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뀌는 시
퇴근길 주유소 앞을 지나다 고개를 돌렸다. 놀랐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으로 국제 유가 상승이 피부로 와닿는 순간 이었다.
저녁 식사 후 뉴스를 틀었다. 국제 유가 코너였다. 현재 두바이유 기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섰다고 했다. 생각보다 많이 올랐다. 그런데 화면 하단에 흐르는 자막이 더 심상치 않았다. "지정학적 리스크 시 배럴당 120달러 돌파 전망." 어떤 애널리스트는 더 나아가 180달러까지 언급했다.
문득 궁금해졌다. 배럴당 90달러면 우리가 주유소에서 내는 돈의 원가는 얼마일까. 검색해 보니 1배럴은 정확히 159리터정도다. 700~800원/리터에 세금내고 정제 비용과 유통 마진 그리고 주유소의 운영비까지 더한 숫자가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주요소 가격이다.
한국은 원유가 단 한 방울도 나지 않는다. 1년에 많은양(약 11억 배럴)을 수입한다. 하지만 정제 능력은 세계 상위권이다. 하루 정제 능력만 330만 배럴이 넘는다.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 네 개 정유사가 수입 원유를 고부가 석유제품으로 바꿔 다시 세계로 수출한다.
역설적이다. 자원은 없지만 기술은 있다. 그런데 가격 결정권은 없다. 원재료를 전량 수입에 의존하니 국제 유가가 요동치면 속수무책이다. 경유가 휘발유보다 비싼 진풍경도 여기서 나온다.
우리나라 세금 구조는 경유세가 휘발유세보다 싸다. 그러니 당연히 경유가 저렴해야 맞다. 하지만 국제 시장이 다르게 움직인다. 유럽과 중국에서 경유 수요가 폭등하면 싱가포르 현물 시장 가격이 뛴다. 우리 정유사들이 원유를 사오는 기준가가 올라가는 것이다. 국내 세금 체계는 무용지물이 된다. 국제 시장이 동네 주유소 전광판 숫자를 쓴다.
주유소 가격이 움직이는 속도를 보면 재미있다. 아니, 재미있다기보다는 야속하다. 국제 유가가 오르면 다음 날 아침 주유소 가격도 오른다. 거의 실시간이다. 반대로 국제 유가가 내리면 2주는 기다려야 주유소 가격이 움직인다. 느리다 못해 더디다.
정유사들은 항상 같은 말을 한다. "재고 물량 때문입니다." 비싸게 사들인 원유가 아직 탱크에 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납득이 안 된다. 오를 때는 재고 타령 없이 즉각 반영하지 않았나. 일관성이 없다는 게 문제다.
시장 원리를 모르는 건 아니다. 가격은 당연히 오르락내리락한다. 다만 그 속도가 동일해야 공정하다는 거다. 상승 반영 속도와 하락 반영 속도가 비슷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면 고치면 되고, 관행이면 바꾸면 된다. 간단하다.
신호 대기 중에 다시 주유소를 바라봤다. 자원 하나 없는 나라가 세계 5위 정제 능력을 갖췄다. 없었기 때문에 기술을 갈고닦았다. 결핍이 강점이 됐다. 어쩌면 우리는 부족함을 이기는 데 익숙한 민족인지도 모른다.
개인의 삶도 다르지 않다. 없으면 방법을 찾는다. 나도 지금 그러고 있다. 기름값이 부담스러우니 전기차를 더 쓰려는 것이다. 돈이 선택을 바꾼다. 경제적 압박이 합리적 판단을 만든다.
결핍은 분명 불편하다. 하지만 때론 더 나은 방향으로 우리를 밀어붙인다. 탓하기보다 활용하는 쪽이 현명하다. 유가는 내가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차를 몰지는 내가 정할 수 있다.
내일부터 전기차 충전을 가득 채워야겠구나.