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간 신문 속 AI세상

그리고 나의 아침

by 고래 아저씨

여전히 종이 신문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나는 매일 아침 현관문을 열고 조간신문을 집어 든다. 디지털 기기로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아직 내게는 종이의 질감이 더 편안하다. 인터넷 속 파편화된 정보보다는 정제된 활자가 주는 신뢰감이 좋다. 중요 사회 문제나 거시적인 이슈를 파악하는 데는 여전히 신문만 한 것이 없다. 종이를 한 장씩 넘기며 세상의 흐름을 읽는 것은 나만의 엄숙한 의식이다.

최근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키워드는 단연코 AI다. 2026년 1월 1일 자 신문을 받아본다면 아마 지면의 절반 이상이 인공지능 이야기로 채워져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무서울 정도로 빠르다. 매일 쏟아지는 새로운 기술 뉴스는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기기도 한다.

오늘 자 신문에서는 유독 '직업의 증발'이라는 단어가 눈에 밟혔다. 단순히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표현보다 훨씬 서늘하고 건조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이제 단순히 기술을 소비하는 단계를 넘어섰다. 삶의 방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변곡점에 서 있다.


과거의 변화는 변경이었지만, 지금은 소멸이다

문득 역사책에서 보았던 러다이트 운동이 떠오른다. 19세기 영국 노동자들은 기계가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는다고 생각하여 방직기를 부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방직기는 산업을 폭발적으로 성장시켰고 더 많은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다. 당시의 변화는 직업의 소멸이 아닌, 직업군의 이동이자 확장이었다.

그때는 기계가 인간의 육체노동을 대신했지만,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은 여전히 견고했다. 노동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인간의 역할은 분명히 존재했다. 우리는 그 변화에 적응하며 더 다양한 직업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과거의 산업혁명은 희망과 성장의 역사로 기억된다.

그러나 지금 신문이 말하는 '소멸'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다. AI는 육체를 넘어 인간의 고유 영역이라 믿었던 지적 노동까지 넘보고 있다. 이제는 직업의 형태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효용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다. '변경'이 아닌 '소멸'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깊은 두려움을 느낀다.


편리함 뒤에 숨겨진 막연한 불안감을 마주하다

앞으로 3년, 아니 어쩌면 더 짧은 시간 안에 세상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기대감 한편에는, 내가 설 자리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적응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은 어떤 준비를 해야 생존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다.

삶은 분명 더욱 윤택하고 편리해질 것이다. 힘든 노동에서 해방되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있다. 하지만 그 편리함의 대가로 우리가 잃어버리게 될 것들은 무엇일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인 채, 나는 오늘도 신문의 활자를 곱씹는다.


매일 아침, 나를 깨우는 소박한 정돈의 시간

복잡한 세상 걱정을 잠시 뒤로하고, 나는 나만의 아침 루틴을 시작한다. 침대에서 일어나면 마치 마당을 쓰는 기분으로 집안을 둘러본다. (지금 살고 있는 곳은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닌 아파트여서...) 집안을 정리하는 것은 곧 내 마음과 하루를 정리하는 일이다. 흐트러진 공간을 바로잡으며 나는 비로소 깨어난다.

어제저녁에 미처 치우지 못한 빨랫감은 세탁실로, 식탁 위 그릇들은 싱크대로 옮긴다. 쓰레기는 휴지통에 넣고 재활용품은 분리수거함으로 분류한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이 행위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손끝으로 집안의 질서를 잡아갈 때, 내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도 제자리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부직포 밀대를 들어 바닥을 조용히 훔친다. 아직 잠들어 있는 가족들의 단잠을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밀대 끝에 모인 뽀얀 먼지들을 보며, 어제 하루도 우리 가족이 치열하게 살았음을 확인한다. 깨끗해진 거실 바닥을 보면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기분이 상쾌해진다.


로봇이 대신할 수 없는 삶의 감각들

간단한 정리를 마치고 스트레칭으로 굳은 몸을 푼다. 어제 찍은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골라 SNS 비공개 계정에 올리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한 기록이다. 어제를 헛되이 보내지 않았다는 위안과 오늘도 즐거운 일이 생길 거라는 기대가 하루를 소중하게 만든다.

양치와 세수를 하며 거울 속의 나를 마주한다. 집안의 정리와 함께 나 자신 또한 단장한다. 어제의 먼지를 털어내고 분리수거까지 마치고 돌아오면 따뜻한 차 한 잔이 기다린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차를 마시며 다시 신문을 펼친다.

그런데 오늘 기사 한 줄이 내 눈을 사로잡는다. 한국의 한 전자 기업이 가사 로봇을 개발 중이라는 소식이다. 몇 년 안에 로봇이 내가 아침마다 누리는 이 정리의 즐거움을 완벽하게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편리함의 궁극을 보여주겠지만, 나는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낀다.


그래도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야 한다

로봇이 청소와 정리를 대신해 준다면 내 아침 시간은 어떻게 변할까. 육체적인 수고로움은 덜겠지만, 직접 몸을 움직여 공간을 가꾸는 보람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 기술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세상이 정말 멀지 않았음을 실감한다.

나의 소중한 직장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로봇과 AI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일까.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과실 뒤에 숨겨진 인간 소외의 그림자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답이 없는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복잡한 마음을 안고 오늘도 나는 출근길에 나선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공존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사는 것뿐이다. 변화의 파도 앞에서도 나의 일상을 단단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유일한 대비책일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진심의 농도가 느껴지는 새해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