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연민으로 자존감을 회복해요
나도 나에게 감정이란 걸 느낄 수 있어요
상담을 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너무 가혹하게 채찍질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가장 힘든 때인데도 불구하고 그 순간 다른 사람을 위로하느라 애쓰며 자신을 위로하지 못한다. 그 순간만큼은 오롯이 자신을 마주 세워 바라봐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 돌보기에 여념이 없다. 자신을 홀대하고 연민의 마음으로 보지 못하고 있다. 이 정도만 해도 다행이련만, 안타까운 건 자신의 힘든 상황을 자신의 탓이라 여기며 자신을 매섭게 몰아붙이고 혐오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그녀는 오늘도 남자친구를 붙잡느라 기를 쓰고 있다. 잘못했다고 사과하며 남자친구의 상한 마음이 편안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이 화나거나 속상해하는 것을 못 본다. 모든 게 자신으로 인해 일어난 일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오늘도 여전히 그녀는 남자친구에게 습관적으로 '미안하다'라는 말을 한다.
그녀의 말을 듣다 보니 남자친구가 마음이 상한 이유는 전혀 그녀로 인해 벌어진 일이 아니었다. 남자친구의 실수와 부주의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음에도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게 자신의 탓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으로 인해 불안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졌고 말 잘 듣는 아이가 되어 자신의 불안을 느끼고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녀는 소중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잘하면 돼'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자신이 느끼는 불쾌함과 서운함은 저 멀리 떼어놓고 다른 사람의 평안을 돌보느라 모든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분명 상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상처를 제대로 느끼고 표현하고 누군가를 향해 원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에는 철저히 무감각하게 지내왔다. 그녀 스스로 자신을 향한 연민을 느껴도 되는데 말이다.
어른이 볼 때 아이는 잘못하고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는 철저히 아이다웠고 부족하지 않았을 수 있다. 어른의 시각은 아이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아이는 자신이 잘못하고 부족했다고 여기게 된다. 어린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냉혹한 평가를 받아도 될만한 일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싶다. 어릴 때 상처받은 아이에게 그릇된 자기 개념이 생기게 되는 원인이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다고 여기며 '내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어른이 자신에게 했던 말 그대로 자신에게 말한다.
상처는 제대로 치유되지 않으면 치유해달라는 메세지을 남긴다.
시간이 약이다
자면 괜찮아진다
한바탕 떠들고 마시고 나면 후련해진다
안 좋은 생각은 빨리 잊을수록 좋다
상처를 돌보지 않고 덮어둔다고 해서 사라지거나 없어진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신과 타인에게 투사되어 같은 상처를 입히게 된다.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여 상처를 입히고 자신 또한 파괴하는 패턴이 데자뷔처럼 반복된 적이 있지 않은가?
자신을 벌하려는 태도가 학습된 사람은 하려는 일마다 불안하고, 놀아도 편치 않고, 일을 성취해도 공허하다. 사랑을 하고 있어도 만족감이 없고 자신을 드러내는 것도 상대방이 다가오는 것도 부담으로 느껴진다. 이러한 관계가 지속될수록 자신을 향한 연민의 감정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연민이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아픔과 슬픔, 고통을 같이 안타까워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따스한 마음이다. 연민은 보여주기식 태도가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방의 고통에 함께하려는 순수한 감정인 것이다.
감정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으로 나눌 수 없다. 그저 어떤 현상과 일에 대해 일어나는 마음이나 느낌인 것이다. 기쁘거나 즐거움은 긍정적인 것처럼 느껴지고, 화나거나 슬프고 우울한 감정은 나쁜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우리가 살아오면서 사회적 영향에 의해 학습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모든 감정은 다른 사람을 향해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자기 자신에게 먼저 느끼게 되어 있다. 타인을 향해 느끼는 분노가 자신에게서도 느껴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향한 안쓰러움이 자신의 처지에서도 느껴질 수 있다. 이처럼 연민이라는 감정도 다른 사람에게만 열려있는 감정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충분히 있을법한 감정이며 있어도 되는 감정이다.
자기 연민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기'이다. 자기 연민을 통해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자신을 안쓰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다. 때로는 실망스럽고, 바보스러운 순간에도 자신을 소중하게 돌보는 세심한 노력이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에게 가장 혹독한 잣대를 들이밀고 구석으로 내모는 행위가 더 익숙할지 모르겠다. 더 자연스러울지 모르겠다. 어떨 때 우리는 자신의 그 냉철한 자기비판적 행위에 대해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양심적이야', '나는 절대 거만하거나 이기적이지 않아'라는 엄격한 자신을 응원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기를 세차게 몰아붙이는 행위는 일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거나 삶의 목표에 다가가기에 방해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크리스틴 네프 텍사스대 교수는 우리 모두가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좋은 친구'를 갖고 있으며 자기 연민을 통해 그러한 친구가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기 연민은 나를 부드럽게 안아줄 수 있는 포근함이 있다. 자신에게 부족함과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를 존중하고 자신을 지키며 자신을 돌볼 수 있게 해 준다. 완벽함과 완전함을 추구하다가는 결코 자신에게 친절할 수 없다. '완벽한 나'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친절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나'임에도 자신에게 친절할 수 있다면 진정한 자기 존중이 시작된다.
자신을 벌주는데 익숙한 사람들은 자기 연민이라는 친구를 얻는 데 익숙하지 않다. 한 번도 자신을 친절하게 대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친구가 되어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향한 자기 연민을 발달시키지 못한 사람은 자기 연민이라는 감정을 나약한 감정으로 치부하여 자신에게 있는 연민의 감정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힘들 때는 무조건 정신 차리고 견디려고 애쓰고, 참으며 버틴다. 때로는 다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처리하려 한다. 이렇게 자신과 타인과의 치열한 싸움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지나친 자기혐오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온 우주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게 느껴지고, 아무도 자기 주변에 없는 것 같은 느낌 속으로 빠져든다.
자기 연민은 결코 연약한 감정이 아니다. 그리고 없애버려야 하는 감정도 아니다. 자기 연민은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따뜻하고 너그러운 마음이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부족할 수 있지 않은가?
나도 그러하고 당신도 그러하지 않은가?
자기 연민은 자기 돌봄이다. 자기 연민이 가능한 사람은 지나치게 자신을 처벌하지 않으며 자신을 그 누구보다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이다. 결국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삶에서 자신이 어떻게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지 도움을 주는 나침판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