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자기 계발서에 빠져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보다 잘 난 사람, 나보다 성공한 사람, 나보다 똑똑한 사람, 내가 보기에 멋진 인생을 산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들처럼 되고 싶었고 그들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싶었다. 알면 실천하면 될 일이고 실천하면 그들처럼 될 것 같았다. 자기 계발 서적을 한 권 두 권 읽어낼 때마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그었고 한동안 가슴에 품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러던 날이 한 동안 흐르고 나니 자기계발서 안에 써진 내용이 그들이 경험한 것 안에서 찾아낸 것들이라서 나와는 거리감 있는 내용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졌고 같은 음식을 먹는 것처럼 점점 물리기 시작했다.
'왜 이러지? 예전처럼 감흥이 없어'
무엇이 변한 걸까? 한참을 그 마음에 머물렀다. 자기 계발서 중에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을 보면 대부분 힘든 역경을 이겨내고 드디어 성공하고 삶의 변화를 이뤄낸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다. 그러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첫 장 어느 부분까지는 '아 나도 저렇게 한 번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책장을 덮고 한동안 시간이 흐른 다음부터는 '나는 왜 저 사람처럼 안 되는 거지?'라는 자괴감을 경험하게 된다.
그때 내가 깨달은 것은 책 속의 주인공들과 내가 같은 점은 무엇이고 다른 점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었다. 그들이 산 삶의 이야기를 내가 내 인생에서 다시 쓸 이유가 없고 나는 오직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필터링 없이 적용하기보다는 내 이야기와 결이 비슷한 부분은 어디일까를 찾는 데 집중했다. 한 권의 책 전체가 내게 감동을 준다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책 한 권 중에 내 삶의 이야기에 초대될 감동의 한 문장이 있다면 그게 어디인가.
지금은 내 관심분야가 '마음'인지라 사람들의 마음을 다루는 심리에세이에 관한 책들을 자주 찾아 읽곤 한다.
읽다 보면 '마음을 편안히 가져라. 있는 그대로 자신을 수용해라. 지금 자신의 모습에 만족해라' 등의 아름다운 말들이 풍년이다. '누가 모르나? 그런데 잘 안되는데..... '라고 항변하고 싶을 때도 많다. 나 또한 그 말들이 옳다고 여기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메시지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아직은 내 삶에 녹아내리지 못한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좀 더 잘 스며들게 하기 위한 전 단계가 필요하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그 무엇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방법을 몰라서일까? 그것도 아니면 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그마저도 착각하고 있는 것일까?
어느 방송에서 들은 것인지 기억은 흐릿하지만 다이어트라는 주제로 의사들의 조언들이 쏟아졌다. 그중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다. "사람들은 평생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결국 '다이어트를 해야지'라는 다짐만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다이어트 중독도 아니다. 결국 다이어트를 시작해야지라는 각오 중독 속에 있다". 맞는 말이다. 다이어터들의 말과 마음은 다이어트를 외치고 있지만 그들의 행동은 결코 다이어트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러면서 '나는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라며 나름 열심히 다이어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위로한다. 이러한 억지스러운 위로는 다이어트의 적이다. 다이어트는 하지 않으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다는 착각만 일으킬 뿐이다.
내게는 매년 몇 주간 반복되는 중요한 일정이 있다. 그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온다. 작년에는 어찌어찌해서 잘 버텨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올해 다시 그 일을 시작하려 하니 심한 저항이 몰려왔다. 떨어진 사기를 올리기 위한 전략으로는 '작년에도 잘했는데 뭘 그래' '넌 잘할 수 있어'라는 말이다. 그런 말이 나에게는 응급 처방으로 익숙하고 그렇게 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낮아진 텐션을 올려놓기에 적합할 때도 많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갈수록 저항은 심해졌고 할 일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해야 할 일들은 과제처럼 느껴져서 흥미가 사라졌고 마지못해 해내는 수동적인 하루가 계속되었다. 바로 잡아야 했다. 더 이상 이 문제를 방치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질 즈음 '넌 잘 해낼 거야'라는 그런 형식적인 말은 더 이상 내가 듣고 싶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듣고 싶은 말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질문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질문을 하고 자기 전에도, 길을 걸으면서도 질문을 했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차라리 하지 말까? 아니지 약속이 된 거니까 해내야지.... 나와 내 속 마음은 끊임없는 질문을 주고받았다.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마음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말을 한다.
느껴지는 감정을 피하지 마세요
느껴지지 않은 척 애쓰지 마세요
감정이라는 것은 잘 조절하면 된다고 말한다. 내가 해내야 하는 업무로 인해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었다. 그렇다면 이 두려움을 어떻게 하면 조절할 수 있을까? 감정을 조절하려면 모른 척하지 말고 도망가지 말고 그 느낌을 말로 표현해 보는 방법이 좋다고 한다. 하나씩 실행해 보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는 힘들어 죽겠는데 '할 수 있어'라는 말로 다그치는 거 말고 또 다른 무엇이 좋을까. 작년에는 몰랐다. 올해 그 일을 다시 준비하면서 이렇게 저항이 심하게 올라올 줄은. 그래서 '아차' 싶었다. 내가 놓친 게 있구나. 내가 내 감정을 알아봐 주지 않고 훌쩍 건너 띄어 넘었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 아 잘 끝났다'라고 덮어 버렸구나. 작년에 그 일을 하면서 분명히 힘들었는데, 애썼는데, 해내느라 죽을 고생 했는데...... 그 마음을 알아봐 주지 않고 묻어버렸구나.
