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에 뱅쇼를 바라보며...
나에게 있어 커피는 혀끝에 닿는 미각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공간의 분위기로 마시는 음료다. 하루의 일과 중 한 번 이상은 습관처럼 커피숍의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선다. 쉬는 날 찾아가는 카페는 커피의 맛보다는 그날의 날씨와 기분에 어울리는 공기를 찾아 선택한다. 섬세한 원두의 산미나 바디감을 구별할 미식가는 못 되지만, 스타벅스 특유의 소음과 조명이 주는 안정감만큼은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비록 사치스런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그 공간이 주는 위안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만족하는 편이다.
사람들과 섞여 별다른 생각 없이 카페에 들어설 때면 으레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곤 한다. 타인의 시선에 묻어가기 위한 가장 무난하고 안전한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정으로 갈망하는 음료는 쌉싸름한 커피가 아니라 향긋한 뱅쇼다. 특히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날이면 달콤하고 따뜻한 뱅쇼 한 잔이 간절해진다. 그 붉은 액체가 목을 타고 넘어가면 온몸에 온기가 돌며 얼어붙은 마음까지 녹여주는 듯하다.
뱅쇼 안에 무심하게 썰려 들어간 과일 조각들과 통계피는 세련되지는 않지만 묘한 안도감을 준다. 매끈하게 정제된 티백 속의 재료들보다 원물 그대로의 투박한 형태가 주는 정직함이 좋다. 이질적인 재료들이 뜨거운 와인 속에서 서로의 향을 내어주며 하나로 섞이는 과정은 마치 복잡한 내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 같다. 뱅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내 안에 뒤엉킨 감정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위로의 매개체다. 그 투박하고 거친 질감이 오히려 인위적이지 않은 따스함을 전해준다.
그러나 정작 직장 동료들이나 낯선 관계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는 뱅쇼라는 이름을 입 밖으로 꺼내기가 어렵다. 모두가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외칠 때 홀로 낯선 메뉴를 주문하는 것은 묘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특히나 관계가 헐겁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는 나만의 취향을 드러내는 일이 더욱 망설여진다. 이것은 단순히 소심한 성격 탓일 수도 있고, 남들과 다름을 선택했을 때 쏟아질 시선에 대한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단지 음료 한 잔을 고르는 일일 뿐인데, 그 속에는 타인의 눈치를 살피는 나의 나약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러한 망설임이 비단 음료를 고르는 순간에만 국한된 것일까를 곰곰이 되짚어 본다. 나의 취향 중 독특한 점이 있다면 소설이나 에세이보다는 자기개발서를 유독 즐겨 읽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엔 늦은 것 같고 안주하기엔 이른 어중간한 나이지만, 여전히 나는 책 속에서 성장의 길을 찾는다. 학창 시절부터 나는 운동장보다는 책 냄새가 가득한 서점과 도서관의 정적을 사랑했다. 부모님이 사주신 전집 덕분인지, 타고난 기질인지 모르겠지만 활자 속에 파묻혀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수능 언어 영역에서 단 한 문제를 제외하고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내 재능과 흥미는 분명 문학이나 인문학을 가리키고 있었지만, 나는 점수에 맞춰 공과대학을 선택했다. 운동신경이 뛰어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친구를 따라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던 결정도 비슷했다. 나의 의지보다는 타인의 흐름과 사회적 기준에 떠밀려 살아온 삶의 연속이었다. 전역 후 뒤늦게 신문방송학과에 도전했으나 낙방했고, 결국 다시 공대생의 삶으로 돌아와 대학원까지 마쳤다.
지금 나는 이공계 출신들이 가득한 전형적인 화학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내 주변을 둘러싼 환경은 철저히 논리와 숫자의 세계지만, 내 영혼은 여전히 서점의 설렘과 도서관의 고요를 그리워한다. 혼자 있을 때 가장 완벽한 평온을 느끼지만, 사람들 속에서는 그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주도한다. 스스로를 외향적인 사람이라 포장하며 살아가지만, 사실 나는 고독 속에서 에너지를 채우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과 함께하는 시간은 내게 즐거움이 아닌, 보이지 않게 기를 빼앗기는 노동의 시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무리에서 이탈하는 것이 두려워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즐거운 연기를 해낸다. 내면의 피로가 극에 달해도 겉으로는 누구보다 그 자리를 즐기는 사람처럼 웃고 떠든다. 나의 본모습과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 사이의 괴리가 커질수록 내 연기력만 늘어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온전한 나로서 살아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닐까 자문해 본다. 세상이 원하는 정답지에 맞춰 내 취향과 본성을 억지로 구겨 넣으며 살아온 것만 같다.
이제 와서 돌아보니, 진심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 사무치게 부럽다. 남들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취향을 맘껏 뽐내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빛나는 매력을 지닌다. 그들은 아메리카노의 홍수 속에서도 당당하게 뱅쇼를 주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다. 나는 언제쯤 타인의 기대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쓰디쓴 아메리카노를 삼키며, 언젠가 당당하게 외칠 달콤한 뱅쇼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