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 자아상

조금 더 돋보이고 싶어요

by 한꽂쌤

30대 초반에 남편을 만나 결혼한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요'라며 상담을 신청하였다. 예쁜 아이도 얻었고 이만하면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살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남편이 주는 사랑은 늘 목마르다고 이야기한다. 남편을 결혼상대로 선택한 이유가 '이 사람이면 나에게 충분한 사랑을 줄 수 있겠구나'하는 확신이 들어서라고 했다. 언제나 자신을 사랑해줄 사람을 선택한 그녀는 남편의 조건적 사랑때문에 실망하여 괴로워한다.


우리는 흔히 '엄마는 아이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해줘야 한다'라고 말한다. 그 사랑은 아주 당연히 보이고 전혀 이상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응당 그래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고 그런 사랑을 원한다. 나 또한 그런 사랑을 받고 싶고 나의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꺼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자면 그러한 사랑이 과연 존재할지 의문스럽다. 현실에서는 녹록지 않은 것이 무조건적인 사랑의 덫이다. 무조건적으로 자녀를 사랑하거나 타인을 사랑하거나 하는 일이 쉽게 이루어질 만한 실현가능한 일일까?


자녀의 위치에서도 생각해보아도 나의 부모는 그런 사랑을 내게 주지 못한 거 같다. 엄마가 된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도 단언컨데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녀에게 줄 자신이 없다. 다만, 그러하고 싶은 간절한 소망은 가지고 있을 뿐이다. 무조건 적인 사랑은 인간으로서는 지켜내기 힘든 사랑일 수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조건적인 사랑을 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 않을까? 신만이 줄 수 있는 사랑을, 신적인 존재에게만 받을 수 있는 사랑을 갈구하며 우리의 관계를 실망하며 괴롭히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부모의 사랑은 다른 사랑의 관계보다는 훨씬 무한한 사랑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사랑이 당연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정도는 상대적인 면이 있다.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조건적인 사랑이 그 안에 포함된다는 사실이 더 신빙성이 있을 듯하다.


남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그녀의 결혼생활은 위태로웠다. 그녀에게 만족감을 주지 못했으며 결혼을 지속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불안이 엄습할 때도 있다. 남편의 변치 않은 사랑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녀의 결혼생활은 공허하고 외롭기 그지없기 때문이었다. 상담을 지속해가면서 그녀가 편해지는 순간이 왔다.


" 더 이상 당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대상은 없어요"


그녀의 눈빛은 흔들렸고 잠시 절망에 빠지는 듯했다. 더 이상 남편이 자신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대상으로 남편을 이상화시킨 것은 그녀 자신임을 깨달았다.


" 아.... 내가 그렇게 만든 거군요. 내가 그런 남편이기를 기대하고 그렇게 해주기를 바래왔던 거군요 "


다음 상담시간에 만난 그녀는 한층 담담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 담담함 속에는 조금의 성숙함이 묻어 있었다. 더 이상 남편은 자신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없는 존재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부모에게 받지 못했던 자신이 남편에게 요구해왔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현실을 받아들였고 받아들인 대가로 한층 더 가벼워진 마음을 얻었다. 그녀는 오랫동안 남편에게 '자신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유일한 한 사람'으로 남아있기를 바래왔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그녀의 선택은 정확히 빗나갔으며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지배한 결혼생활이 행복했을 리 없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더 이상 남편이 자신에게 줄 수 없는 사랑을 갈구하느라 하루를 낭비하지 않겠노라고 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한 자신을 안쓰럽게 여겼고 충분히 안아줄 수 있었던 그녀는 남편의 사랑에 집착하려는 자신을 드디어 떠나보낼 수 있었다.


조금만 더 열심히 공부하면 내가 기쁠 텐데

조금만 더 부지런하면 더 이쁠 텐데

다른 집 아이들처럼 뭔가 특별한 결과를 내준다면 내가 더 자랑스러워할 텐데


엄마인 내가 품었던 마음이다. 이 마음은 무조건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이 조건적인 사랑 때문에 나와 자녀의 관계가 무너지거나 부모 자녀의 인생자체가 흔들리는 것은 아니다. 엄마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러한 마음까지는 부정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자책하지도 말아야 한다. '아 지금 내 마음에 그런 마음이 있구나'라며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를 낸다면 좌절의 구렁텅이에 매번 넘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 안에 조건적인 마음이 있다는 이유로 '나는 부모자격이 없어'라며 지나치게 비난한다면 오히려 자녀를 자연스럽게 사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게 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건적일 때도 있고 무조건적일 때도 있는 것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사람이라면 가족이나 소중한 사람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추구할 수는 있다. 간혹 자신의 심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사람은 마땅히 사랑을 주어야 할 순간에 줄 수 없어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자기 문제에 갇혀 다른 사람을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문제로 인해 조건적 사랑에 집착하게 된다. 그리고 결국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만든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건적인 관계 속에서 또다시 상처받고 아파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원하는 사람의 이상적인 기대는 좌절되기 쉽기 때문이다.


아이가 어릴 적에 충분하고 온전한 사랑을 받게 되면 '나는 사랑받는 존재구나'라는 자아상이 형성된다. 그러나 적절한 돌봄이 이뤄지지 않게 되면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구나'라는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된다. 자신의 존재가 늘 부적절하다고 느끼며 자신에게 뭔가 부족한 면이 많아서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 것이라는 인식이 심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 자아상이 형성되면 누구를 만나든 자신을 부정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싫어할까 봐 불안해하고 사랑받는 자격을 얻기 위해 애쓰는 행동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원할만한 조건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이유이다.


당신은 참 괜찮은 사람이군요

당신은 매력적인 사람이에요

당신은 실력도 좋고 성격도 좋네요


이러한 말을 듣기 위해 과도한 노력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칭찬하는 말을 듣고, 자신에게 호감을 갖게끔 애쓰게 된다. 자기 자신의 진솔한 모습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조건에 안성맞춤되기 위해 존재하는 격이다. 타인위주의 삶을 살고 눈치 보며 사는 삶이 얼마나 고단할지 생각해 보자. 이들은 존재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사랑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 인정받는 존재가 될 것인가에만 몰두하는 삶이다. 자신을 끊임없이 드러내려고 애쓰며 좋은 모습을 보이려다가는 자신의 한계에 좌절하고 타인의 반응에 실망하고 만다.


이상적 자아상은 자신의 존재만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다고 믿기 때문에 만들어 낸 자아상이다.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고 관심받고자 어른스럽게 굴고, 투철한 책임감을 발휘하며, 한 없이 유쾌한 사람으로 옷 입는다. 겉으로 보면 매력적인 모습이지만 사람이 어떻게 매번 어른스럽고, 책임감 강하고 유쾌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기준 자체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현실에는 존재할 수 없는 조건일 뿐이다. 이상적 자아상은 말 그대로 이상적인 것이다. 이상적이라는 말은 현실적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다. 자신의 깊은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자기가 되고자 하는 욕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과 현실적인 모습의 거리감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보자.


내가 되려고 하는 모습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모습일까?


이상적 자아상을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 당신이 애쓰는 부분은 무엇인지, 어떤 노력을 하면서 오늘도 힘겹게 살아가며 버티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사랑을 주고받는 것은 자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부족해 보여도 오히려 그 결핍이 있기에 사랑이 머무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지

다른 사람을 만족시키는 삶을 살지


오직 나 자신만은 선택할 수 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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