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매미 소리를 떠올리며

by 고래 아저씨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것들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폭포처럼 쏟아지는 장대비가 있다. 푹푹 찌는 듯한 더위가 있다. 반팔 티셔츠와 목덜미를 타고 흐르는 땀 그리고 계곡 물소리가 있다.

그리고 귓가를 맴도는 맴맴 소리도 빼놓을 수 없다. 매미 소리를 듣고 있으면 여름이 실감난다. 아무리 에어컨을 틀어도 그 소리만은 막을 수 없다. 창문을 닫아도 소용없다는 게 매미의 위력이다.

여름을 여름답게 하는 것들은 참 많다. 땀에 젖은 등판과 끈적이는 손바닥도 여름이다. 아이스크림이 녹아내리는 속도와 선풍기 앞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도 여름이다. 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 여름이라는 계절을 만든다.


조화가 만드는 계절의 의미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말하는 것일까. 달력에 표시된 6월에서 8월까지의 그 시간 즈음일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여름이 여름다운 것은 수많은 것들의 조화 때문이다. 더위만 있다고 여름이 아니다. 비만 온다고 여름이 아니다. 매미만 운다고 여름이 되지 않는다.

모든 요소가 함께 어우러질 때 비로소 '여름'이 된다. 폭염과 소나기가 교차한다. 뜨거움과 시원함이 공존한다. 소란함과 고요함이 번갈아 찾아온다.

이 부조화 속의 조화가 여름을 완성한다. 하나만 강조되면 여름이 아니라 재난이 된다. 장마만 계속되면 우울하고, 폭염만 이어지면 지옥이다. 적당히 섞여야 여름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

여기서 또 엉뚱한 생각으로 튄다. 사람이 사람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두 다리로 걷고 언어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벌이나 직업으로 정의되지도 않는다.

사람마다 성향이 있다. 누구는 불같고 누구는 물같다. 누구는 바람처럼 가볍고 누구는 흙처럼 묵직하다. 그 자체로는 좋고 나쁨이 없다.

사람다움의 핵심은 그 사람이 남기는 따뜻한 울림이 아닐까. 성향이 어떻든 누군가의 마음에 온기를 남기는 사람. 곁에 있으면 왠지 마음이 놓이는 사람. 그런 사람을 우리는 사람답다고 부른다.

차가운 논리보다 따뜻한 손길이 기억에 남는다. 완벽한 말솜씨보다 어설픈 위로가 가슴에 닿는다. 화려한 외모보다 포근한 미소가 더 오래 남는다.

따뜻한 울림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거창한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괜찮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한 구절로 남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람다운 삶이 아닐까.


계절의 틈에서 생각하다

지금은 겨울이 지나가고 봄을 기다리는 길목이다. 아직 쌀쌀한 바람이 불고 해는 일찍 진다. 여름은 아직 멀었다. 매미 소리는 더더욱 들을 수 없다.

그런데 뜬금없이 매미를 생각한다. 아직 오지 않은 여름을 떠올린다. 겨울 한복판에서 여름을 상상하는 이 아이러니. 마치 행복할 때 슬픔을 생각하는 것처럼 묘하다.

어쩌면 그래서 더 그리운지도 모른다. 없을 때 더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들이 있다. 겨울의 냉기 속에서 여름의 열기가 더욱 생생해진다. 고요한 겨울 밤에 매미의 맹렬한 합창이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여름을 생각하다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계절도 사람도 결국 조화와 울림의 문제구나. 혼자서는 완전할 수 없고, 함께일 때 의미를 갖는다.

봄이 오면 또 여름이 올 것이다. 매미가 다시 울 것이고 장대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또 다른 계절을 그리워하겠지. 인간이란 원래 없는 것을 그리워하는 존재니까.


마음의 온도를 유지하는 일

중요한 건 지금이다. 추운 겨울에도 마음만은 따뜻하게 유지하는 것. 여름을 기다리면서도 겨울의 의미를 놓치지 않는 것. 계절마다 그 계절다움을 느끼는 것.

사람도 마찬가지다. 상황이 어떻든 따뜻한 울림을 잃지 않는 것. 춥다고 마음까지 얼어붙으면 안 된다. 덥다고 감정까지 들끓어서도 안 된다.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 같은 사람. 겨울에는 따뜻한 온기 같은 사람. 계절에 관계없이 곁에 두고 싶은 사람.

현실은 늘 부족하다. 타인에게 온기를 주기는커녕 내 체온 유지하기도 버겁다. 전기장판을 켜고 이불 속에 웅크린 채 봄을 기다린다. 그게 고작이다.

그래도 마음만은 봄처럼 유지하고 싶다. 얼어붙은 땅 밑에서도 씨앗은 준비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견디며 봄을 준비하듯, 나도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는다.


뜬금없는 생각의 끝

매미 한 마리가 사람의 온도를 생각하게 만드니 신기하다.

오늘도 창밖은 여전히 겨울인지라 춥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여름이 있다. 아직 울지 않는 매미의 소리가 들린다. 아직 오지 않은 계절을 기다리며 지금을 산다.

결국 모든 계절은 지나간다. 겨울도, 봄도, 여름도, 가을도.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계절처럼 흘러가는 삶 속에서 따뜻한 울림 하나 남기는 것.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언젠가 다시 여름이 올 것이다. 그때 나는 또 겨울을 그리워할지 모른다. 인간이란 원래 그렇다. 없는 것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그래서 더욱 지금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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