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과 그 뒤에 숨겨진 계급 그림자

나영웅 작가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를 읽고서

by 고래 아저씨

우연히 마주친 질문

오늘 무심코 브런치 스토리를 넘겨보다가 시선을 끄는 글 하나를 발견했다. 취향과 계급의 상관관계를 다룬 그 글은 내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그렇게 나는 나영웅 작가의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를 내 질문의 서재로 들이게 되었다.

본론을 펼치기도 전부터 표지에 적힌 제목들이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듯했다. 우리는 흔히 취향을 지극히 개인적인 선호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취향이 단순한 기호가 아님을 서두부터 강조한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가 나의 사회적 위치를 드러낸다는 사실은 꽤나 충격적이다. 이 책은 나의 사소한 선택들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만든다.


취향이라는 신분증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취향의 차이가 결국 신분을 구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고 말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은 단순히 통장의 잔고로만 나뉘지 않는다. 어떤 음악을 듣고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을 결정짓는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정교하게 학습된 사회적 지표인 셈이다. 취향은 내가 누구인지를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신분증이 된다.

취향이 확실하다는 것은 독립된 한 존재로서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매력적인 행동이다. 자신만의 확고한 기준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빛이 난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자신의 감각으로 세상을 해석한다. 그렇기에 뚜렷한 취향을 가진 이를 보면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에게 끌리게 된다. 취향은 한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단단한지를 보여주는 척도이기도 하다.


'아무거나'의 함정

주변 지인들에게 점심 메뉴나 주말 계획을 물어볼 때를 떠올려 본다. 열에 아홉은 "아무거나 괜찮아" 혹은 "상관없어"라는 대답을 내놓곤 한다. 물론 이것은 상대방을 위한 배려에서 나온 말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그들의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매번 돌아오는 대답이 동일할 때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항상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진정한 배려일지 궁금해지기도 한다.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혹은 정말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무채색의 상태일 수도 있다. 선택을 상대에게 미루는 행위는 책임을 회피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나는 그들의 반복되는 답변 뒤에 숨겨진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선택하지 않는 태도는 결국 자신의 욕망을 지우는 일과 같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표현하지 않으면 나는 점차 희미해진다.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둥글게 사는 법을 배우며 모난 취향을 다듬으려 애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는 나라는 사람의 고유한 색깔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무난함이라는 보호색 속에 숨어 우리는 스스로를 평범함의 감옥에 가두고 있다.


아비투스, 몸에 새겨진 역사

이 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개념 중 하나는 바로 '아비투스'다. 아비투스는 취향, 습관, 삶의 양식 등 우리 몸에 체화된 성향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삶의 궤적이다. 내가 걷는 방식, 말투, 식사 예절 등 모든 사소한 행동에 아비투스가 묻어 있다. 결국 우리의 일상은 아비투스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아비투스는 계급적 환경에 의해 형성된다.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아비투스는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의식적인 노력만으로는 쉽게 바뀌지 않는 제2의 천성과도 같다. 그렇기에 취향을 논하는 것은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역사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나는 나의 아비투스가 어떤 모양을 하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우리는 흔히 돈을 많이 벌면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하지만 자본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문화적 격차가 분명히 존재한다. 졸부가 명품을 휘둘러도 어딘가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바로 이 아비투스의 차이 때문이다. 진정한 품격은 겉치장이 아니라 몸에 밴 태도에서 나온다. 취향을 가꾼다는 것은 결국 나의 내면과 태도를 갈고닦는 수행과도 같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책을 읽는 내내 나는 나영웅 작가가 던지는 화두에 깊이 빠져들었다. 이 책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정보서가 아니다.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거울과 같은 책이다. 나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나의 지난 선택들이 어떤 의미였는지 복기했다. 그리고 앞으로 나는 어떤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 시간을 갖고 이 책을 곰곰이 음미하면서 읽어봐야겠다. 급하게 읽어치우기에는 그 안에 담긴 통찰이 너무나 깊고 묵직하다. 문장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곱씹으며 나의 아비투스를 점검하는 시간을 가질 것이다. 취향을 통해 나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타인을 이해하는 폭을 넓히고 싶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나에게 건네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습관처럼 "아무거나"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말 뒤에 숨겨진 수많은 맥락을 읽어내려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 자신부터라도 "아무거나" 대신 "나는 이것을 좋아해"라고 말할 용기를 내보려 한다. 나의 취향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야말로 나를 존중하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계급이 되기도 하지만,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드는 유일한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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