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이 주는 위로, 커스텀 커피

대형 프랜차이즈를 거부한 곳

by 고래 아저씨

우리 동네에는 커스텀 커피가 있다. 거대 자본의 향기가 짙게 배어 나오는 스타벅스나 투썸플레이스와는 사뭇 다른 공기가 흐른다. 이곳은 마치 숨바꼭질하듯 골목 어귀나 상가 한편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차분한 초록색 간판이 나를 반긴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광활한 대륙 같은 매장이 아니라 아담한 섬 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수십 명이 동시에 노트북을 두드리는 전투적인 풍경은 이곳에 없다. 대신 바리스타와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눌 수 있는 적당한 거리가 존재한다. 나는 이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아담함이 참 좋다.

대형 프랜차이즈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면 이곳은 공기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획일화된 매뉴얼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이 든다. 그래서인지 이곳을 찾을 때면 나는 소비자보다는 동네 주민이라는 정체성을 더 강하게 느낀다.

물론 좁은 공간 탓에 옆 테이블의 대화가 들릴 때도 있다. 어제 김 부장이 얼마나 꼰대였는지, 혹은 옆집 강아지가 얼마나 귀여운지 그리고 빠지지 않은 부부간의 입장 대변에 대한 타인의 일상을 강제로 청취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조차 사람 사는 소음이라 여기면 백색 소음보다 정겹다.


인생도 숙성이 필요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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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자랑은 단연 라떼다. 사실 나는 커피 맛을 구별하는 미식가와는 거리가 멀다. 하지만 이곳의 라떼를 처음 마셨을 때 혀끝을 감도는 묵직한 고소함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제야 나는 '인생 라떼'라는 다소 거창한 수식어가 왜 이곳에 붙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커스텀 커피는 '숙성 우유'를 사용한다고 한다. 단순히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붓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들여 우유를 숙성시켜 깊은 풍미를 만들어낸다. 기다림의 미학이 커피 한 잔에도 담겨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림을 파는 곳이다.

숙성이라는 단어를 곱씹으며 커피를 마신다. 갓 짜낸 신선함도 좋지만, 시간을 견디며 깊어진 맛은 흉내 낼 수 없는 울림을 준다.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적당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풋내 나는 젊음도 좋지만, 세월에 잘 익어 고소해진 중년의 맛도 나쁘지 않다.

라떼 한 모금에 철학자가 된 기분을 느끼는 것도 이곳만의 매력이다. 카페인을 핑계 삼아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이 달콤하다. 달달한 흑임자 라떼를 마시는 날에는 세상만사가 다 너그러워 보인다.


화개장터와 독립서점 사이

커스텀 커피의 공간은 묘한 이중성을 띠고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독립서점의 차분함과 화개장터의 실용성을 섞어 놓은 듯하다. 있어야 할 것은 다 있고, 없어도 될 것은 과감히 덜어낸 공간이다. 커피와 캔음료, 간단한 디저트 같은 필수 요소는 갖추었지만 과한 장식이나 불필요한 소음은 없다.

화개장터 노래 가사처럼 '있는 건 있고 없는 건 없는' 솔직함이 이곳의 정체성이다. 대형 매장의 넓은 좌석과 왁자지껄한 생동감은 없지만, 대신 그 빈자리를 따뜻한 정이 채운다. 무언가 부족해 보이지만 결코 비어 있지 않은 충만함이 있다. 이것은 효율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다.

독립서점처럼 취향이 확실한 주인이 꾸려가는 서재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이곳에 올 때마다 읽다 만 책을 한 권씩 들고 온다. 집에서는 스마트폰에 밀려 펼치지 않던 책장이 이곳에서는 술술 넘어간다.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구석 자리는 나만의 작은 도서관이 된다.

좁은 공간은 역설적으로 나에게 더 집중할 수 있는 여백을 준다. 광활한 공간에서는 오히려 길을 잃기 쉽다. 하지만 경계가 분명한 이곳에서는 나의 생각도 흩어지지 않고 단단하게 뭉친다.


창문 너머의 세상 구경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을 좋아한다. 통유리 너머로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는다. 유모차를 미는 젊은 엄마, 학원 가방을 멘 학생, 지팡이를 짚은 노인까지 다양한 삶이 스쳐 지나간다. 그들은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방향으로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 풍경을 보고 있자면 나는 잠시 세상의 속도에서 이탈한 관찰자가 된다. 유리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쪽은 쉼표이고 바깥은 느낌표다. 이 묘한 괴리감이 주는 평온함이 나를 위로한다. 치열한 세상과 잠시 단절된, 안전한 방공호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다.

가끔은 눈이 마주친 행인에게 마음속으로 인사를 건네기도 한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습니다'라고 텔레파시를 보낸다. 물론 그들은 내 존재조차 모르겠지만, 혼자만의 연대감을 느끼며 피식 웃는다. 이런 엉뚱한 상상을 하는 것도 카페인이 주는 부작용일지 모른다.

따뜻한 라떼가 식어갈 때쯤, 나의 복잡했던 마음도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뜨거웠던 고민들은 미지근해지고, 날카로웠던 감정은 우유 거품처럼 부드러워진다. 커피 한 잔이 해결해 주는 문제는 없지만, 문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의 온도는 달라진다.


초록의 위로를 받으며

동네에 마음 둘 곳이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슬리퍼를 끌고 나가도 어색하지 않은, 작지만 확실한 나의 아지트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커스텀 커피는 단순한 카페가 아니라 동네의 풍경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이다.

내일도 나는 습관처럼 이곳을 찾을 것이다. 익숙한 초록색 문을 열고 들어가 "늘 먹던 걸로 주세요"라는 눈빛을 보낼 것이다. 그러면 주인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가장 맛있는 온도의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내일 하루를 살아낼 힘은 충분하다.

돌아오는 길, 입안에 남은 고소한 라떼의 잔향을 음미한다. 발걸음이 한결 가볍다. 작지만 작지 않은 공간, 그곳이 주는 따스함이 내 어깨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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