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불공평함 속에 있는 공평함

by 한꽂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 공부를 시작한 나는 20대의 나이에 대학원에 다니는 미혼의 학생들을 보면 부러웠었다.


"쟤네들은 참 좋겠다. 부모님이 주는 학비로 저 나이에 학교만 다녀도 되고 복도 많다"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그들도 나름 학비를 버느라 고군분투할 수도 있고 다른 고민이 있어 힘들 수도 있겠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그들의 조건이 참으로 부러웠었다.


내가 가진 조건은 안 좋은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가진 조건은 왠지 좋아 보이고 멋있어 보이고 쉬워 보인다. 이런 기분이 들 때면 삶이 참 불공평해 보이고 부조리해 보이기까지 하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내 부모님과 내 양육환경과 조건들이 이에 해당된다. 인생은 대부분 내가 선택하지 않은 것들과 더불어 시작된다.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나라를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있는데 계절을 선택해서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특히 나의 경우는 추위를 잘 타는데 선택할 수만 있었다면 겨울에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추위가 시작되는 초겨울에 태어나고 말았다.


모든 사람의 조건은 같다. 선택할 수 없는 불공평한 조건으로 삶이 시작되었고 그 삶은 누구나 공평하게 제공되는 것이다. 이러한 조건은 사람이든 자연이든 가릴 것 없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다 같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금의 조건들 중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을 그대로 가지려고 선택을 할지 아니면 더 좋은 것들을 가지려고 선택을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아마도 지금의 조건보다 더 나은 조건들을 택하려고 노력하려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러한 선택의 기회는 태어날 때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불공평함이다. 이러한 불공평함이 투정이 되면 불만이 되어 당신의 발목을 잡게 된다. 그러나 어차피 삶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조건대로 태어나며 살아가야 하는 게 인생이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점은 이러한 조건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조건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신의 축복인가. 그 누구에게도 거스르지 않는 공평한 조건 말이다.


우리가 태어난 인생의 조건은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조건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이후의 삶은 이 조건을 당신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선택지가 널려있다.


씨앗이 싹이 트려면 온도가 알맞고 물만 있다면 포장도로나, 바위틈, 돌 벽 사이에서도 싹을 틔워 생명임을 증명해내지 않던가. 어디에 뿌려졌다고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생명의 자원들을 끌어모아서 뿌리를 내리기 위해 애쓰고 꽃을 피워 씨를 퍼뜨리지 않던가. 이들은 자신들의 불공평한 조건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 어떻게 이래요. 왜 이렇게 우리 집만 이렇게 안 좋은 일이 생겨요.

-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가 내가 뭔가 새롭게 하려고 할 때마다 못하게 막는 거 같아요

- 삶이 너무 가혹해요, 너무 불공평해요


매번 그는 상담실에 와서 비통한 마음을 쏟아냈다. 그의 무겁고 버거운 삶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섣불리 무슨 말을 하기가 어렵다. 그도 힘을 내고 싶지만 극도로 한계에 부딪히고 연속적으로 어려움에 노출되다 보니 자신이 처한 조건을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삶이 원망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조건이 더 낫기를 바라고, 더 나은 조건을 가진 사람이 부럽기만 할 것이다. 그러다가 더 심해지면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고 삶의 의미가 덧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조건이라면 원망하거나 탓한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 뼈아픈 얘기지만 더 나락으로 빠지는 길이다. 우선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이다. 그런 다음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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