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이라는 걸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좌절하지 않고 직선코스로 쭉 뻗어 앞으로 나아가 원하는 목표를 쟁취하고 성공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신분석학자 코헛(Kohut)에 의하면 아동에게는 최적의 좌절이 있다고 한다. 좌절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상처가 되는 좌절이 있고 또 하나는 죄적의 좌절이다. 상처가 되는 좌절은 유아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 수준을 넘어버렸기 때문에 무의식으로 차단된다.
최적의 좌절은 양육자가 아이에게 비록 좌절을 주기는 하지만 아이에게 상처로 남지는 않는다는 의미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최적의 좌절경험을 하는 유아는 양육자의 태도를 통해 자신의 좌절경험을 재구성한다. 좌절로 인해 상처를 입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기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러한 최적의 좌절경험의 핵심은 양육자의 인격이다.
어린아이는 기본적으로 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무조건적으로 수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부모는 아이의 무한한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킬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아이는 양육자의 반응으로 인해 상처를 입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좌절의 정도가 아이 스스로 감당이 될 수 없다면 아이의 자기 가치감은 제대로 발달할 수 없지만 아이가 감당할 수준으로 좌절감이 주어진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이러한 좌절은 오히려 아이의 자기감을 더 발달시켜 성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의 성장을 위해서는 적절한 좌절경험이 필요하다. 부모는 자녀가 아파하지 않고 상처받지 않게 위해 최선을 다한다. 위험하면 만지지 말라고 소리치고 넘어질 것 같으면 미리 가서 돌부리를 걷어낸다. 물건을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가 도저히 감당이 안될 때는 다른 데로 주위를 환기시켜 버린다. 아이의 관심사를 다른 데로 옮겨두면 그 순간의 당혹감은 벗어날 수는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아이가 어릴 적에 아이가 상처 입지 않고 고통 없이 자라게 하려고 안절부절 했다. 남편이 아이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발언을 할까 봐 남편의 입을 막았고 아이에게 상처가 될만한 위험한 주변환경을 없애주려고 애썼다. 물론 지금도 사랑하는 자녀가 상처받기를 원치 않지만 엄마로서 나의 노력이 자녀의 모든 상처를 막아줄 수 없다는 한계를 알기에 두 손을 기꺼이 들고 항복했다.
요즘 들어 대다수의 사람들은 좌절경험을 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다. 스스로 뭔가 시도해 보고 부딪히고 상처 나고 아물기도 하면서 살이 단단해지는 경험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넘어지기 전에 붙잡혔고, 달리기 전에 멈춰 세워졌으며, 만져보기도 전에 눈앞에 있는 호기심대상은 치워져 버렸다. 스스로 경험하고 평가해 볼 기회가 부족했던 것이다.
자기의 것을 나누며 함께 해야 하는 상황에도 '이건 내 권리이고 내 것인데 내가 왜 다른 사람과 나눠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때는 자기중심적 사고가 도드라진 경우다. 어릴 적 최적의 좌절경험이 충분치 않았다는 증거일 수 있다. 세상이 온통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는 유아기적 전능감을 지나치게 유지시켜 주다가는 자기중심적인 사고가 고착된 성인이 되기 쉽다. 사람 만나는 게 힘들고, 관계를 맺는 게 쉽지 않고, 내 의도와는 달리 관계의 어긋남을 경험하게 된다.
차라리 나 혼자 하지 뭐
나만 좋으면 됐지 뭐
나는 그런 처우를 받을 사람이 아냐
이런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은 관계 속 성장을 경험하기 어렵다. 코헛은 '죄적의 좌절경험을 통해 인간은 성숙한다'라고 했다. 적절하게 욕구를 절제시키고, 타인을 위해 인내하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경계를 세워주는 것들이 필요하다. 이 정도는 견딜 수 있는 건강한 좌절이다.
아이가 화나고 충동을 조절하지 못할 때 양육자가 중심을 잡고 천천히 진정시키며 위로해 줄 때 아이는 자기 조절감을 배운다. 자신의 한계를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힘을 기르게 되는 것이다.
어린 자녀에게는 일관성 있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다. 아이가 어떤 장난감을 사달라고 떼를 쓴다면 바로 들어주거나 윽박지르면서 잠재우기보다는 지금은 사줄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아이의 욕구를 참게 한다. 그리고 언제쯤 그 장난감을 사줄 수 있는지, 아니면 그 장난감은 사줄 수 없는지에 대해 분명한 한계를 설정해 주어서 현실적 대안을 마련할 수 있게 해 주면 좋다.
어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적절한 좌절경험은 삶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 승승장구로 나아가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적절한 좌절은 누구에게나 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받아들일 부분은 받아들여야 한다. 명확한 한계설정을 했다면 그 이후에는 '그렇다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의 단계로 가보도록 하자.
좌절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좌절로 인해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쿨하게 먼지를 털어내고 일어설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최적의 좌절이 주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