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모든 꽃들이 흔들리며 피어나듯이

살아있는 존재의 흔들림은 자연스러우며 아름다운 몸짓이다.

by 한꽂쌤

가끔 문자로 소식을 전해오는 지인이 있다. 문자는 특별한 내용은 없이 '너무 힘들다'는 일관된 글자로 채워져 있다. 가끔은 힘들다는 단어가 외롭다는 단어로 옮겨가기도 하지만 사는 게 고단한지 짧은 문장에 힘든 마음을 가득 담아 보내고는 한동안 말이 없다. 같은 단어를 매번 듣고 딱히 해줄 것도 없는 나는 하염없이 문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것이 전부다. 지인의 힘듦이 나에게도 전염되는 날이 있다. 삶의 무게가 왠지 무겁게 느껴져서 한없이 처질 때가 그런 날이다.


'살아가는 게 너무 쉬워', '너무 살만해서 신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삶은 고단하고 고단하고 또 고단하기만 한 것만 같다. 지금 내가 하려는 일이 시원찮고, 앞으로 가려는 길은 끝이 안보이며 무슨 선택을 해도 후회할 것만 같은 흔들림의 연속이다. 삶이 흔들림의 연속이라면 흔들림 안에는 이토록 지독한 무거움만 가득 차 있는 것일까.


흔들림에 대한 의미를 아름답게 빚어낸 시가 있다. 바로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다.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이 시를 읽고 나면 흔들린다는 것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이 시를 끌어내기 위해서 시인은 꽃 하나를 보더라도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보았을 것이다. 흔들리면서 줄기를 세우고 흔들리면서 사랑을 한다는 시의 글귀처럼 우리의 인생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살아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사랑하기에 흔들리는 것이다. 흔들림 없이 살아간다면 삶의 의미를 제대로 알기 힘들고 흔들림 없는 관계는 감동이 없고 감사가 없다.


따스한 햇볕이 계속 비출 것 같다가도 흐리고, 부드러운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이내 무서운 태풍이 되기도 한다. 고요한 날인가 싶으면 번개가 치고, 이제 좀 쉬어보나 했을 때 세찬 장대비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은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에게 주어지는 자연의 이치이다. 살아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숙명 같은 것이다.


흔들린다는 것은 왠지 부정적인 느낌을 준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삶 때문에 사람들은 힘들어한다. 어쩌면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인데도 말이다. 우리의 삶은 원래 그런 것인데도 그 사실을 잊을 때가 많다. 그러나 잊어버림의 대가는 혹독하다. 나 자신이 싫고 다른 사람이 불편하고 세상이 원망스럽게 느껴진다.


흔들림이 많은 환경일수록 나무는 깊게 뿌리를 내리고, 식물은 뿌리를 넓게 확장한다. 바람 한 점 없고 충분한 물과 영양분이 주어진 흙에서 자라는 식물은 뿌리가 깊을 이유가 없다. 지금 당신이 흔들리고 있는 존재라면 '아 지금 내가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할 때이구나'라는 메시지가 온 것이다. 그 메시지를 거부하거나 모른 채 한다면 나약한 나무로 설 수밖에 없다. 흔들림을 충분히 겪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삶이 깊어지고 단단해질 것이다.


30대를 앞둔 그는 고민이 많은 눈치다. 도대체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다며 불안해한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서 선택했는데 왠지 미래가 보이지 않고 다른 선택을 하자니 또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한다. 그의 눈빛은 한없이 흔들리고 있고 그의 몸짓도 한없이 불안정하다. 그는 뭔가 그의 삶에 있어서 번듯한 꽃을 피우고 싶어 했고 그 꽃은 다른 누군가가 봤을 때 화려하고 이뻐야 했다. 그는 자신이 그러한 꽃을 피워내지 못할까 봐 우울하고 낙심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예쁜 꽃을 피우려다가는 본연의 꽃대를 제대로 세우지 못한다. 꽃대와 꽃이 연결되어야 하는데 꽃대와 따로 노는 꽃을 갖기 위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꽃도 피지 못할뿐더러 다른 사람들 눈에 차는 꽃은 어디에도 없다. 왜냐면 다른 사람들이 환호하는 꽃은 다른 사람의 숫자만큼이나 많기 때문이다. 적당한 흔들림이 있을 때 우리의 삶은 꺾이지 않는다. 꺾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때 오히려 위태롭고 뿌리가 뽑힐 위험에 처한다. 적절한 휘어짐을 허락한다는 것은 절대 비굴한 것도 아니고 절대 나약한 것도 아니다. 산과 들에 있는 살아있는 것들은 흔들리고 젖으면서 온몸으로 생명을 이뤄낸다. 사람도 자연이다. 삶에는 흔들림이 오다가 잠시 머무르기도 하고 흠뻑 젖어 무겁기도 하다가 이내 말라 가벼워질 때도 온다.


한동안 "꽃길만 걸으세요"라는 말이 유행을 했었다. 지금도 가끔 덕담을 해주는 인사말로 사용되는 것 같다. 꽃길이라는 것만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꽃향기가 맡아지는 것 같다. 늘 그랬으면 좋겠다. 꽃길이 펼쳐지고 그 길만 걷다가 생을 마감하면 좋겠다. 누구나 바라는 이런 마음을 담은 덕담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우리에게 꽃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흔들림에 대해 억지스럽게 미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흔들리고 있다면 그 또한 뿌리를 온전히 보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 적절한 흔들림은 삶을 위태롭게까지 하지는 않는다. 그러니 겁먹을 필요도 없고, 흔들리지 않으려고 힘을 줄 필요도 없다. 흔들리는 사이 뿌리는 깊어지고 뿌리는 더 넓게 뻗어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살아있는 것은 다 흔들린다. 생명이 있기 때문에 흔들리고, 휘고, 다시 꺾이는 듯하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끊임없는 흔들림은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존재자체이다. 우리는 그저 흔들릴 때 기꺼이 흔들리고 머무름이 허락될 때 조용히 머물면 된다. 흔들림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생명의 아름다운 몸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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