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한마리와 인간 하나

공장에 사람과 개 한 마리

by 고래 아저씨

어렸을 적 책을 참 많이도 읽었다. 어머니의 확고한 교육관 덕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집안 살림은 가난했지만 책을 사는 것에는 그나마 아낌이 없으셨다.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책들은 나의 놀이터이자 친구였다. 그때 읽은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가끔씩 생각한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모두 그러했을까 싶다. 주 100시간을 넘게 일하면서도 자식들 뒷바라지에는 뼈를 깎는 노력을 하셨다. 입버릇처럼 공부하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정작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는 듣지 못했다. 부모님도 그저 막연히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만이 정답이라 믿으셨던 것 같다.

그렇게 자란 내가 이제 어른이 되어 내 아이를 본다. 아이들에게 유튜브나 소셜미디어는 그만 보고 항상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한다. 나조차도 지금 시대에 무슨 공부가 진짜 필요한지 모르면서 말이다. 우선 눈앞에 보이는, 좋지 않아 보이는 유튜브부터 끄라고 소리친다. 역사는 이렇게 반복되나 보다.


만화책과 유튜브의 평행이론

예전에는 만화책 보지 말고 TV는 끄고 책만 보라는 강요를 받았다. 만화방에 가면 큰일이 나는 줄 알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만화책이나 TV만 보아도 감지덕지일 것 같다. 숏폼 콘텐츠에 비하면 만화책은 차라리 고전 문학에 가깝게 느껴진다. ㅋㅋㅋ 참 아이러니한 세상이다.

기술이 발전할 때마다 기성세대는 항상 새로운 미디어를 경계했다. 활자가 영상으로 바뀌고, 긴 영상이 이제는 1분짜리 춤 영상으로 바뀌었다. 부모님의 걱정은 형태만 바뀌었지 본질은 그대로다. 우리는 항상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가진다.


전화번호부 수첩의 추억

예전 기억을 더듬어보면 핸드폰이 대중화되면서 사라진 물건이 있다. 바로 두툼하거나 혹은 손바닥만 한 전화번호 수첩이다. 우리네 부모님 세대는 항상 그 작은 수첩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셨다. 공중전화기나 집 전화기 앞에서 그 수첩을 침 묻혀가며 넘기시곤 했다.

그때는 목적이 분명한 전화 통화를 하곤 했다. 수첩을 펴고 다이얼을 돌리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 같았다. 휴대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그 전화번호부 수첩이 없어지며 때아닌 걱정을 듣던 때가 있었다. 사람들의 기억력이 감퇴할 것이라는 우려였다.

전화번호부 수첩을 깜빡 잊고 집에 두거나 잃어버릴 때를 대비해서 웬만한 번호(집전화, 삐삐)는 외우고 다녔던 시대였다. 주변 친한 친구와 가족들 번호 10개쯤은 기본으로 머릿속에 있었다. 그 시절에 휴대폰이 나오고 점점 번호를 외워야 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어른들은 혀를 찼다. 머리를 안 쓰면 바보가 된다는 논리였다.


미디어 변화와 기우

미디어 변화 시절에는 항상 이런 우려들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전자계산기가 처음 학교에 도입되었을 때도 그랬다. 아이들이 암산 능력을 잃어버려 수학적 사고를 못 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계산기 덕분에 더 복잡한 공식을 풀 수 있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이 가능해졌을 때도 비슷했다. 사람들이 더 이상 지식을 머리에 담아두려 하지 않아 멍청해질 것이라 했다. 소크라테스 시절에도 문자가 발명되자 기억력을 해칠 것이라며 글쓰기를 반대했다는 기록이 있다. 인류는 항상 새로운 도구 앞에서 자신의 능력이 퇴화할까 봐 겁을 먹는다.

하지만 우리는 도구를 통해 뇌의 용량을 비우고 더 창의적인 곳에 에너지를 썼다. 전화번호를 외우는 대신 그 친구와 무엇을 할지 계획하는 데 집중했다. 단순 암기의 영역을 기계에게 넘겨준 것뿐이다. 우리는 바보가 된 것이 아니라 진화한 것이다.


개밥 주는 사람

최근에 듣고 빵 터지면서도 씁쓸했던 우스갯소리가 하나 있다. 미래의 첨단 공장에는 딱 두 생명체만 남는다고 한다. 바로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다. 여기서 개가 있는 이유는 공장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있을까? 기계를 조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개밥을 주기 위해서'란다. 김미경 강사의 '우뇌 교육 혁명' 강의에서 듣고 피식하며 웃고 넘겼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이 농담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라 섬뜩한 미래 예언처럼 들린다. 우리가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능력들이 AI와 로봇으로 대체되는 세상이다. 기계가 더 잘하는 일을 인간이 붙잡고 있을 때, 인간의 존엄은 개밥 주는 사람으로 전락한다. ㅋㅋㅋ 웃자고 한 이야기에 죽자고 달려드는 꼴이지만 뼈가 있는 말이다.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

지금까지의 세상은 '좌뇌형 인간'이 주도해 왔다. 좌뇌는 논리, 분석, 수리, 순차적 처리를 담당한다. 우리가 학교에서 죽어라 외우고 시험 쳤던 그 능력들이다. 국영수 점수를 잘 받고, 정해진 매뉴얼을 잘 따르는 모범생들이 환영받던 시대였다.

좌뇌형 교육은 정답을 빨리 찾는 훈련을 시켰다. 전화번호를 많이 외우고, 연도와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똑똑함의 척도였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컴퓨터가 1초 만에 해낸다. 좌뇌의 영역에서 인간은 더 이상 기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앞으로는 '우뇌형 인간'이 주도하는 세상이 온다고 한다. 우뇌는 감성, 직관, 창의성, 공감 능력, 전체적인 맥락 파악을 담당한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 능력이다. 음악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는 능력은 아직 기계가 따라오기 힘든 영역이다.


새로운 시대의 공부

내가 아이에게 유튜브를 끄고 공부하라고 할 때의 그 '공부'는 여전히 좌뇌형 공부였다. 달달 외우고 문제를 푸는 것 말이다. 하지만 미래에 필요한 공부는 유튜브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고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좌뇌형 인간은 공장에서 기계를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면, 우뇌형 인간은 그 공장이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꿈꾸는 사람이다. 개밥 주는 사람으로 남지 않으려면 우리는 우뇌를 깨워야 한다.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기계가 할 수 없는 따뜻한 감성을 키워야 한다.

전화번호부 수첩이 사라진 자리에 스마트폰이라는 거대한 세상이 들어왔다. 암기력은 좀 떨어졌을지 몰라도 우리는 전 세계와 연결되었다. 이제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암기력이 아니라 연결하는 힘이다. 좌뇌의 시대를 넘어 우뇌의 시대로, 우리는 건너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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