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에 대한 헌신

- 우리가 느끼는 모든 감정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에요

by 한꽂쌤

우리는 흔히 '느낌이 둔하다' '마음이 둔하다'라는 말을 사용하곤 한다. 제대로 잘 느껴져야 하는데 뭔가 가로막혀 있어서 무슨 느낌인지, 어떤 마음인지 잘 가늠이 안될 때 둔하다는 단어를 사용한다. 몸에도 감촉이라는 것이 있어서 무뎌지면 '감각이 무뎌진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마음이라는 것도 느껴지지 않으면 감정접촉이 제대로 안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감정에 대한 주제로 다뤄진 정보를 접하다 보면 '감정은 좋고 나쁨이 없다'는 말을 한다. 좋고 나쁨은 없다는데 왜 이렇게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를 구분하느라 애쓰는 걸까. 감정을 이야기할 때 조심해야 할 부분은 감정이라는 것에 어떠한 평가와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가 부담 없이 느껴도 되는 '허락된 감정'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것들이다. 그에 반해 부정적인 것들은 숨겨야 하고 느끼지 않은 척해야 하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 여긴다. 분명히 느껴지는대도 없는 척, 아닌 척을 잘해야 칭찬받는다. 다른 사람을 미워해서도 안되고, 시기를 해서도 안되며 화나는 마음을 표현해서는 더더욱 안된다. 이를 어길 때는 왠지 미성숙하고 나쁜 사람이라 여긴다.


'감정적이다'라는 단어는 왠지 나약한 사람들의 것으로 구분한다. 감정을 억압하여 강인하고 뚝심 있는 모습으로 서 있어야 괜찮은 사람, 젠틀한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그러나 감정은 본디 불쾌와 유쾌만 있을 뿐 좋고 나쁨이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양한 감정을 골고루 가지고 있는데 불쾌한 감정을 훨씬 자주 접하는 것 같다. 그러니 불쾌한 감정을 억압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는 것은 자연스러움에 역행하는 행위이다.


감정은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위험에 처했거나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방향키를 제공해 준다. 감정은 내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어떨 때 편안해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기 위한 친절한 센서가 되어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누구임을 알고 위험한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


자신의 삶이 혼란스럽거나 방향을 어디로 잡아야 할지 난감하다면 자신에 대한 정체성이 제대로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정체성을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감정의 성숙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 어린아이들은 '나 화났어'라는 표현을 스스럼없이 한다. 또한 서운하고, 속상하고 두렵고 무서우며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표현을 통해 자아를 탄탄하게 형성해 가고 자신을 지키내며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원만하게 이뤄나간다.


노자는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에 산다고 말하지 않던가. 주변에서 가장 흔히 접할 수 있는 우울과 불안이라는 감정은 현재 우리가 자신의 삶에 불만족하고 있고 불편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우울한 사람은 조금 더 미래로, 불안한 사람은 좀 더 과거로 그 시점을 옮겨야 삶의 고단함이 덜하다. 그러나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오히려 그 감정에 붙잡히기 십상이다. 이처럼 감정 앞에 부정적이라는 이름을 붙여 그 감정을 가까이하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여긴다면 오히려 그 상황은 무섭고 두려워질 뿐이다. 불쾌한 감정이 느껴졌다면 이 또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려는 것이니 밀어내지 말자. 물론 불쾌한 감정이 우리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그 느낌 만으로도 기분이 찜찜하고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나서 일을 그르치게 될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그러나 걱정은 잠시 내려놓아도 좋다. 감정은 불쾌하든 유쾌하든 그 감정 자체만으로는 우리의 삶에 훼방을 놓지는 않으니 말이다. 감정은 자신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부족한지를 알려주는 신호일뿐이다.


긍정심리학의 권위자인 마틴 셀리그먼 교수는 행복을 이루는 공식 중 하나를 긍정적인 정서라고 하였다. 행복의 기원이라는 책에서 서은국 교수는 행복의 핵심은 부정적 정서에 비해 긍정적 정서 경험을 일상에서 더 자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부정적 정서를 더 많이 경험한다고 해서 불행의 구렁텅이로 떨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행복감이라는 것에는 부정적 정서를 아예 없애야 한다거나 느끼지 말아야 하는 감정으로 선긋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들이 그토록 염원하는 행복감은 부정적인 감정을 없애버렸을 때 느끼는 정서가 아니다. 신기하게도 '죄적의 스트레스 경험'을 기꺼이 하고 나서야 만족감과 함께 찾아오는 것이다. 가파른 산을 오르기 위해서 흘린 땀과 거친 호흡은 산 정상에서 누릴 수 있는 뿌듯함과 상쾌함으로 돌아온다. 시험을 합격하기 위해서는 수면시간을 줄여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놀 때 책상에 앉아있어야 고단함을 버텨내야 한다. 이러한 스트레스를 견디고 나서야 성취감이 주는 만족감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쉽게 쥔 바람은 쉽게 빠져나간다. 부정적인 느낌을 버텨내지 못한 긍정적 느낌은 단언컨대 오래가지 않는다.


서울대 심리학과 민경환 교수팀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한국어 감정단어가 대략 437개라 하였다. 그중에 72%는 불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로 유쾌한 감정을 표현하는 단어에 비해 월등히 높은 수치이다. 연구에 의하면 '홀가분하다' '행복하다' '사랑스럽다' '반갑다'처럼 쾌(快)에 대한 감정단어는 전체 중에 30%가 안 되는 데 비해 '참담하다' '한 맺히다' '역겹다' 등 불쾌를 나타내는 단어는 70% 이상이라고 하였다. 유쾌한 감정단어 중에 가장 최고의 단어로는 '홀가분하다'이다. '홀가분하다'는 시험이 끝났을 때,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 사용하는데 자신을 괴롭혔던 무엇인가가 해결되어 몸과 마음까지 깔끔하게 정리되는 듯한 기분일 것이다.


홀가분하다는 단어가 쾌(快)한 감정단어 중 으뜸인 이유는 어느 정도의 고통과 절망 이후에 오는 행복이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오고, 비가 온 후에 땅이 굳듯이 우리가 원하는 긍정적인 감정을 얻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정서에 대한 오해를 먼저 버려야 할 것이다. 감정은 우리 마음 깊숙이 숨겨져 있는 욕구를 알려주는 신호등이다. 보행자가 길을 건널 때는 초록불이 켜지고, 차량이 지나가야 할 때는 잠시 기다리라는 빨간 불이 켜진다. 이와 같이 감정도 동일하다. 우리의 내면에 초록불이 아니라 빨간불이 켜졌다면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건드려졌는지 그 의미를 찾아보면 된다.


가끔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해 싸움이 되고 갈등관계로 확장되는 경우는 대부분 필요한 자신의 욕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이로 인한 감정 또한 적절히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에 집중하고 알아차림 하는 것이 쉽지 않을 때는 잠시 집중해도 좋다. 감정에 대한 충분한 알아차림이 가능할수록 자신에 대한 깊은 공감이 가능하다.


감정은 알아서 발달하거나 저절로 성숙되지 않는다. 자신이 실제로 경험하여야 한다. 어떠한 감정이든 수용되고 인정받게 되면 그다음 감정으로 옮겨가게 마련이다. 이러한 감정은 자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좀 더 선명하게 알려주는 길잡이가 된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잘못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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