나는 천천히 나에게 해 줄 말을 준비했다. 어떻게 하면 가장 내가 느꼈던 감정에 꼭 맞는 말을 해줄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그 일을 또다시 잘해 낼 수 있을지 많이 걱정이 돼. 잘 못하게 되면 나는 창피함을 느낄 것이고 나를 신뢰했던 사람들이 나에게 실망감을 느낄까 봐 두려워. 그래서 용기가 안 나고 그만두고 싶을 만큼 소심해졌어. 이런 마음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약해빠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말도 잘 못하겠고 겁이 나. 무엇인가를 잘 해내려고 할 때는 누구나 두려움이 생기고 걱정이 생기는 것은 당연해. 나도 그래'
나에게 있는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해 보았다. 여러 번 이 말을 나에게 해주었고 한참을 머무르며 충분히 소화가 될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느껴지는 감정을 충분히 찾아보았고 언어로 표현해 보니 큰 숨이 쉬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는 몸의 반응이 나왔다. 숨이 막혀서 호흡이 잘 안 되었던 모양이다. 마음이 막혀서 제대로 잘 흘러가지 못하고 걸려있었던 모양이다. 내 감정을 구석구석 찾아서 제대로 알아주고 구체적인 말로 표현해 준다면 자신에게 충분한 위로자가 될 수 있음을 알았다. 누군가가 나에게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시간과 공간이 여의치 않다면 사용해 보기 바란다. 나처럼 누군가에게 위로를 청하는 것이 서툰 사람은 시도해 보라. 누군가를 찾아 떠나지 않아도 되니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한 여성이 상담실에 왔다. 그녀가 상담받기를 원하는 이유는 예전의 열심히 살았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너무 나태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서 불안하다 했다. 이대로 살면 뭔가 안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괴롭다는 것이다. 한참을 듣고 보니 그녀는 그동안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았고 힘든 고비를 잘 이겨냈으며 앞으로도 잘 이겨낼 것 같았다. 중고등학교 시절에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고 치열하게 헤쳐 나갔으며 이러한 소중한 경험은 앞으로 그녀의 삶에 자양분이 될게 분명했다. 그녀의 삶은 인정받을만했다. 그녀 스스로도 '저도 그런 거 같아요. 저도 제가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잘 살 거는 같아요. 근데 문제는 지금이에요. 지금 저는 너무 나태해요. 하루 대부분을 아무것도 안 하고 보낼 때도 많고 쓸데없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놀아요'.
숨이 턱까지 차오르게 열심히 살았던 자신만이 진짜 자기라고 생각했다. 현재 자신이 느끼는 이 불안감이 싫어서 빨리 떼어버리고 싶다 말했다. 상담을 진행하면서 그녀는 '열심히 살아온 모습만이 가치 있다고 느끼고 있었구나'를 알게 되었다. 잠시 휴식을 가질 수 있고, 자신도 놀 수 있는 사람이고, 놀아도 될 만큼 열심히 살아온 사람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주어진 이 휴식기를 충분히 누리고 열심히 걷고 뛰어야 할 때 다시 일어서면 되었다. 열심히 살았던 나와 휴식기를 누리고 있는 내가 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그녀는 진심으로 휴식기를 누리겠노라 했다.
감정은 내가 어떠한 사람인지 알게 해 주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알려 준다. 자신이 위험한 상황인지, 도망가야 하는지, 아니면 좀 더 참아서 버텨야 하는지도 알려준다. 자신을 보호하며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천이 될 수 있다. 감정을 존중하면 자신에게 주는 삶의 단서를 찾을 수 있다. 닥쳐올 일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내가 알아차린 단서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천천히 해보는 것이다. 생각해 보니 방대한 자료를 다시 세팅해야 하는 것이 스트레스였다. 내가 다룰 수 있을 만큼만 자료를 재구성하는 것은 할만해 보였다. 두려움과 걱정에 움직이지 않았던 내 몸은 작게나마 움직임일 수 있게 되었다. 큰 덩어리를 잘게 부수고 내가 들 수 있는 것들 위주로 다룬다면 두려움은 한결 가벼워질 것이다. 감정을 안다고 해서 뭔가가 마술처럼 바뀌고 달라진다는 오해는 말자. 감정을 알아차리면서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보이는 것들을 내가 다룰 수 있는 만큼 떼어내어 시작하면 된다. 안 보이면 보일 때까지 질문에 집중해 보자.
감정이 느껴지면 이제는 묻자. 그리고 그 물음에 성실히 답하라.
'두려움, 걱정, 우울....... 불안아~. 지금 나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거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