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하필 글쓰기인가
삶이 변하는 글쓰기(왜 하필 글쓰기인가)
- 과거 속에서 어슬렁대는 것은 유령이나 하는 짓이다. -
웨인 다이어
사람은 누구나 성장의 욕구가 있다. 지금보다는 더 나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자연이 우주의 섭리에 맞게 변화하듯 인간 역시 변화하는 과정이 자연스럽다.‘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그렇다’라고 답변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지’라는 말로 관계를 끝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사람은 당연히 변할 수 있다’라고 말을 하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나?’‘사람이 변한다는 게 어디 쉬운 줄 아나?’라고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 있다. 노력해도 변하지 않고,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관계에 지쳐‘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사람은 변하지 않아’라며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긴다. 사람의 모든 행동에는 이득이 있다. 그렇다면 변화하지 않으려는 데에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는 답은 지금 이대로 사는 게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편함의 굴레에 머물다가는 결국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로 삶을 마감해야 할지 모른다. 결혼 후 나는 남편에게 말했다. ‘당신이 ~ 만 고쳐준다면 나는 소원이 없겠어’라고 말이다. 나보다는 상대방이 변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상담실에는 다양한 갈등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온다. 아이가 문제가 있다며 데려오는 부모, 남편(아내) 때문에 도저히 못살겠다며 찾아오는 부부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모두들 상대방이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대방이 변할 리는 없다. 누군가를 변화시킬 힘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내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누구나 변화를 추구한다. 무언가를 꾸준히 배우고 성취하기를 원한다. 나의 삶을 달라지게 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배움과 동시에 삶에 적용하는 실천력이 필요하다. 지금 당장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탓하지 말고 자신에게 있는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면 충분하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성공한 사람도 우리와 똑같이 바쁘고 똑같이 한계를 느끼며 산다. 내 삶을 변화시키고 어제와 다른 내일을 살고 싶다면 현재 반복하고 있는 일상을 떨쳐내야 한다. 삶을 성장시키기 위한 방법은 다양하다. 여행, 독서, 취미생활, 자격증 공부 등 자기계발의 통로는 언제나 열려있다. 그 중에서 나는 글쓰기를 통한 변화, 성장, 자아실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글쓰기를 통한 삶의 변화는 바로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성장은 강의때문이 아니라 글쓰기 때문이었다.
매 학기 맡고 있는 대학의 수강과목에는 매주 과제가 있다. 학생들은 매주 강의를 듣고 나서 성찰일기를 작성하는 것이다. 개강 후 첫주, 둘째 주에는 학생들의 원성이 많다. 너무 귀찮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종강 때가 되면 성찰일지는 감사편지로 바뀌어져 있다. 날마다 강의를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서 글로 적는다는 것이 대학생들에게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매번 글쓰기 작업을 하는 이유는 형식적인 활동이 아니라 교수자와의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많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보면 개별적인 소통에 한계가 있다. 성찰일기를 통한 글쓰기 작업을 통해 학생 자신과 소통함은 물론 교수자와의 소통이 가능하다. 학생들의 성찰일기 내용에는 강의내용에서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자신에게 적용하고자 하는 내용, 해결되지 않은 어려움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학생 개개인의 글에 피드백을 남기는 시간으로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지만 그 시간이 주는 효용성이 있다. 대학수업만으로 채울 수 없는 배움과 감동의 한계를 글쓰기를 통해 보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기 초에 학생들의 글쓰기는 매우 형식적이다. 그러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진지해진다. 매주 세심하게 제공하는 피드백과 학생들 자신의 성찰의 글이 어우러져 하나의 문장처럼 연결되어 간다. 결국 나의 강의의 주된 목적은 글쓰기를 통한 진실한 만남이다. 이러한 만남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드디어 성장한다. 다음은 종강 때 학생이 보낸 성찰일지이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며 학생이 남긴 글쓰기의 효과다.
<추후 편지삽입>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
한국민속증후군의 하나인 ‘화병(火病)’은 울화병(鬱火病)‘이라는 단어의 준말이다. ’홧병(hwa-byung)‘은 정신질환분류체계인 DSM에 정식 등재된 질환으로 질투나 노여움 등 분노의 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나지만 이 감정을 풀지 못하여 화의 양상으로 폭발하게 되는 경우다. 사람의 마음에는 다양한 감정이 머문다. 부정적인 감정을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표현하지 못하면 다양한 증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통적 유교문화로 인한 영향,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감정을 억누르는 것에 익숙하다. 감정도 해소되지 않으면 습관이 된다. 글쓰기는 이러한 감정표현을 함에 있어서 도움이 된다. 글을 쓰게 되면 자신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게 되고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표현하는 법에 익숙해진다. 자주하게 되면 익숙해지듯이 익숙해지면 몸에 잘 맞는 옷처럼 자연스러워진다.
