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렵다.

출장길에서 마주한 기술의 속도와 사피엔스의 고민

by 고래 아저씨

대륙의 횡단, 그 끝에 남은 질문들

중국 전역을 발로 뛰며 돌아다녔다. 업무차 심천으로 들어가 중경을 거치고, 다시 상해로 향했다. 이후 쑤저우와 우후를 돌고 나서야 비로소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숨 가쁜 여정이었지만, 피곤함보다 더 짙게 남은 것은 기묘한 여운이었다.

그 여운의 실체는 AI 시대에 우리가 살아갈 날들에 대한 기대와 우려였다. 만나는 사람마다 약속이나 한 듯 AI 이야기를 꺼냈다. 식사 자리와 커피 타임은 '도래하는 시대'에 대한 각자의 목격담으로 채워졌다. 마치 다가올 태풍을 앞두고 기상 정보를 교환하는 사람들 같았다.

누군가는 아직 어린 자식 세대의 앞날을 걱정했다. 또 다른 이들은 당장 우리가 살아내야 할 날들을 염려했다. 내가 평생 쌓아온 일들이 로봇이나 피지컬 AI에 의해 점령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그 미래가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 와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가장 두렵게 했다.


현관 앞에 쌓인 '종말'의 징후

한국 집에 도착하니 현관 앞에 낯선 탑이 하나 서 있었다. 나의 긴 출장 일수만큼 차곡차곡 쌓여 있는 신문 뭉치였다. 아내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종이 신문은 인테리어 소품 정도로도 여기지 않으니 당연한 결과다. 먼지가 뽀얗게 앉은 신문 더미를 보며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가장 위에 놓인 신문을 집어 들자 굵직한 헤드라인이 눈에 박혔다. '사스포칼립스(SaaSapocalypse) 공포'라는 낯설고도 섬뜩한 단어였다.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였다. 구독형 서비스의 축소가 증시와 코인 시장을 휘청이게 만들었다는 분석이었다.

지금까지 식당에서 한식과 중식을 고민했다면 이제는 피지컬 AI 요리사로 어떤 음식을 만들지 나는 고민한다는 것이다. 한식과 중식의 식당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래 넷플릭스, 어도비, 마이크로 소프트 등이 SaaS, 즉 구독형 소프트웨어의 종식을 알리는 신호탄 인 것이다.

단순히 경제 지표가 흔들린다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익숙하게 사용하던 소프트웨어들이 AI로 대체되면서 시장의 판도가 뒤집히고 있다는 뜻이다. 누군가가 땀 흘려 코딩하고 기획했던 서비스들이, 이제는 AI의 한 호흡으로 대체되는 세상이다. 현관 앞 신문 뭉치가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두 거인의 전쟁, 오픈AI와 앤스로픽

지금까지의 AI 판도는 오픈AI(OpenAI)가 주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챗GPT의 등장은 그야말로 충격이었고, 우리는 그 파도에 휩쓸려 여기까지 왔다. 하지만 이제는 앤스로픽(Anthropic)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그 옆에 섰다. 이들은 '클로드(Claude)'를 앞세워 오픈AI와는 또 다른 결의 지능을 보여준다.

앤스로픽은 단순히 똑똑한 AI를 만드는 것을 넘어 '안전하고 윤리적인 AI'를 표방한다. 오픈AI가 거침없는 확장을 추구한다면, 앤스로픽은 신중한 제어를 고민한다. 이 두 진영의 경쟁은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가속화시키는 엔진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이 거대 기업들의 전쟁터 한복판에서 관객이자 사용자로 서 있다.

두 회사의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목표는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초지능의 구현이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새로운 기능이 발표되고, 어제의 혁신은 오늘의 구식이 된다. 이 속도감은 경이로움을 넘어 때로는 현기증을 일으킨다.


내 옆자리의 유능한 비서, 혹은 후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두렵다. 그리고 동시에 설렌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게 될지, 도대체 무슨 준비를 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최근 AI 기반의 툴들을 이용해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그것이 주는 편리함과 속도는 가히 혁명적이다.

최근 6개월간 내가 고용한(?) AI 툴들은 내 업무의 상당 부분을 잠식했다. 이 녀석들은 나의 똑똑한 후배와 성실한 비서의 중간 즈음 역할을 수행한다. 가끔은 엉뚱한 소리를 해서 피식 웃게 만들지만, 대체로 기대 이상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시키는 일에 불평도 없고 야근 수당도 요구하지 않으니 기특할 따름이다.

아직은 내가 체계적으로 AI 교육을 받은 상태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부로 느껴지는 생산성의 변화는 놀랍다. 만약 내가 제대로 된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이나 AI 활용법을 배운다면 어떨까. 내 업무 능력은 산술급수가 아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그런데 문득 다시 두려움이 찾아온다. 도대체 무엇이 그토록 두려운 것일까? 내 능력이 확장되는 것에 대한 기쁨 뒤에 숨은, 나의 존재 가치에 대한 물음일지도 모른다. AI가 나보다 더 나다운 글을 쓰고, 나보다 더 나은 판단을 하는 순간이 올 테니까.

우리의 미래는 지금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기술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인가, 아니면 쓸모없게 만들 것인가. 중국 출장길에서 시작된 이 질문은 현관 앞 신문 뭉치를 지나 내 책상 위 모니터 앞까지 따라왔다. 정답은 아직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는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할 뿐이다.

작가의 이전글우리들의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