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성북동의 문지기
사자상이 이제 긴 한국 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중국으로 돌아간다는 소식이었다. 뉴스를 꼼꼼히 읽어보니 자그마치 60년 만의 귀가라고 한다. 반세기라는 긴 시간을 건너 이제야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마친 것이다.
녀석은 본래 중국 청나라 시대의 유물이었단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혼란스러운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이곳 한반도까지 흘러들어왔을 것이다.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반출되어 이리저리 떠돌다 간송 전형필 선생의 눈에 띄었을지 모른다. 선생은 갈 곳 잃은 이 이방의 문화재를 거두어 미술관 뜰에 조용히 안치했을 것이다. 그렇게 녀석은 타국인 한국의 사계절을 묵묵히 견뎌냈다.
이제 간송미술관은 이 귀한 존재를 조건 없이 중국에 반환하기로 결정했다.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원래의 자리로 돌려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순리"라는 관계자의 짧은 한마디가 긴 여운을 남긴다. 간송 측은 이 사자를 '내 것'이 아닌 잠시 맡아둔 '중국의 유산'으로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간송 전형필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인물이다. 흔히 무언가를 '지킨다'는 말은 내 손안에 꽉 쥐고 놓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우리는 소유하는 것만이 내 것을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간송의 철학은 우리의 통념과는 달랐던 것 같다.
그에게 문화재를 지킨다는 것은 단순히 소유권을 주장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문화재가 마땅히 있어야 할 곳에서 그 가치를 온전히 빛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수호였다. 우리 문화재가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막을 때는 필사적으로 사들여 고국에 남게 했다. 반대로 남의 나라 문화재가 우리 땅에 머물러 있을 때는 기꺼이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보내는 결단을 내린다.
이번 사자상 반환 결정은 진정으로 문화를 아끼는 사람의 태도가 무엇인지 보여준다. 소유보다 더 깊은 차원의 사랑은 그 존재가 가장 편안해할 곳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내 곁에 두어 만족감을 얻는 것보다, 그 존재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것이 더 큰 가치임을 간송은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이것이야말로 '문화보국(문화로 나라를 지킨다)'을 넘어선 인류 보편의 문화 애호 정신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무언가를 더 채워 넣으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다. 오늘은 치약 속에 유해 물질인 트리클로산이 미량 섞여 들어온 일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내기 위해, 더 많은 기능을 넣기 위해 우리는 알게 모르게 독을 품고 살아간다. 물론 과거엔 어느정도 양이 허용되고 최근에 그 규제가 강화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해당 업체에서 먼저 조치를 했다니 다행이지만 씁씁함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시기에 들려온 간송의 '조건 없는 양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이 아니라, 과감히 비워내는 용기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일깨워준다. 무엇을 채우느냐보다 무엇을 비우느냐가 그 존재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성북동 사자는 떠나면서 우리에게 '비움의 미학'이라는 마지막 가르침을 주고 있다.
우리는 늘 잃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간다. 내 손안의 것을 놓치면 영영 사라질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 하지만 간송은 꽉 쥔 주먹을 펴서 60년 된 친구를 놓아주었다. 그 빈손은 허전함이 아니라 도리어 숭고한 정신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제 사자가 지키고 있던 미술관의 뜰은 조금 허전해질지도 모르겠다. 늘 그 자리에 있던 듬직한 그림자가 사라진 풍경은 당분간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오가는 이들의 시선이 머물던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빈 공간이 쓸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상실의 공간이 아니라 아름다운 이별의 증거로 남을 것이다.
중국의 어느 따뜻한 햇살 아래 다시 자리 잡을 사자를 상상하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낯선 땅의 추위와 설움을 뒤로하고 고향의 흙냄새를 맡으며 편안히 쉬기를 바란다. 녀석도 지난 60년 동안 자신을 아껴주었던 한국 사람들의 따뜻한 눈길을 기억할 것이다. 비록 몸은 떠나지만, 그 사자가 우리 곁에 머물며 주었던 위안은 사라지지 않는다.
훗날 우리 아이들이 더 자랐을 때, 이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진심으로 아끼는 것은 때로 기쁘게 놓아줄 줄 알아야 한단다"라고 말해 주겠다. 소유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배우게 될 것이다. 사자야, 잘 가렴. 낯선 땅에서 우리의 추억 속에 머물러 주어서 정말 고마웠다. 부디 고향에서는 편안하게, 그리고 영원히 평화롭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