쓰기 시작하면 생기는 ‘통찰’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면 나와 연결되는 모든 것들이 글쓰기의 재료가 된다. 과거에는 그냥 지나쳤던 것들이 보이고, 들리지 않았던 것들이 들리게 된다. 지인들과 대화 중에도‘와! 저런 생각을 글로 옮기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에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미디어와 SNS의 영향으로 많은 글자에 노출이 되었음에도 오히려 사고력은 적어졌다. 기기의 보급으로 인한 당연한 현상이려니 생각되다가도 아쉽기만 하다. SNS에서 읽는 글자의 쓰는 양은 많지만 이러한 ‘글읽기’와 ‘글쓰기’는 인스턴트다. 눈으로 읽힌 글자는 소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생각 속에 머물지 못하고 인지로 끝나게 되는 셈이다. 생각으로 닿지 않은 글과 그 글의 끄트머리에 겨우 매달려 있는 글은 읽어도 공감이 되지 않고 공허하기만 할 뿐이다. 자극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은 디지털 세계는 인간을 ‘디지털 세상 안에 갇힌 가두리 양식장의 고기’로 만든 셈이다. 그 테두리 안에서만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안에만 존재해야 관계가 유지되는 슬픈 현실이다.
‘아하! 효과(Aha experience)’는 전에는 미처 이해되지 않았던 문제나 개념이 갑자기 이해되는 경험을 뜻하는 말이다. 다른 말로는‘유레카 효과(Eureka effect)’라고 한다. 이를 통찰력, 직관이라고도 하는데 통찰력은 예전에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갑자기 분명하고 명확해질 때의 과정을 나타내는 심리학적 용어이다. 글쓰기를 하게 되면 이런 통찰의 순간은 갑자기 나타난다. 해결되지 않아서 속 썩이던 문제가 매끄럽게 해결이 된다. 결국 사물을 바라보는 예리한 관찰력이 긍정적 영향을 불러온다. 이러한 관찰력은 긍정적인 시각을 통해 생겨난다. 대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거나 불평한다면 사고는 닫히게 된다. 이러한 통찰경험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막다른 골목까지 다다라야 한다. 결국 글쓰기에 대한 마음이 진심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통찰경험에 이르는 일은 매우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작업이다. 통찰 능력은 고정적인 틀 안에 갇힌 상태로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노력을 해 낸 사람은‘아하! 효과’를 경험하여 통찰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통찰력은 글쓰기를 통해 폭넓고 유연한 긍정적 사고의 확장으로 이어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글쓰기의 힘이다.
왜 하필 글쓰기인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 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지 않아도 하루도 빠짐없이 우리는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라는 욕심은 금물이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종속된다면 며칠 못가서 글쓰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오랫동안 글쓰기가 당신과 친구로 남기 위해서는 힘을 빼야 한다. 내면 안에서 본능적으로 끌어 오르는 글쓰기의 본능을 마주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을 잘 표현해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언어를 창조하고자 한다. 이러한 창조능력을 좆아 갈 때 지속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다. 글을 쓰고 나서 타인에게 보여주는 것을 겁내지 말자.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 내 사유의 능력이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를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깊이 숙고함으로써 나는 ‘가장 나답게’존재할 수 있다. 글쓰기를 하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루틴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시간을 찾고 그 시간만큼은 포기하지 말고 지켜내야 한다. 글쓰기에 집중하다보면 일상생활에 질서가 잡힌다. 굳이 잡지 않아도 되는 약속, 의미 없는 만남, 무절제한 일정들이 정리된다. 글쓰기를 하다 보면 스토리의 배열이 질서정연하게 구성되는데 이를 바탕으로 타인과의 대화가 매끄럽게 정리되는 효과가 있다. 바로 주제의 맥락을 정확히 짚을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가끔 대화를 나누다가 ‘배가 산으로 간다’처럼 대화의 흐름이 끊기고 엉뚱한 주제로 넘어가다가 결국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글쓰기도 산만하다. 처음으로 글을 쓰기를 시작하는 사람은 막연하게 느껴져서 시도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자신이 관심 가는 분야의 책을 한 권 선택해서 단락별로 주제어를 선택해 보아도 좋다. 주제어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마음에 와 닿는 단어나 문장을 선택해서 그 문장을 활용하여 브레인스토밍을 하듯 뻗어나가는 글쓰기를 해도 좋다. 창피해 하지 말고 글쓰기를 한 후에는 다른 사람과 교류하며 의견을 주고받으면 도움이 된다. 수정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더욱 더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의 핵심이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다. 한 번에 완성시키기 보다는 지속적으로 완성해나가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사고의 유연성과도 비슷하다. 또한 겸손한 삶의 태도와도 닮았다. 우리의 삶이 완벽하지 않듯 글도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끊임없이 글쓰기를 하는 과정을 통해 표현되지 않은 나를 드러내고 남들과는 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된다. 나만이 창조할 수 있는 언어들을 통해 세상과 연결이 되는 기쁨을 누려보자.
내 글은 나를 닮았다.
나의 인생을 망치는 것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내가 싫어하는 야채, 싫어하는 스쿼트 운동, 싫어하는 공부, 싫어하는 독서와 글쓰기가 당신을 망치는가? 내가 싫어하는 것들은 절대 나를 망치지 않는다. 글쓰기는 누구에게나 권해도 좋은 선물이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창조물을 통해 유능감을 느낄 수 있으며 삶을 기름지게 한다. 단, 당신이 글쓰기의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는 조건에 한해서 그렇다. 당신은 꾸준히 성장할 것이다. 그러니 당신을 닮은 글쓰기를 절대 멈추지 말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