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수용은 체념과 달라요

있는 그대로

by 한꽂쌤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맞닥뜨릴 때 흔히들 '그냥 받아들여'라고 하는 위로 아닌 위로의 말을 건넬 때가 많이 있다.


해결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어서....

마음이라도 좀 편하게....


받아들이면 일단 마음에 무거웠던 문제를 훌훌 털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그러나 받아들인다는 것이 그리 단순하게 되는 것은 아니기에 '어디 그게 쉬워? 쉬우면 진즉 했지'라는 볼멘소리가 튀어나가곤 한다. 이러한 반응은 '받아들인다'의 의미를 매우 제한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대화이다. 어떤 경우에는 '받아들인다'의 의미를 '단념하다' '체념하다' '포기하다'의 패배적인 뜻으로 착각하는 것 같다. 받아들인다의 의미가 자기 수용과 뜻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자기 수용은 결코 자기 실패의 의미랑은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여기까지 밖에 안 되는 인간이야'라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은 자기 수용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수용은 어떠한 부정이나, 어떠한 긍정의 의미가 아니다. 자기 수용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자기 자신의 감정 따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는 상태'라고 한다. 이러한 자기 수용은 상담에 있어서도 성공의 필요조건이 되기 때문에 중요한 주제가 될 때가 많다.


있는 그대로의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판단하거나 평가하고 분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의 부족함이나 약한 조건을 포함하여 심리 내적으로 일어나는 정서적인 부분 즉, 불안, 두려움, 공포까지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에서 자기 수용을 이렇게 다루었다. 자기 수용이라는 것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며, 결국 이 말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부족하다면 부족한 나를 받아들이면서 '그러함에도 나는 나아가야 할 길을 향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에 대한 방법을 찾는 것이다. 자기 수용은 '이러한 나'를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지나치게 긴장하고 손에 땀이 나서 발표를 망칠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한다면 '나는 사람들 앞에서 벌벌 떠는 나약한 사람이구나'라는 것을 수용하라는 게 아니다. 이러한 가짜수용은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본다기보다는 해석이나 평가위주로 보는 마음의 결과이다. 진정한 자기 수용이라면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때 지나치게 떨고 긴장하느라 땀이 날 때가 있지'라는 사실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내 마음대로 해석해 놓고는 그 해석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 수용이 아니라는 말이다. 자기 수용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는 형태'를 변형시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애써 자기 수용을 노력하려다가 오히려 자신을 비난하거나 비틀어서 받아들이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살다 보면 다양한 일이 생기고 뜻밖의 상황을 마주해야 한다.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고통스럽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외적인 조건들이 자신을 지속적인 어려움 속에 가둬둘 수는 없다. 스스로 생각할 때 어떤 일들이나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오랫동안 고통스럽다면 그 이유는 따로 있다. 어려움을 초래하는 외부 환경적 조건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그 조건을 바라보는 주관적인 해석 때문에 힘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은 우리를 고통 속에 가둘 수 없다. 언제든 우리가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고통에서 벗어나 훨씬 더 가볍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지나치게 긍정적일 이유도, 지나치게 부정적일 이유도 없다.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을 나눌 필요도 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진실만 바라보자. 긍정적이라는 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를 진정성 있게 볼 수 있는 눈을 의미한다. 지나치게 낙관적인 사람이 부담스러운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자신을 향한 지나친 겸손은 자기 비난이 된다. '난 왜 이것밖에 못할까 더 했었어야지'라는 부정적인 이야기가 내면에서 들린다면 그 이야기와 대화를 시작해 보자.


내게는 정말 못하는 것 밖에 없는 걸까

정말로 내가 그런 사람일까

정말 그럴까


사람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조건이 좀 더 나아지면 가능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해보면 거의 모든 사람들의 '그렇다'라고 답변을 한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더 좋은 조건을 갖추면 당연히 자신이 더 사랑스럽게 여겨진다는 것이다. 반대로 질문을 해보자. '당신의 조건이 지금보다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당신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답변은 '글쎄요... 아니요'라고 답변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지금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한다면 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조건적이라는 것은 번듯한 직장, 높은 연봉, 친화적인 성격, 매력 있는 재능을 갖추었을 때 사랑받을 수 있고 사랑할만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매김은 자신에 대한 불만족과 타인에 대한 불평을 낳고야 만다.


조건이라는 것은 한순간에 바꿀 수가 없고 바꿔질 가능성이 낮다. 온 인생을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정말 슬픈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조건을 바꾸지 않고도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이 있다. 주어진 환경이나 조건은 전혀 달라지지 않더라도 현재 자신이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라도 감사할 수 있다면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가치매김이 시작될 수 있다.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

나에게 쏟아지는 햇볕 한 줌

나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는 주변의 산책로


애쓰지 않고,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이미 주어진 것들을 감사하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거창한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어도 있는 그대로의 나는 이대로 좋은 것이 많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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