쉽고 길게 서술되어 있는 내용이다. 안에는 더 재미있는 내용도 많았다. 특히 창의성이라는 단어가 1900년 초반에서야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는 주장도 있었는데, 듣기만 해도 궁금해지지 않는가?
여기에 더해 필자의 생각을 하나만 더하자면, 결국 저자의 생각인 "창조는 편집"이라는 점을 확실히 구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할 것 같다. 하나는 편집의 대상에 대한 공부다. 무언가를 모른다면 제대로 편집할 수가 없을 테니 당연하다. 특히 어린아이들이 그림을 그릴 때 지식의 부족으로 해를 파랗게 그린다거나 하는 것을 창의성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필자는 그런 것을 창의성으로 보지 않는다.
또 다른 것은 편집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편집을 해보고, 그것이 자신에게 최적의 방식으로 굳어지면 하나의 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은 나중에 다른 것을 편집할 때에도 그대로 쓰일 수 있다. 여기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축을 만들 정도로 편집을 경험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령 레고 블록을 어릴 때 누구나 가지고 놀았지만, 레고 블록을 자신의 키의 두세 배는 높은 건물을 만드는 데에 써본 사람만이 어디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 필요한지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면 그 지식은 크게는 건축에도, 작게는 등에 쌀을 지고 옮길 때 어느 정도의 보폭으로 걷는지를 판단하는 데에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축을 만든 지식은 물론 지식의 폭을 넓히는 데에 장애가 되기는 하지만, 결국 그런 축이 없으면 창의성이 나올 수 없지 않을까? 물론 이런 생각은 책을 끝내고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